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꿈 일기

by 그로칼랭

독립운동하는 꿈을 꾸었다. 평소 나는 소심하여 다른 사람 눈에 띄는 것을 꺼리고 용기가 없어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는 자였다. 하지만 꿈속의 나는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다.


하루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동료들과 함께 쫓겨 산으로 도망쳤다.

하루는 여학생으로 분하여 일본인들과 어울려 정보를 알아냈다.

하루는 버려진 건물에 숨어 목숨을 유지하길 빌었다.

하루는 다른 동지가 잡혀가는 것을 보며 안도와 절망을 느꼈다.


만약 일본군에게 들켜 목숨을 잃었다면, 마치 다시 기회를 주듯 다음날 똑같은 상황의 꿈을 꾸었다. 그럼 나는 전날의 기억을 되살려 동지들과 위기를 벗어나곤 했다.


함께 하는 동지들은 항상 바뀌었으나, 한 남자만은 계속 꿈에 등장했다. 그는 나 대신 목숨을 잃기도 했으며 총에 맞은 나를 안고 빗줄기 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의 모든 독립운동은 그와 함께였다. 꿈에서 깨어나면 다른 일은 자세히 기억하지 못해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그의 형형한 눈빛만은 방금 본 것처럼 뚜렷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수풀이 우거진 산을 오를 때, 먹구름이 끼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달릴 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암흑 같은 건물 안에서 당장이라도 잡힐까 숨을 죽이고 있을 때에도 그의 눈빛만은 나를 향해 빛나고 있었다.


가슴이 터질 듯한 상황을 반복해서 겪으며 나는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놀란 심장이 곧 터질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서양식 건물이라 했다. 동네 사람들은 타인과 건물을 공유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몸을 사리고 있었기 때문에 건물은 한동안 비어있는 듯했다. 한 달이 지난 뒤, 타지에서 온 사람이 그 건물에 처음으로 입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사람은 폐쇄적인 마을 분위기를 의식한 듯 마을 사람들에게 떡을 돌리는 것 같았다. 드디어 우리 집의 차례인 듯,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듣자 마치 꿈을 꾸고 난 후처럼 가슴이 뛰었다. 뛰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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