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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Jan 05. 2022

백암산 설경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82화 백암산

옛날에는 그러니까 50여년 전에는 문밖에만 나서면 겨우내 눈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하얀 눈과 얼음은 겨울의 상징이었다.

그때는 초겨울에 골목에 쌓인 눈이 봄이 되어서야 녹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눈이 겨울 손님쯤으로 되어버렸다.

겨울에 어쩌다 볼 수 있는 설경.

요즘은 눈 쌓인 겨울풍경은 물론 눈이 내리는 풍경도 쉽게 볼 수 없는 겨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겨울 산행에서도 설경을 보기가 쉽지않다.

설경을 보기 위해서는 일부러 눈오는 날을 택하거나 눈이 온 다음 날을 택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또다른 문제점도 해결 해야 한다.

교통편이다.

빙판길 자가운전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대중교통도 열차가 눈길에는 최적화가 되어있기때문에 열차로 갈 수 있는 산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또 개인적으로는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이어야 한다.

비교적 그에 부합하는 산이 백양사역에서 가까운 장성의 백암산이었다.

그래서 남부지방에 눈이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그 백암산 산행에 나섰다.



계획에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환승까지 해가며 백양사역에 도착한 시간이 10시45분.

지방 산행으로는 비교적 늦은 시간이다.

그러나 다행히 현지에는 눈은 많이 왔지만 비교적 기온이 높아 차들이 원활하게 다녔다.

백양사역에서 택시로 15분쯤달려서 산행 기점인 백양사에 도착했다.



백양사 초입은 요즘 보기 쉽지 않은 멋진 설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내 유년의 기억으로는 눈이 한 번 내리면 이런 풍경이 몇일이고 갔지만 지금은 오후가 되면 바로 녹아버린다.

그사이 겨울철 평균 기온이 몇도쯤 올랐을 뿐이라는데 그렇고보면 정말 무서운 것이 지구 온난화다.

하긴 겨울에 설경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탓하는 것은 너무 낭만적인 생각인지도 모른다.

요즘 그때문에 지구촌 곳곳이 자연재해에 몸살을 앓고 있으니 말이다.

뭐 사막에 눈이 왔다는둥, 겨울에 홍수가 났다는둥, 때아닌 허리케인이 미국 동부를 휩쓸었다는둥...

그런것들 보다도 더 무서운 뉴스는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몇십년 후에는 다 녹아 없어질 거라는 뉴스다.

그렇게 되면 지금 육지의 상당부분이 바다에 잠길거라고 한다.



이제 백양사 경내로 들어선다.

고즈넉한 절마당에 이따금씩 스쳐지나가는 겨울 바람에 눈보라가 쳤다.

그때마다 고즈넉한 절마당이 스산해지곤 했다.



역시 산사의 풍경은 눈내리는 겨울 풍경이 제 멋이다.

눈 내리는 산사는 마치 천년쯤 과거의 풍경이라도 되는 듯 한 착각에 빠지게 해서 좋다.

아니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그때의 눈덮힌 풍경이나 지금의 눈덮힌 풍경이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산사의 설경뿐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을 재색 승복을 입고 이따금씩 지나가는 스님들의 모습도 나의 상상을 과거로 데려다 주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과거의 세상 모습과 미래의 세상 모습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래서 문득 문득 옛날에는 어땠을까?

100년쯤 뒤에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런 상상에 버릇처럼 빠지곤 한다.



백양사는 백제시대인 632년(무왕 33년)에 창건하여 산이름을 따서 백암사라 부르다가 조선 선조때 환양선사가 백양사라 고쳐불렀다고 한다.



전해지는 설화에 의하면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흰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된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양이 나타나 "저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업장 소멸하여 다시 천상으로 환생하게 되었다."며 절을 하였다고 한다.

그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단다.



현재 백양사의 모습은 만암선사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만암선사가 현재 남아있는 대웅전과 사천왕문 등을 건립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단다.



