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1화 관악산ㅡ3
30도를 넘나드는 초여름 날씨에 관악산을 오른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짓인지도 모른다.
거기에다 관악산에서도 난코스로 유명한 팔봉능선을 간다고 생각하니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관악산에서 유일하게 가보지 않은 코스를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꺾고 싶지않아서 그대로 진행한다.
더군다나 10여년만에 관악산의 정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울대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전에는 관악산 유원지로 통했던 곳인데 그사이에 관악산공원으로 명칭도 바뀌고 다양한 편의시설과 공원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깔끔하게 정비하고 조경을 잘 해 놓아서 유원지라고 불리던 옛날의 무질서함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동안 서울대 입구에서 시작하는 산행은 주차의 어려움도 있고, 산행거리가 훨씬 멀어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초입의 유원지 느낌의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그동안 서울공대나 과천쪽등등의 주로 다른 코스를 택했었다.
잘 정비는 되었지만 유원지라고 불리던 옛모습을 나름 잘 간직하고 있는 계곡구간을 지나 본격적인 산길에 들어서자 초여름 산 특유의 쌉싸름한 향기가 폐속 깊숙히 들어왔다.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인 셈이다.
관악산은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곳에 위치해 있어서 주로 오후 시간이나 오전 시간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자주 오르는 산 중에 하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좀 많이 필요한 팔봉능선을 아직 가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팔봉능선 산행을위해 서울대 입구에서 학바위 능선으로 올라 주능선을 거처 팔봉정상에서 역으로 능선을 타고 하산 하는 코스를 계획했다.
팔봉능선 산행은 능선 자체도 난이도가 높다고 하지만 그보다도 팔봉능선에 들어서기까지의 접근성이 만만치 않은게 가장 큰 단점이다.
어느쪽에서 오르더라도 팔봉능선 초입까지 거리가 2~3km쯤 되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관악산은 단일 산세를 형성하고 있는듯 하지만 그 산세가 제법 크다.
사당에서 안양까지 마치 거대한 공룡이 길게 누워있는 듯한 형상을 한 산세에 주로 남북으로 크고 작은 능선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좀 큰 능선들은 대부분 한두번 혹은 여러번 오르내렸는데 유일하게 인연을 맺지 못한 능선이 팔봉능선이다.
팔봉능선에 접근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학바위능선에 오르는 길에 만나는 일명 둘리바위다.
밧줄에 메여있는 모습이 둘리라는 이름과는 달리 좀 볼성사납기는 하지만 덕분에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산에서 가끔씩 만나는 로프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극도의 불신의 시대에 극도의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
실제로 서로 믿지 못하고, 헐뜯고 ,속이고 속는...
그러나 사실은 인류 유사이래 가장 신뢰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아래에서 저 로프에 몸을 맡기고 오른다.
잘 묶여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목숨을 거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일상에서도 믿음이 없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수많은 차들은 교차로에서 다른 방향에서 오는 차들이 멈출 것이라는 믿음으로 신호를 보고 달리며, 또 사람들은 그런 믿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시중의 수많은 음식,온 갖 약들은 또 어떤가?
간혹 불량품이 없지는 않지만 확고한 신뢰가 없다면 먹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불신의 시대라고 명명하고 신뢰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산행시작 한시간여만에 학바위능선에 올라섰다.
여기까지는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학바위가 팔봉으로 가는 길에 있지 않기때문에 학바위를 직접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는 다시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수고를 했다.
학바위에서 다시 능선을 타고 10분쯤 오르면 거대한 바위 하나가 나온다.
그 바위를 우회해서 오르면 아이러니 하게도 평탄한 바위다.
거기에 국기가 세워져 있어서 학바위 국기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학바위능선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학바위 능선은 관악산의 여느 능선과 비슷한 느낌의 기암괴석이 줄지어있고,
키작은 분재형 소나무들이 그 기암괴석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아기자기한 능선이다.
건너편에 가야할 팔봉능선이 보이고 그 너머로 이름모를 산그리메가 배경처럼 아스라이 늘어서 있다.
