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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Nov 02. 2021

화려한 가을 색에 빠지다.ㅡ덕항산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72화 덕항산

덕항산(德項山).

산을 조금 안다는 사람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물론 나도 산림청에서 100대 명산으로 선정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산이다.

그렇지만 그 산에 있는 환선굴은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환선굴은 아이들 어렸을때 다녀왔던 동굴이지만 산이름은 몰랐었다.

가을의 한 가운데.

그 생소한 이름의 덕항산을 오르기 위해서 산행 들머리인 대이리에 도착했다.



너와집

산행 기점인 대이리에는 그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민속자료 몇가지가 보존되어 있었다.

그중에 너와집은 짚이나 기와지붕 대신 나무판자를 이용해서 지붕을 만든 집이다.

이곳 너와집은 실제 이 마을에 있던 집을 보존했다고 한다.



통방아

100여년 전에 실제로 곡식을 찧었던 용도로 썼던 물래방아도 있다.



민속자료들을 간단히 둘러보고 본격적인 산행에 든다.

산행 초입이 의외로 거칠다.



거칠뿐만아니라 몸이 풀릴 여유도 없이 바로 급경사부터 시작되었다.

덕분에 가을아침 추위에 움추러들었던 몸에 빠르게 온기가 돌았다.



그렇게 잘 정비되지 않은 거친 산길을 20여분 오르자 건너편 정상부의 화려한 모습이 조망되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을 직각으로 받은 산 정상부의 화려한 모습이 마치 환등기의 화면처럼 나타난 것이다.



올라야 할 정상부다.

단풍의 최절정을 맞은 정상부는 화려했다.

덕항산이 이런 산이었던가?...



사실 오늘 덕항산은 가을에 오르면 좋을 산들 중에서 100대 명산에 포함된 산을 찾다가 별 기대없이 선택한 산이다.



덕항산도 동해에 인접해 있는 여느 산들처럼 동고서저(東高西低)형 산이다.

그래서 동쪽은 급경사이고 서쪽은 완경사인 산답게 시작부터 된 비탈길이다.



내가 서있는 곳은 아직 해를 볼 수 없지만 멀리 건너편 산봉우리에는 따스한 햇볕이 만추의 가을 산의 화려함을 더욱 화려하게 해주고 있었다.

마치 한편의 와이드 입체영상을 보듯 그 장면을 보면서 산행을 계속한다.



산행 기점에 도착할때 까지도 사실 덕항산의 가을 풍경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환선굴로 많이 알려져 있고 단풍으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내심 가을 산행지로 적합하지 않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산행시작 10여분만에 모두 기우로 끝났다.



꽃인들 이보다 이쁠까?

그 어떤 유명한 화가의 수채화인들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색감을 다 모아 놓은듯하다.

아니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잘 배열해 놓은 듯 했다.

자연의 조화,자연의 예술, 그 끝은 어디일까?



저기 화려한 산 중턱에 그 유명한 환선굴이 보인다.

덕항산에는 유난히 동굴이 많다.

그래서 대이동굴지대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 178호로 지정될 정도다.



덕항산에 오르는 길은 크게 세가지다.

그중에 가장 쉬운 코스는 태백쪽의 예수원에서 오르는 코스다.

나머지 두곳은 삼척쪽 골말로 오르는 길과 환선굴쪽으로 돌아서 오르는 길이다.



삼척쪽은 두곳 다 가파르다.

특히 골말 코스는 거의 직벽에 가깝다.

내가 오늘 오르는 코스는 가파르기는 하지만 철계단과 로프가 잘 설치되어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지만 고도의 체력을 필요로 하는 코스다.



그 가파른 코스를 두시간 넘게 오르는 동안 전혀 힘들지 않았다.

단풍길을 걷는 기분도 좋았지만 반대쪽 환선봉의 화려한 조망에 정신이 팔려서 힘듬을 느낄 틈이 없었던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번에는 내가 걷는 능선에도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햇볕이 들자 빛의 따스함에 단풍의 화려함이 더해져서 화사함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길은 조금씩 경사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능선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경사도가 낮아지면서 숲이 깊어졌다.

