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85화 덕유산 1
뚜렷한 사계절이 있다는 것.
옛날에는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분명 축복임에 틀림없다.
언제나 덥기만 하거나 혹은 춥기만 하거나 그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날씨만 반복된다고 생각해보자.
생활이 얼마나 단조로울지.
그와 반대로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는 사시사철 바뀌는 풍경, 그 날씨와 풍경에 걸맞게 치장하는 다양한 옷.
그리고 계절마다 다른 맛의 음식과 다른 형태의 주거시설등 다양성과 다채로움이 상존한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서 문화가 더 일찍 발달 할 수 있었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덥거나 따뜻하기만 한 열대지방 사람들은 게으르게 마련이다.
월동 준비를 해야하는 사계절이 있는 나라와는 다르게 한가지 옷만 있으면 되고 아무때나 먹거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한 현대에는 꼭 의식주 뿐만이 아니라 바뀌는 계절 덕분에 여러가지 다양성을 추구하고 즐길 수 있다는것은 대단한 축복이 아닐수 없다.
덕유산은 그 다채로운 우리나라 겨울을 만끽하기에 최적화 되어있는 산이다.
겨울 스포츠의 대표격인 스키를 즐길 수 있고 1600m급 고산에서 환상적인 겨울왕국을 손쉽게 즐길 수 있다.
사실 덕유산은 곤도라가 있어서 쉽게 갈수도 있지만 아껴둔 측면도 있었다.
일출산행,운해산행,눈꽃산행등 이벤트성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중에 눈꽃산행을 위해서 새벽길을 나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상고대를 보러 가는 것이다.
전날 눈이 많이 와서 도로가 미끄럽지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하루만에 고속도로는 완전히 정상회복이 되어있었다.
덕분에 새벽5시30분에 출발해서 중간에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도 도착한 시간이 곤도라 운행시간 9시30분보다 훨씬 빠른 9시에 도착했다.
그렇게 나름 이른시간에 도착했는데도 곤도라 대기줄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끝도 없는 기다림...
이럴땐 사진놀이가 최고다.
그래서 스키 타는 풍경 담기에 들어간다.
무려 2시간여를 기다린 후에서야 곤도라를 탑승했다.
탑승시간은 15분여.
날씨는 맑고 참 좋았으나 영하20도에 육박하는 기온에 살을 에이는 칼바람까지.
등산에는 별 무리가 없었으나 사진촬영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질주 그리고 넘어짐.
그리고 다시 일어섬.
스키를 타보지 못한 나의 눈에 비치는 그 모습들은 도전이고 용기이며 젊음의 특권이었다.
이윽고 곤도라에서 내리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말 그대로 별천지였다.
아직 많은 눈은 쌓이지 않았지만 상고대가 온통 눈꽃세상을 만들어 놓았고, 스키장 제설기가 내뿜는 인공눈이 바람을 타고 흩어지면서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나오고 인생샷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서는 사진촬영의 실력같은건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아무데나 대고 찍으면 다 작품이 될 것 같은 풍경이다.
덕유산은 산정에서 이런 전통적인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무려 1600m급 산정에 어울리는 건축물은 아니지만 눈이 쌓이고 고드름이 열린 모습에서 요즘 아랫쪽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겨울 풍경을 볼 수 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순백의 설원이 자아내는 이국적인 풍경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 풍경은 겨울 덕유에서만 볼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이었다.
겨울 덕유산은 이번이 두번째다.
지난번에는 겨울철 자가운전의 불편때문에 산악회를 따라 왔었다.
날씨도 오늘처럼 좋지 않았지만 단체행동을 해야해서 제대로 사진 놀이를 할 수 없어서 아쉬웠던 하루였다.
역시 카메라를 가지고 놀기에는 혼자가 최고다.
설천봉의 상징 상제루(上帝樓)다.
옥황상제를 연상시키는 상제루가 상고대에 쌓여서 천상의 풍경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마치 진짜 옥황상제가 머물고 있을듯 한 풍경이다.
이제 설천봉을 뒤로하고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을 향해서 간다.
곤도라 하차지점인 설천봉에서 정상인 향적봉까지는 600m쯤이다.
거리도 그리 멀지 않지만 경사도 심하지 않아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조금 올랐을 뿐인데 풍경은 완전히 또 다른 세상이다.
본격적으로 상고대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상고대는 눈이 쌓인 눈꽃과 다르게 공기중의 작은 물방울인 수증기가 얼어붙어서 생기는 얼음덩어리다.
그래서 보송보송한 눈꽃과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자연현상이다.
정상을 향해서 오르다가 뒤돌아 본 설천봉 풍경이다.