만암선사는 100여년전 스님이다.

만암선사는 "이뭣고"라는 화두로 7년씩이나 씨름한 끝에 득도를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뭣고"가 궁금해졌다.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아도 도대체 모르겠다.

기껏해야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직역한 의미만 알송달송할 뿐이다.

그런데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승께서 7년을 붙들고 씨름한 끝에 득도를 했다는데 잠깐의 검색으로 어찌 알 수 있을까?



사실 백양사가 유명세를 탄것은 애기단풍 때문이다.

가을이면 그 애기단풍으로 백양사는 화려한 절마당이 된다.



그 화려한 애기단풍으로 유명한 백양사 경내가 오늘은 온통 하얗다.

순백의 풍경으로 바뀐 것이다.

이 이상의 동양화가 또 있을까 싶은 풍경이다.



정말 미적 감각만 있다면 작품을 만들 수도 있을것 같은 풍경이다.

아뭏튼 보기힘든 겨울풍경에 눈은 호강을 한다.



대웅전과 그 뒷쪽 오늘 올라야 할 백학봉이다.



산행을 미루고 잠시 절마당의 설경에 취해 본다.



백양사는 고향과 가까워서 꽤 여러번 찾았던 곳이다.

왠지 백양사 하면 가을에 찾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절이다.

그래서 대부분 가을에 찾았었다.

대부분의 사찰은 겨울 풍경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백양사의 겨울 풍경은 유독 아름다운것 같다.

백양사의 재발견이다.

그 아름다운 설경을 두고 이제 갈 길이 바쁜 산행을 시작 해야 한다.



비자나무.

백양사 경내를 나와 산길에 들어서면 만나는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된 비자나무다.




일본 남쪽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 비자나무는 아몬드와 흡사한 열매를 맺는다.

그 비자열매는 고소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추억의 열매 중에 하나다.

어렸을때 어머님께서 다니시던 '불회사'라는 절에도 비자나무 숲이 있었다.

그래서 어쩌다 절에 다녀오시면 사 오시는건지 주워 오느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비자를 가져오셨다.

먹거리가 많지 않던 그시절 그 비자는 얼마나 맛이 있던지.

그런데 왜 그 비자는 대중화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나무가 쉽게 자라지 않은 때문이리라.



본격적인 등산로에 접어들기 전에 만나는 '국기제단'이다.

좀 생소한 이름인데 옛날 국가에서 질병이나 전쟁등으로 어려움이 있을때 나라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국기제단을 지나면서 비자림 군락지가 시작되고 흰 눈을 잔뜩 이고있는 비자나무 숲 사이로 본격적인 등산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백암산의 숲은 비자나무와 단풍나무,갈참나무등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서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산이지만 오늘은 환상적인 설경이 그 어떤 겨울산 못지않은 설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매년 겨울 산행을 즐겨하지만 이렇게 환상적인 풍경을 대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설경이란게 워낙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산행 전날이나 산행 하는날 눈이 와야하고 일정한 낮은 온도가 유지되어야 하고 교통편이 가능해야 한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지 15분쯤만에 나오는 약사암이다.

요즘 보기드문 찻길이 없는 암자다.

여기까지는 일반인도 조금만 힘들이면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규모에 비해 공양 공간인듯 한 요사채가 잘 꾸며져 있었고 전망대와 쉴만한 공간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백양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다.



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백양사 전경이다.

유난히 아늑해 보이는 백양사 설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약사암을 오른쪽으로 돌아서 오르다보면 나오는 영천굴이다.

영천암은 백양사를 중창한 환양선사가 설법을 펼쳤던 곳이다.

그때 흰 양이 설법을 듣고 환생 했다고 한다.



영천암 내부다.



영천암을 지나면서 백학봉까지는 거의 70도에 가까운 오르막길이다.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지만 백암산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오르는 중간에 뒤돌아 본 백양사다.