숲은 온통 붉은색 계열인 단풍 숲이다.

가을 햇살이 붉은 잎들 사이를 통과하면서 아침 공기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역광으로 보는 단풍.

아침 햇살을 받은 화사한 그 단풍길을 걷는 기분이 더없이 상쾌했다.



단풍밭에선 고사목도 훌륭한 소품이었다.

천년쯤은 살았을 고사목.

죽어서도 몇십년은 되었을듯 싶은 고사목을 화려한 형형색색의 단풍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또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제 능선길에 올라서는 계단을 오른다.

산행시작 2시간만이다.

그러니까 2시간동안 오르기만 한 것이다.



능선길에 올라서자 직벽에 가까웠던 오르막길과 달리 걷기좋은 화려한 숲길이다.

덕분에 모처럼 힐링산행을 한다.



그렇게 힐링하듯 걷다보니 어느새 정상이다.

다른 산들이 대부분 정상부근에서 난이도가 높아지는데 반해서 덕항산 대이리코스는 정상부에서 오히려 편안한 산행을 한 것이다.

산행시작한지 3시간 30 여분 만이다.

다른 사람들은 두시간쯤이면 오를 수 있다는 코스다.

중간에 아침을 먹고 사진찍는 시간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황홀한 풍경에 취해서 어리버리 했던 시간이 많아서이다.



덕항산 정상은 보통 산의 정상 이미지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있었다.

그냥 백두대간의 길목 같은 느낌의 정상이었다.

그래서인지 정상석도 아담하다.

만약 정상석이 없다면 아무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인 그런 정상이다.



거기에다 서쪽은 숲이 우거진 완만한 경사지라서 아예 조망이 없고 동쪽은 낭떠러지 지형이라서 조망이 가능하지만 잡목에 가려서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잎이 진 상태라서 가지사이로 보이는 반대쪽 환선봉 능선과 동쪽으로 펼쳐진 첩첩 산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는것이 위안이었다.



정상에서 잠시 인증샷만 남기고 지각산(환선봉)으로 향한다.

덕항산에서 지각산까지는 1.7km다.

약간의 오르막이 있지만 능선길이라서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환선봉은 덕항산보다 10여m 더 높다.

아마도 환선봉을 지각산이라고도 부르듯 어쩌면 하나의 산으로 불렸던것 같다.

그런데 산세나 높이를 봐도 더 나은것 같은데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덕항산에 예속되어 있다.



'덕항산'이라는 독특한 산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옛날 덕항산 동쪽의 삼척지역 사람들이 극심한 기근에 빠졌다.

그래서 삭막한 절벽의 덕항산을 정처없이 넘었다.

산을 넘자 동쪽지역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세에 비해서 완만한 경사로 이루러진 서쪽지역은 화전이라도 일굴 수 있었다.



그래서 산을 넘어가면 화전이라도 일굴 수 있는 평평한 땅이 많아 덕을 봤다고 해서 덕을 봤다는 의미의 "덕메기산"으로 부르던것을 일제시대에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별 어의도 맞지않은 지금의 德項山이 되었다고 한다.



덕항산에서 환선봉으로 가는 길에 본 풍력단지와 고랭지 채소밭이다.

산이름 유래에 전해져오는 그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해주는듯한 풍경이다.



환선봉에 도착했다.

환선봉도 정상석 부근은 덕항산과 비슷한 지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상석 뒷쪽으로 돌출된 암벽끝에서는 자암재와 풍력발전단지의 아름다운 조망을 즐길 수 있다.



그 조망점이 사실 이번 산행의 가장 아름다운 조망점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산객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지나쳤다.



당겨본 고랭지 배추밭과 풍력단지다.

옛날에 화전을 일구었을 땅이 이제 정상적인 농사의 땅이 된 것이다.



