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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기 위한 여행의 준비

여행지 선정부터 여행 정보 수집까지

by 여행작가 윤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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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명절 때 가족 모임에 참여하는 대신 여행을 가는 경우가 흔하지만, 내가 막 여행에 눈을 떴을 무렵만 해도 그런 행동은 튀는 축에 속했다. 다행히도 우리 집은 그런 형식적인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고, 회사에서는 몇 년 동안 무턱대고 명절 전후 휴가를 쓰는 당돌한 직원에 대해 반 포기상태였다. 상사에게 여행 일정을 선포하는 순간, 환희의 감정과 함께 근심도 몰려왔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은 나중 일이었다. 부재 시를 대비해 평소 두 배 이상 되는 일을 몇 주간 야근을 해가며 처리해야 했다. 늦은 밤, 지하철 안에서 가이드북을 간간이 들여다보거나,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블로그를 뒤적거리는 것이 여행 준비의 전부였다. 업무와 여행의 무게에 몸이 짓눌리는 것 같았고, 실제로 그랬다. 어깨와 목에 담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해 나중에는 침을 맞고 떠나는 것이 여행 전 치러야 할 의식이 됐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시간대별로 일정이 정리된 엑셀 표를 보며 쫓기듯 다녔다. 그야말로 미션 클리어식 여행이었다. 많이 찍으면 찍을수록 제대로 된 여행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도장 찍듯 인증샷을 남기고 돌아와서는 그 사진을 엮어 포토북을 만들었다. 그 무렵의 나는 어떤 여행을 한 것일까? 지금 와서 그때의 여행을 상기해보려 해도 기억은 증발한 것처럼 부옇다. 먼지 쌓인 포토북을 들춰보며 그때 기억을 더듬어볼 뿐이다. 물론 여행의 가치는 본인이 처한 환경, 스타일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 단언할 수 없다. 단지 자로 잰 듯 한 날카로운 시간 사이를 따라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여행이 내게 맞지 않은 것뿐이다.


여행 횟수가 늘어나고 여행이 업이 되면서 조금 다른 방식의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한 곳에 오래 머물고, 의무적으로 봐야 하는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에 깊숙이 파묻혀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 한창 유행하는 '살기 여행'은 내 호흡과 딱 맞아떨어진다. 그런 느긋한 여행이 번지고 있는 것이 반갑기도 하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여전히 과하다 싶을 만큼 여행 사전 준비를 꼼꼼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준비'라는 것은 여행 일정표를 짜는 것보다 더 넓은 범위다. 예컨대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꼭 해야 할 일'에 대한 리스트를 만든다던가,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책을 조사한다던가.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를 발견하기 위해 해외에서 생산된 인터넷 자료를 서치하기도 한다. 어떨 때는 여행을 할 때보다 사전 조사할 때 엔돌핀이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이런 사전 작업은 여행 글감을 더 풍부하게 하는 건 물론, 나만의 시각이 담긴 색다른 여행이 가능하게끔 한다.




/여행지는 어떻게 선정하는가?


여러분이 당장 시간이 되고, 자금도 충분하다면 어디로 여행을 떠날 것인가? 각자 마음에 담고 있는 여행지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TV 프로그램에서 마음에 드는 여행지를 발견하거나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으로 그 도시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는 경우라던가. 나 역시 비슷하다. 뉴스에 보도되는 도시를 보고 여행하기 괜찮은 곳인지 습관처럼 찾아보는 것과 매일 저녁 7시면 홈쇼핑에 나온 여행 상품의 가치를 재보는 등 약간의 직업병을 제외하면 여러분과 똑같다. 처음 내 여행의 시작은 남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여행 초보의 정석과도 같은 서유럽 4개국 투어가 시작이었다. 처음이라 뭐든 좋았다. 짧은 일정 탓에 반일만에 런던을 돌아봐야 했던 것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스위스행 밤기차를 타는 것도. 모든 것이 낭만이었다. 여행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한 나라에서만을 파기 시작했다. 그걸로는 부족해 마음에 드는 몇 개 도시에만 머물다가 지금은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를 위주로 찾고 있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자는 나름의 여행 작가의 사명 때문이기도 하고, 여행이란 낯선 세계와 문화를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정보는 해외에서 생산되는 콘텐츠 즉 해외에서 발행하는 여행 매체 기사나 블로그 등을 통해 얻거나, 마음이 끌리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 힌트를 얻는다. 최근에는 영화 <비포 미드나잇>에 등장한 그리스 '카르다밀리 섬'과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배경인 이탈리아 작은 시골 마을 '크레마'를 리스트 상위에 올려두었다.




/여행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


거창하게 '여행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이라는 부제를 붙였지만, 사실 이게 나만 아는 알짜배기 정보라고 확신할 순 없다. 이 글을 읽는 분 중 더 효율적으로 더 똑똑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조금은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적어보겠다.


