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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Dec 03. 2021

은둔의 산 운장산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77화 운장산

전라북도 진안의 운장산은 높이가 1,126m로 1000m급이 훌쩍 넘는 산인데도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산이다.

그러나 높은 산답게 전망도 좋고 운해도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오전에는 흐릴 것이라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혹시 운해를 볼 수 있을까 해서 새벽4시30분에 집을 나섰다.

하지만 집에서 운장산 부근까지는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들머리를 찾는데 50여분을 소비해 버렸다.

네비 탓도 있지만 역시 나의 준비부족 때문이다.

산행 들머리인 내처사동에 도착했을땐 벌써 7시45분.

그렇지만 산길은 안개에 휩싸여있어서 이른 새벽같았다.



들머리에 있는 농가에서 요즘 보기 드문 방목하는 닭들이 한가롭게 노니는 모습이 정겹다.

말 그대로 진정한 동물복지 농장인 셈이다.

내가 어렸을적만 해도 대부분의 닭들은 저렇게 유유자적 식구처럼 키웠는데 지금은 저렇게 키우는 닭들이 얼마나 될까?


 

내처사동까지는 버스정류장이 있는걸 보니 버스도 하루에 몇 번쯤 들어오는 모양이다.

뛰엄쮜엄 대여섯집 정도되는 동네는 식당도 하고 토종닭도 기르고 곶감도 말리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이었다. 


  

동네를 지나 본격적인 산길에 들어섰다.

등산로는 산죽 사이로 가늘게 나 있다.

산객들이 많이 찿지 않은 산답게 산죽 사이로 난 길이 좁았다.

덕분에 늦가을 이슬에 바지가 다 젖었다.



내처사동 방향은 산죽이 많고 소나무는 셀 수 있을 정도록 적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숲이  활엽수로 이루워져 있어서 단풍 적기에만 오른다면 그 어떤산에도 뒤지지않을 단풍명산 일것 같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런데도 등산객이 별로 없다.

별로 없는게 아니라 나 혼자 뿐이다.

그래서 이른 시간 한적한 깊은 산길은 으스스했다.

으스스한 산길에서는 가끔씩 후두둑 낙엽떨어지는 소리도 정겹게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그다지 볼거리가 많지 않은 산인데 운무까지 덮혀서 땅만 보고 오르다보니 어느새 능선길에 도착했다.

고도가 제법 높은 곳에서 오르기 시작한 때문이다.

능선에서는 조망 대신 운무가 밀려왔다 밀려 가기를 반복하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벌써 서리가 내린적도 있었을텐데 바위를 덮고 있는 이끼가 생생하다.

아무튼 덕분에 때아닌 연두색을 본다.



운무는 잠깐 걷히는듯 싶다가도 어느새 다시 밀려왔다.

낙업이 진 산등성이에 아직 군데군데 남아있는 단풍이 안개와 구름사이로 비추는 햇살에 더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계속되는 능선길.

운장산은 쉬운산도 아니고 그렇다고 힘든산도 아닌듯 하다.

유유자적 즐기는 산행을 하는 내게는 적당했다.



운장산 산정은 높은 산답게 숲이 키작은 잡목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키작은 잡목 숲 사이사이에 아직 떨구지 못한 단풍의 색감이 늦가을의 정취를 발산하고 있다.

그 정겨운 풍경을 운무가 가렸다가 보여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삼장봉(1,133m)

그렇게 쉬엄쉬엄 걷다보니 어느새 첫 봉우리인 삼장봉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상이라고 하는 운장대는 1,126m.

7m쯤이 낮은데도 왜 운장대를 정상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더 낮은 정상?

표기를 잘 못했다는 기록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측량이 잘못 되었든지 이름을 잘 못 지었든지 누군가의 착오일듯 한데 사람들은 무심코 그냥 운장대를 정상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운무가 걷히고 이제 제법 시야가 넓어졌다.