나는 산행중 습관처럼 뒤돌아 보기를 좋아 한다.

뒤돌아 보는 풍경에 중독이라도 된 듯.

실제로 앞으로 보는 풍경과 뒤돌아 보는 풍경이 천지 차이 일때가 많다.



백학봉에 오르는 계단이다.

그 계단에 눈이 쌓여서 계단의 구분이 없어졌다.

구분 없는 계단을 더듬거리며 오르고 또 오른다.



이윽고 백학봉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멋진 장성호의 조망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꽁꽁 언 장성호가 눈에 덮여 있다.

마치 호수가 동면에 든 듯 고요하다.



백학봉을 지나 이제 상왕봉을 향해서 간다.

능선길로 이루어진 그 길은 멋진 조망과 함께한다.



백학봉에서 상왕봉으로 가는길에는 소나무가 많지는 않지만 예술적인 소나무들이 몇그루 있다.

그 소나무들은 바람이 만들어낸 작품인듯 한 멋있는 수형을 자랑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멋진 자태에 눈꽃과 상고대로 화장까지 해서 마치 하나의 예술품이라도 된 듯 했다.






계속 이어지는 산수화를 방불케하는 멋진 조망이 가는 발걸음을 자꾸 멈추게 한다.

겨울산이 보여 줄 수 있는 멋진 풍경은 다 보여주고 있는것 같다. 



상왕봉 정상이다.

멋진 조망에 취해서 걷다보니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상왕봉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부에서는 환상적인 눈꽃이 수고한 산객들을 맞아주고 있었다.

상왕봉은 높이가 741m로 그 자체만으로는 아주 특별한 정상은 아니지만 조망이 아름답고 오늘은 눈꽃까지 아름다워서 가히 3시간여의 산행의 피로를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사람이 많지 않아서 여유롭게 사진 놀이를 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금상첨화 였다.



백암산은 문자 그대로 바위가 희다고 해서 부르게 된 이름이다.

그런데 사실은 백암산 자체는 특별한 볼거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산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산 자체가 멋진 산.

조망이 멋진 산.

그 두가지 조건을 다 갖춘 산이다.



백암산은 두번째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산이다.

두루두루 조망이 좋고 절마당이 아름다운 백양사를 품고 있는 것이다.



상왕봉에서는 바로 본격적인 하산길로 이어진다.

하산은 올라온 길의 반대편 백양계곡으로 한다.



하산 하는 중에 제대로 된 설화를 만났다.

바람과 눈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백암산의 최고봉인 상왕봉은 높이가 741m다.

그 700m급 산정에서 이런 설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마치 1000m급의 태백산이나 소백산, 계방산등에서나 볼 수 있는 설경을 본 것이다.

이건 어느정도 계산 된 산행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행운이 따른 결과다.



백양계곡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은 올라왔던 반대편 등산로보다 경사가 완만해서 눈길에도 어렵지 않게 하산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쉬엄쉬엄 하산하는 동안 잔뜩 찌뿌렸던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하늘을 향해 팔 벌려 춤추는듯 서 있는 가지 사이로 파아란 하늘이 나타났다.



그 파아란 하늘에 흰 뭉개구름이 연신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무성영화 같은 풍경이다.



하산시작 1시간 반만에 백양사에 도착했다.

사실상의 하산이 완료된 것이다.

올라가는 열차시간에 1시간정도 여유있게 산행을 마무리했다.



급조된 눈 산행.

사실 멋진 겨울 산행을 예상하고 결행은 했지만 환상적인 눈꽃과 신비한 상고대까지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오늘 멋진 설경과 함께 할 수 있었던건 순전히 행운이었다.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더 멋있는 겨울산행을 한 것이다.



*산행코스:백양사ㅡ약사암ㅡ영천굴 ㅡ백학봉 ㅡ상왕봉ㅡ사자봉3거리 ㅡ백양계곡 ㅡ백양사(보통걸음 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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