일단 항공권을 예약하면 바로 정보 수집의 단계에 들어간다. 시작은 이렇다. 그 나라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떤지, 문화는 어떤지, 그 나라 중에 특별히 마음이 끌리는 도시가 있는지 찾아본다. 가이드북은 오로지 이런 전체적인 결을 파악하는 데만 활용한다. 바쁜 직장인들에게 가이드북은 그야말로 꿀 같은 정보가 넘쳐나는 없어서는 안 될 자료지만, 특색 있는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겐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여행 준비에 드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만, 남들 다 가는 루트로만 가는 뻔한 여행을 하거나 숨겨진 로컬 맛집을 놓칠 수도 있는 것이다. 대략적인 여행지의 분위기를 파악했다면 여행에 참고할 자료를 수집한다. 그 나라를 배경으로 한 문학, 역사, 문화 책을 파기 시작하는 단계로 내가 여행 준비 중 가장 공들이는 부분이다. 특히 예술가를 동경하는 나는 문학 서적을 주로 찾아본다. 그러다 그들이 추천하는 도시라는 소개가 나오면, 가지 않고 견딜 수 없게 된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은 릴케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이라고 극찬했던 곳이다. 프로방스의 아를과 발렁솔 마을이 고흐가 사랑했던 도시라는 것까지 알고 나면 그 도시는 내가 꼭 가야만 하는 곳이 되고 만다.


객관적인 정보는 다른 루트로 조사한다. 관광청이나 도시 단위로 운영하는 공식 홈페이지에 의외로 알짜배기 정보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군산 여행을 계획한다면, 가장 풍부한 정보가 있는 곳은 군산시에서 운영하는 관광 홈페이지다. 꼭 가봐야 할 관광지는 물론, 추천 루트에서부터 숙박, 음식점 등 관광하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가 여기 있다. 독일의 베르히테스가덴을 여행할 때였다. 베르히테스가덴은 독일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로 독일인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다. 숙소를 예약하려고 했지만 숙박 사이트에서 숙소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베르히테스가덴 공식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다가 담당자에게 '숙소를 예약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메일로 문의했다. 말할 수 없이 친절한 담당자는 내 일정에 예약이 가능한 숙박 시설 정보를 무려 PDF 파일로 가지런하게 정리해 보내왔다. 덕분에 직접 만든 치즈가 매일 아침 식탁에 오르고 인심이 넉넉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독일 전통 가옥에서 묵을 수 있었다. 혹시 언어가 부담스럽다면, 크롬 브라우저의 홈페이지 자동 번역 기능을 사용하면 문제없다(디지털 시대에 여행 작가가 된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현지에서도 물론 정보를 수집하는 경로는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현지인에게 생생한 정보를 얻는 것인데 이를테면 인포메이션에 가서 당신이 오늘 갈 레스토랑이 어디인지 묻는다면, 로컬 맛집을 단번에 알아낼 수 있다. 현지에서 정보를 얻는 법은 기회가 되면 다음에 풀어놓도록 하겠다.


게으른 내가 즐겨 쓰는 정보 수집 방법도 있다. 구글 알리미를 사용하면 가만히 앉아서 내가 원하는 정보를 매일 받아볼 수 있다. 내가 가려는 도시 키워드나 내가 원하는 정보 키워드를 입력해 놓고 하루에 한 번씩 체크해 원하는 정보만을 스크랩해둔다. 피들리(FEEDLY)도 유용하다. RSS 리더로 원하는 정보를 한데 모아서 보여주는 맞춤형 정보 플랫폼이라고 보면 되겠다. 유용한 블로그나 웹사이트를 내 피들리에 등록해 놓으면, 새 글이 업데이트되는 대로 피들리 앱을 통해 한눈에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여기에 여행 관련 해외 잡지나 웹사이트를 등록해 놓으면 편리하다.


*이 외에도 여행에 대한 정보 관리는 모두 에버노트를 통해 관리한다. 에버노트로 여행 준비하는 법에 대해 이전에 브런치에 올린 글을 공유한다 https://brunch.co.kr/@yjungin23/15




여행을 하는데 이 정도까지 공을 들여야 하냐고? 물론 아니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도 좋다. 그냥 떠나는 여행도 여행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갔을 때 더 스릴 있고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다만 꼼꼼한 여행 준비의 장점은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것에 있다. 사전 준비는 치밀하게 해놓은 후, 정작 여행지에 가서는 모든 것을 놓는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수많은 선택지 중 내가 당장 하고 싶은 일이므로 안심한다. 만약 책을 쓸 계획을 갖고 여행한다면 철저한 준비는 필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부한 말이 여기에 딱 맞아떨어진다. 특히 여행기가 일기 정도의 글이라 고민인 분이 있다면 이런 사전 공부가 풍부한 글감을 가져오는 건 물론, '나만의 관점'을 가진 글을 쓰는데 꽤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두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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