그래도 운무가 있었을때가 더 운치있었던것 같다.



아직도 위에서 내려다 보면 제법 늦가을 정취를 풍기고 있지만 실제 산길은 초겨울 풍경이다.



이제 다시 정상을 향해서 간다.

삼장봉에서 정상까지는 20여분 거리에 있다.



정상 가는길에 처음 만나는 산객이다.

저 분도 혼자 온 모양이다.

그런데 식사 중이라서 인사도 건네지 못하고 지나친다.



운장산 정상부는 3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인 운장대를 가운데 두고 비슷한 간격을 두고 동봉과 서봉이 있다.



그중에 정상을 운장대라고 부른다.

운장산은 원래는 주줄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서봉 아래에 있는 오성대라는곳에서 은거하던 조선 중종때의 성리학자 운장 송익필(宋翼弼) 의 호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송익필은 서얼출신이지만 율곡 이이, 송강 정철등과 교류 할 정도로 학식이 높았다.

그러나 임진왜란 무렵 당파에 휘말려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때 이곳 운장산 아래로 피신했다고 한다.



저 골짜기 골짜기마다에 마을이 이어져 있다는게 신기 하다.

오천년 우리나라를 이어 온 건 어쩌면 도회지에서 흥청거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산골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저들인지도 모른다.



잠시 골짜기 골짜기 마다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아스라한 산골 풍경에 빠져 본다.



"산은 산끼리 이어지고 물은 물끼리 이어진다."

대동여지도의 고산자 김정호의 대사가 생각났다.



지금이야 사진으로 또는 측량기술로 지도를 만들지만 김정호는 높은 산에서 눈으로 보고 그렸다.

손수 높은 산에 올라서서 이러한 풍경을 사실적으로 보면서 그린 지도.

그런 지도를 완성한 성취감이 어땠을까? 짐작이 간다.



아직 어려 보이는 친구들인데 여기까지 올라왔다는게 신기했다.

남매일련지, 친구일련지?

아무튼 저 나이에 산정에 올라왔다는것 만으로도 대견하고 좋아 보였다.



운무가 걷힌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그 구름 사이로 빛이 내린다.

늦가을 날씨 답게 변화무쌍한 하늘이다.



운장산은 전형적인 육산이다.

다만 세개의 봉우리 정상부는 바위로 이루워져 있어서 나무가 없다.

그래서 사방팔방 조망이 아주 좋다.



운무가 걷혔지만 그렇다고 날씨가 아주 쾌청하지도 않다.

그러나 나름대로 육안으로 조망을 즐기기엔 괜찮은 날씨다.



정상에서 간단하게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나니 어느새 하늘이 바뀌어 있다.

말 그대로 변화무쌍한 하늘이다.



유유자적 시간 보내기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자가운전이라서 되도록이면 빨리 내려가야 한다.



하산은 다시 차가 있는 내처사동으로 원점회귀다.



하산길에서는 운무때문에 올라올때 보지 못한 풍경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볼거리가 있는것도 아니다.

그래서 일사천리로 하산한다.



오늘은 운무가 춤추는 풍경도 감상하고.

먹구름낀 풍경도 보고.

파아란 하늘도 보고.

다양한 조건의 풍경을 섭렵한 하루였다.



다시 산행 원점인 내처사동에 도착했다.

거칠은 암봉구간이 거의 없어서 산행이라기보다 트레킹에 가까운 산행이었다.

더군다니 오늘 하루종일 산행중에 만난 산객이 어린 학생들 포함 3명이었던것 같다.

덕분에 수행이라도 하듯 정적인 산행을 했다.

아무튼 운장산은 호젓한 산행을 즐기고 싶은 산객들에게 안성맞춤일듯 했다.



*산행코스: 내처사동 ㅡ삼장대 ㅡ운장산 ㅡ서봉 ㅡ운장산 ㅡ동봉 ㅡ내처사동((왕복8km,천천히5시간이면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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