중턱까지 내려온 단풍.

꽃은 가까이 보아야 아름답고 단풍은 멀리 보아야 아름답다.

물론 더러 가까이서 보아도 예쁜 단풍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가까이서 보면 실망이 크다.



특히 평지의 단풍보다 비바람과 기온차가 심한 산지의 단풍이 더 그렇다.



덕항산에는 의외로 붉은 계열의 단풍이 많았다.

그래서 화려하다.

단풍명소라는 내장산 단풍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것 같다.



단지 내장산보다 교통이 불편하고 산세가 험하다는 결점이 있을 뿐이다.



하산은 자암재에서 환선굴 방향으로 한다.

그 중간쯤은 말 그대로 단풍의 바다였다.



지금 나는 반대쪽에서 아침에 올라갈때 봤던 건너편 산등성이 풍경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붉은것은 단풍잎뿐이 아니다.

나무도 빨갛고 바위도 빨갛고 길도 빨갛고 공기도 빨갰다.

단풍잎을 통과한 햇빛이 세상을 온통 붉그스름한 빛으로 만들었다.

황홀함의 극치였다.

정말 옷에 빨간 물이라도 들것 같은 착각에 빠지며 핑크빛 공기를 폐 깊숙히 들이마셔 본다.



아무튼 오늘 최적기의 덕항산 단풍을 본다.

정상 부근도 아직 삭막하지 않았고 중턱 부근은 완전 피크였다.

거기에다 아랫쪽도 드문드문 단풍이 들어서 가을 분위기가 나는 풍경.

운좋게 아주 적절한 시기에 온것이다.



이제 한국의 그랜드케년이라는 협곡을 지나간다.

협곡의 거친 바위에도 온통 단풍 물결이다.



마치 유럽의 고성을 연산케 하는 풍경이다.

단풍이 에워싸고 있는 기암의 모습이 마치 유럽의 고성을 단풍이 물들이고 있는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역광의 화사한 잡목숲이 한 폭의 파스텔화 같다.

이보다 더 화사 할 수는 없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아무튼 덕항산의 재발견이다.



잠시 화려한 단풍에 빠져보자.



덕항산의 재발견?

단풍뿐만이 아니었다.

중국에서나 봄 직한 기암 풍경 또한 재발견이다.



특이한건 기암괴석이 정상부에 있는게 아니라 산중턱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그 기암괴석에도 단풍꽃이 피었다.



동굴산 답게 여기도 이름없는 동굴이 있다.

사실 다른 산이었더라면 거창한 이름 하나쯤 있을텐데 아무 표기도 없다.



덕항산엔 환선굴과 대금굴등 잘 알려져 있는 동굴 말고도 미개방 동굴과 발굴되지 않은 동굴들이 많다고 한다.



그중에 환선굴은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하니까 어쩌면 산 전체가 속이 텅텅 빈 산이 아닐까 싶다.

속이 거미줄처럼 뚫려있는 산인 셈이다.



드디어 긴 산행이 끝나간다.

아직도 주차장까지는 30분쯤 더 가야하지만 이제 환선굴 가는 길과 합류하기때문에 사실상의 산행이 끝나는 지점이다.



선녀폭포.

환선굴에서 나온 물줄기가 폭포를 이룬것이란다.


오후 3시에 하산완료를 했다.

7시간 반만이다.

그러나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환상적인 산행이었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절정의 단풍.

시작부터 끝까지 마치 선계에라도 들어갔다 온 기분이다.



*산행코스:환선굴 주차장 ㅡ골말 ㅡ동산고뎅이 ㅡ장암목 ㅡ926철계단 ㅡ사거리 쉼터 ㅡ덕항산 정상 ㅡ사거리 쉼터 ㅡ환선봉 ㅡ헬기장 ㅡ자암재 ㅡ제2전망대 ㅡ제1전망대 ㅡ천연동굴 ㅡ환선굴 ㅡ주차장(아침. 점심,사진촬영 포함 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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