1교시 <행복> 첫번째 이야기
There is an ontological truth of the chair that is the chair itself, regaradless of how we see it or even whether it is seen or not by somebody. If there were no truth, there would be no reality.
[2021년 EBS 수능 영어 독해연습 2강 연습문제 7번]
우리가 의자를 어떻게 보든, 혹은 심지어 누군가에게 의자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상관없이, 의자 그 자체인 의자의 존재론적 사실이 있다. 사실이 없다면 실재도 없을 것이다.
EBS 교재에 '존재론'이 소재로 등장했다. 적어도 2등급 이상의 성적을 가진 우수한 학생들로 구성된 반이었지만, 존재론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를 인용하며 있는 지식, 없는 지식을 몽땅 털어 '있음'과 '없음'에 관해 논했다. 의자가 있지만 없을 수도 있고, 없다는 것은 꼭 정말로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로는 있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이걸로 모자라, 고양이를 등장시켜 있는 고양이가 진짜 고양이인가, 아니면 우리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고양이가 진짜 고양인가. 그게 맞다면 우리 눈 앞에 있는 고양이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무엇이 진짜 고양이고, 의자인가. 존재하는 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었을 때, 비로소 설명이 끝났고 수업도 끝났다. '이 정도면 쉽게 이해됐지?'라며 뿌듯한 미소로 학생들에게 물어봤을 때, 학생들의 영혼도 없고, 힘도 없는 '네'라는 길게 늘어진 대답만이 교실 안에 있었고, 있었던 학생들은 빨리도 없어졌다. 다소 길었지만 명쾌한 존재론의 수업은 확실히 존재했었다며 정신승리를 즐기려는 찰나, A학생이 사뭇 진지한 눈빛을 나에게 보내며 다가왔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A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다만 몸이 피곤할 뿐. 쉬는 시간은 오로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멍 때리며 쉬고 싶은데, A학생은 나의 소중한 쉬는 시간을 온전히 자기 시간으로 가져가곤 했다. A학생의 질문은 항상 날카로웠다. 대부분의 학생들처럼 해석이 안 되는 질문을 물어본다거나 (이것은 해설지에 있는 내용), 모르는 단어의 뜻을 물어본다거나 (이것은 네이버 사전에도 있는 내용), 이해가 안 되는 문법을 물어본다거나 (이것은 수업시간에 내 설명을 잘 안 들은 학생들의 질문) 하는 것이 아니었다. A학생의 질문은 가끔 나도 미쳐 생각지 못한 깊이 있는 내용이거나, 나의 실수를 지적하여 내 얼굴을 빨갛게 만드는 질문들이 주를 이뤘다. 모른척하며 교실을 황급히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이미 그럴 수 있는 타이밍은 놓쳤다. 도망치지 못한다면 맞서 싸워야 한다. 선빵을 날려 기선을 제압하자!
존재론 설명이 좀 부족했지?
나도 잘 몰라서.
하하.
아는 척하느라 힘들었어.
하하.
무식함을 겸손함으로 위장해 날린 나의 기습적인 선빵에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듯, A학생은 오히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으로 나의 허를 찔렀다.
'철학은 배워서 어디에 써먹나요?'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가끔 있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A학생이다. 적어도 '서연고' 대학은 무조건 간다. 대한민국 미래를, 아울러 온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훌륭하고, 훌륭할 A학생이 나에게 철학의 유용성을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A학생에게 미칠 영향력을 생각해 본다. 먼 훗날 A학생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할 때 '고 3 시절, 저에게 철학의 지혜를 알려주신 학원 영어 선생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말하는 (오히려 '내가 영광입니다'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교실을 나가 교무실로 향했다. 혹시나 하고 돌아봤지만 A학생은 계속 나를 따라오고 있다. 철학 소재가 수능 영어 지문에 빈번하게 출제되기 때문에 기본적인 철학에 대해 알고 있어야 문제를 풀 때 유리하다는, 지극히 학원강사다운 답변을 A학생에게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자리에 앉았고, A학생도 옆에 앉았다. (넌 포기도 눈치도 없구나! 끈질긴 놈. 공부는 역시 끈기와 고집 있는 학생이 잘한다.)
다시 한번 A학생을 바라보았다. A학생의 눈빛은 여전히 진지했다.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학생들에게 영어 지문 속의 내용들을 더 충실하게 알려주고 싶어 영어만큼 인문학을, 철학을, 예술을, 역사를 공부했었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인생에 관한 의문과 질문은 쌓여갔지만, 지혜를 알아가는 즐거움 또한 함께 늘어났다. 인문학의 재미를, 삶의 유용한 지혜를 학생들과 같이 공유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로지 성적 향상만을 위해 달려야 하는 수업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A학생은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다. 이 참에 A학생에게는 제대로 말해 주고 싶었다. 10대가, 20대가, 30대가, 40대가, 50대가, 60대가, 70대가 장래희망란에 건물주라고 써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 세상에, 왜 철학이 필요한지를 A학생에게는 꼭 말해주고 싶었다.
난 네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란다.
철학은 네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도움을 준다.
A학생은 나에게 '왜요?'라고 짧게 물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