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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Mar 11. 2020

관악산에서 해 없는 새해를 맞다.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1화 관악산ㅡ1

새해 일출을 보러간다는 설레임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새벽 일찍 잠이 깼다.

04시 30분이다.

어젯밤에 준비는 해 놓았지만 다시 한 번 꼼꼼히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셈이다.

계속 다니던 산행이지만 오늘 산행이 특별한 것은 새해 일출 산행이어서가 아니다.

그동안 무작위로 다니던 산행을 산림청 선정 100대명산을 오르기로 계획한 첫날이기 때문이다.

매년 새해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계획을 세워왔지만 올해처럼 확실한 목포,확실한 목적,확실한 실행 가능성등이 있는 계획을 세우기는 처음이다.

거기에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건 지금까지는 사업을 위한 계획,돈을 모으기 위한 계획등 사업과 가정을 위한 계획이었다면,올해의 계획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런 거창한 설레임을 안고 새벽 5시 집을 나선다.

승용차로 30분을 달려서 도착한 과천향교앞은 새해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다.

새벽 일출을 보려는 소박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거겠지...

아울러서 주차장도 모두 만차다.

한 참을 돌다보니 임시주차장에 자리가 몇 있었다.

주차를 하고 등산화 끈을 조여맸다.

예상은 했지만 날씨가 꽤 춥다.


과천향교


산길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합류한 산객들이 자연스레 줄을 지었다.

야간 산행의 별미는 적막한 산속을 손전등 불빛 하나로 약간의 으스스함을 느끼며 오르는 것인데

줄지어 선 사람들 틈에 끼어서 오르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새해 첫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기분은 좋았다.

일출 예정시간은 07시 40분,

일기예보는 약간 흐린날이라니까 일출을 볼 확률은 반반인 셈이다.

산을 느낄 여유도 사색을 할 여유도 없이 소란스런 사람들 틈에 끼어 오르다보니 어느새 연주암이다.

07시 10분,

연주암에서는떡국 무료 급식을 하고 있었다.

무료라기 보다는 알아서 내는 1000원이다.

그런데 주머니에 1000원짜리가 없다.

그래서 무료로 먹고 식기를 닦으러 갔더니 앞선 사람이 복잡하니까 그냥 놓고 가란다.

완전 공짜 식사를 한 셈이다.


연주암


07시 20분,

연주암에서 정상까지는 10분이면 오를 수 있다.

날은 거의 밝았는데 해가 보일 기미가 없다.

그래도 일단 '정상인 연주대까지는 올라가야지'하는 생각으로 다시 등산로에 들어섰는데 많은 사람들때문에

제대로 나아갈 수가 없다.

일출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 같은데도 사람들은 물밀듯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시간 오직 새해 일출을 보고 소원을 빌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줄지어 오르는 사람들과 나는 어쩌면 모두가 일심동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대

07시 50분 

떠밀리다시피해서 정상에 섰다.

일출 예정시간은 이미 10분이나 지난시간이다.

도저히 오늘 일출은 볼 수 없을것 같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해뜨는 쪽을 바라보며 미련을 두고 있었다.


개중에는 돗자리를 가지고 가족전체가 온 가정도 있고,태극기를 들로 온 사람도 있고,추운데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도 있고,...정상은 발디딜틈이 없이 북적거렸다.

나도 해는 없지만 해뜨는 쪽을 향해 새해 각오를 다짐하고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그리고 하산길에 든다.



내려오는 길은 미끄러워서 더 위험했다.

거기에다 사람에 밀려서 연주암까지 내려오는 시간이 올라가는 시간보다 더 걸렸다.

그리고 연주암 절마당의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바로 하산길에 든다.

한시간쯤 걸려서 산행 시작점인 과천향교 매표소 입구에 다다를 무렵 이렇게 추운 새해 첫날인데도 구걸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타이어로 만든 깔개를 깔고 업드려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하반신이 없는 모양이다.

아침을 공짜로 먹었으니 그 돈을 이사람한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5천원짜리 한 장을 바구니에 넣고 내려오니 정말 마음이 뿌듯했다.

남을 도와주면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직접 느껴보기는 처음이다.

그 흐뭇한 마음과 산행을 무사히 마친 상쾌함이 어우러져 정말 기분좋은 새해아침을 맞이했다.

09시 40분 주차장 도착.

사실 수없이 많이 다닌 관악산이지만 새해 일출 산행은 처음인데 일출을 보지못한 아쉬움은 꽤 컸다.

올해부터 시작하기로 계획한 100대 명산 산행의 첫번째를 겸한 산행이어서다.

그래도 나름 기분좋은 출발이다.



ㅡ2006.01.01.관악산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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