서울 근교의 산에서 항상 느끼는 느낌,
시내에서 올랐는데 마치 멀리 온 산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학바위능선에서 본 팔봉능선은 전혀 거칠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서울쪽으로 돌리면 서울의 서남부와 인천,김포쪽의 확 트인 드넓은 조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조망점마다에서 조망을 즐기며 오르다보면 학바위가 아득해지고 다시 관악산 정상부의 송신탑들이 눈에 들어올 즈음 관악산 종주의 주능선을 만난다.
정상부 아래쪽으로 자운암 능선이 보이고 그 너머로 서울의 남산타워가 한눈에 들어왔다.
자운암능선은 꽤 여러번 오르내린 능선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가장 빠른 코스이기 때문인데 생각보다 거친구간이 많아서 초보자에게는 좀 위험한 코스이기도 하다.
눈에 익은 관악산 주능선에서 정상의 반대쪽 육봉쪽으로 진행한다.
주능선은 관악산 종주때 몇번 걸었던 길이라서 제법 눈에 익은 길이다.
그 구간은 눈에 익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오르내림도 심하지 않고 불꽃바위를 비롯한 기암괴석이 즐비해서
산책하듯 즐기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간쯤에서 만나는 불꽃바위다.
관악산에는 불꽃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몇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름에 걸맞은 불꽃바위로 횃불을 빼닮은 웅장한 바위다.
불꽃바위 꼭대기의 여러갈래 바위조각들 중에서는 숨은 그림찾기하듯 모자바위,부처바위,만두바위등,다양한 형상의 바위들를 찾아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설악산 공룡능선 느낌의 주능선 불꽃바위 구간을 걷다보면 멀리 육봉능선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어서 오늘 주 산행목적인 팔봉능선 입구가 나온다.
물론 공룡능선 느낌이라고해서 공룡능선처럼 험하다는 뜻은 아니다.
말 그대로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드디어 팔봉능선에 들어섰다.
비교적 쉬운 팔봉을 지나 7봉 앞에 서자 거대하고 가파른 암봉이 그 크기 만큼의 위압감으로 나를 압도 했다.
팔봉능선이 왜 난코스인지를 실감케하는 7봉의 아슬아슬한 스릴 넘치는 암벽타기를 하고 나자 기진맥진 해진 내 몸을 회복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다양한 조망이 펼쳐졌다.
다양한 조망을 즐기며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6봉을 향해서 나아간다.
다시 6봉,5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마지막 남은 나의 체력을 모두 빼앗아 버릴 기세다.
그래도 그나마 한가지 위안이 되는건 바위전시장을 방불케하는 기암괴석들이었다.
이제 4봉을 향해서 간다.
팔봉능선의 특징은 멀리서 볼때는 전혀 거칠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산행을 해보면 의외로 험로가 많다.
물론 다른 주등산로처럼 데크 계단등의 시설을 해놓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이사이마다 생명력있는 소나무들이 어김없이 자라고 있는 기암괴석들로 이루어진 암봉들을 릿지하듯 오르내리다보니 어느덧 체력이 고갈되어간다.
거기에다 해마저 기울기 시작해서 쉬엄쉬엄 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오늘 팔봉능선 산행은 오르는 산행이 아니라 팔봉정상에서 내려가는 산행이다.
난코스는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게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지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나 아무리 발걸음을 재촉해도 명품바위들 앞에서는 어쩔수 없이 걸음을 멈출수 밖에 없다.
4봉에서 3봉 사이에는 특히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이 많았다.
길은 조금 더 아기자기 해졌지만,그래도 다른 등산로에 비하면 거칠기 짝이없다.
거의 정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팔봉능선에서는 잘 정비된 대부분의 요즘 등산로에서 느낄 수 없는 거친 자연 그대로의 산길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4봉 정상에서 바쁜 걸음으로 옆으로 비켜내려오는데 숲속에서 갑자기 괴물이 불쑥 고개를 내미는것 같은 느낌에 온몸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도그럴것이 팔봉능선을 진행하는 동안 산객을 한명도 만나지 못할 정도로 정막이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말로만 듣던 왕관바위의 윗 부분이었던 것이다.
제1왕관바위는 관악산의 진귀한 바위중에 하나다.
금관바위,임금바위라고도 부르는 바위로 관악산에 있는 3개의 왕관바위 중 가장 왕관다운 바위다.
여느 바위처럼 보는 방향에 따라서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특히 숲 위로 불쑥 튀어나온 모습은 영락없는
왕관이었다.
그 왕관바위는 이름에 걸맞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앞만 보고 간다면 놓치기 쉽다.
더군다나 내려오는 길이 아니라 올라가는 길이라면 더욱 그렇다.
왕관을 발견한 기쁨을 제대로 누릴 겨를도 없이 급하게 사진 몇장만 남기고 다시 3봉을 향해서 간다.
3봉으로 이어지는 길도 역시 아슬아슬한 칼바위 능선과 기암괴석은 계속되고...
거기에다 멋진 조망까지 곁들여진 3봉 정상은 아랫쪽 봉우리라는 느낌이 들지않은 정상이었다.
시간만 조금 더 주어졌다면 정말 책을 읽듯 천천히 걷고 싶은 구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바위는 또 무슨 바위일까?
두꺼비 바위?,물범바위?...뭔가 이름이 있을듯 한 바위 앞에서 한 참 동안 나만의 작명을 해보려다 시간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관악산에서는 해가 좀 일찍 진다.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삼성산과 호압산 때문이다.
아직도 갈길은 먼데 암봉사이로 해가 졌다가 다시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아뭏튼 갈길은 바쁜데 아래로 내려설수록 줄지어선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2봉과 1봉은 이런 기암괴석들로 연결이 되어있어서 어디가 정상인지 구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누군가 붙여놓은 이름이 있기는 할테지만,
시간만 있다면 팔봉능선의 온갖 바위들에 하나씩 나만의 이름을 붙여놓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아쉬운 발걸음을 내려 놓는 사이에 팔봉능선의 끝에 내려섰다.
무너미고개는 지금 나에게는 팔봉능선이 끝나는 지점이지만, 정상적으로 오르는 산객에게는 팔봉능선의 시작점이다.
사실상의 산행이 끝났지만 아직도 저 고개를 넘어 한참을 가야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무너미고개들 중에서 관악산의 무너미 고개는 물넘이 고개라는 의미의 고개인데 물은 없고 말 그대로 낮은 고개다.
물론 고개를 넘어서면 도림천의 상류인 관악산 계곡이 나온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일까?
고개라는 말은 참 정겨운 우리말 중에 하나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고개가 많기도 하고 그 고개마다 많은 애환과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것 같다.
그 애환과 의미들 중에는 아무래도 고개를 넘어야 해서 힘듦의 의미가 첫째일 것이다.
대표적인게 보릿고개다.
그리고 고개 이쪽과 저쪽의 경계의 의미가 그 다음일것이다.
그 외에도 고개는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였다.
고개 너머로 누군가를 보내고,고개에서 누군가를 맞이했다.
그래서 고개에는 보통 그 애환을 달래려는 돌탑이나 돌무더기가 있다.
고개 이름을 대표하는 이름은 '아리랑 고개'다.
서울의 정릉고개를 아리랑이라는 영화를 촬영한 뒤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원래 의미는 가상의 고개라고 한다.
애환을 담은 고갯길을 의미한단다.
이곳 무너미고개도 많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고개 좌우로는 관악산과 삼성산을 나누고,고개 이쪽과 저쪽은 안양과 서울을 가른다.
그 인적없는 무너미 고개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고 있다.
아직도 3km쯤을 더 내려가야 서울대 입구인데...
아뭏튼 어두워져가는 고갯길을 터벅터벅 1시간쯤을 걷고나서야 차가 있는 서울대입구에 도착했다.
관악산의 최고 난코스라는 팔봉능선 산행을 완료한 순간이다.
ㅡ산행코스:서울대 ㅡ학바위능선 ㅡ전파송신소 ㅡ관악산 주능선 ㅡ팔봉능선 ㅡ무너미고개 ㅡ서울대입구(11km,5시간 30분)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