하얀 설원과 파아란 하늘 사이에 울긋불긋 사람꽃이 피었다.
사람이 꽃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사람이 없었다면 훨씬 삭막했을지도 모를 풍경이 사람으로 인해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1600m 높이의 산정 풍경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독특한 풍경이다.
그리고 같은 위치에서 지난날 담은 사진이다.
편리하고 좋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꼭 이렇게까지 인위적인 시설을 대단위로 산정에 해야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는 풍경이다.
이제 본격적인 설경 속으로 들어간다.
고도가 조금 높아졌을 뿐인데 완전히 겨울 왕국이라도 되는듯한 풍경이다.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이다.
덕유산 정상부에 향목이라고도 부르는 주목이 많아서 향이 쌓이는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향적봉은
곤도라 승강장에서 천천히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사람이 많지않다면 20분이면 오를 수도 있는 거리인데 덕유산에서는 꿈에 불과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줄지어선 산객들 사이에서 기차놀이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향적봉에서는 가히 명산의 최고봉답게 온 천지를 다 내려다 볼 수 있다.
멀리는 크고작은 산들의 산그리메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가까이는 스키장의 낭만적인 모습이 펴쳐져 있다.
스키장에서는 연신 제설기로 인공눈을 만들고 있었다.
그 인공눈이 날려서 엉뚱한 곳에 설경을 만들고 있다.
아무튼 아름답기는 하지만 이렇게 인공눈을 즐겨도 되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인것 같다.
향적봉 암봉 위에서 내려다 본 정상 풍경이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본 정상 풍경이다.
정상 인증샷이 뭐라고 사진 한 장 남기기위해서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긴 줄을 서고 있다.
덕유산은 지난 1975년 국내 1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전라북도 무주군과 장수군, 경상남도 거창군과 함양군등 2도 4군에 걸쳐있으며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높은 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높이에 비해서 부드러운 산세를 자랑하는 산이다.
덕유산이란 이름의 유래에는 애잔한 설화가 있다.
임진왜란때 덕유산 자락에는 많은 피난민들이 숨어들었다.
그때 짙은 안개때문에 산자락에 숨어있던 많은 피난민들을 보지 못하고 왜놈들이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덕분에 그 피난민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덕이 많은 너그러운 모산이라고 해서 한자어로 덕유산(德裕山)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후 현대에 들어서면서 스키장이 들어서고 곤도라가 설치되면서 명실상부한 겨울명산으로 자리매김 했다.
정상에서 본 설천봉이다.
대피소를 지나 중봉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줄지어 선 산객들의 모습이 마치 울타리를 쳐 놓은 모습같다.
백련사 방향에서 오리지널 등산을 하는 산객들이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다.
편한 길 놔 두고 힘든길로 오르는 진정한 산객들이다.
나도 조금 더 내려가서 사진 몇장을 담고 다시 올라왔다.
역시 땀흘리는 사람이 멋있어 보이고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멋있다.
아무튼 그렇게 와자지껄한 정상을 뒤로하고 하산길에 든다.
하산은 중봉을 거쳐서 백련사방향으로 할 예정이다.
대피소를 지나서 중봉으로 가는 길.
내가 가야할 길인데 여기도 산객들이 만만치 않다.
덕유산은 능선의 길이가 20km가 넘는다.
그래서 지리산 종주를 연상케 하는 종주코스로도 유명하다.
그 종주코스 중에서 꼭 걸어보아야 할 구간은 향적봉에서 중봉 구간이다.
대피소를 지나면서 바로 나오는 주목이다.
살아서 천년을 살고 죽어서 또 천년을 산다는 주목답게 의엿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아름다운 수형의 주목이다.
음지 구간이라서 상고대가 절정을 이루는 구간을 지난다.
마치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 하다.
말 그대로 仙景이다.
설천봉에서 향적봉을 지나 중봉에 이르는 길에는 살아서 천년,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이 그렇지 않아도 아름다운 설경을 더 아름답게 연출해준다.
많은 눈과 강추위,그리고 거센바람을 이겨내고 어찌 저리 살아냈을까?
그래서 주목은 단단한 나무의 대표격이다.
온갖 풍상을 다 이겨내며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썩지 않은 것이다.
저기 작아보이는 웬만한 주목들도 모두 몇백년을 훌쩍 넘게 살아낸 나무들이다.
치열하게 살아냄의 위대함이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것이다.
어디 주목 뿐이랴.
모든 나무는 위대하고 아름답다.
지구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생물은 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제 덕유산에서 가장 설경이 아름다운 구간을 지나간다.
두 말이 필요없는 덕유산 설경의 대표 포인트다.
오늘은 상고대가 약해서 살짝 아쉽지만 불만은 없다.
언제나 아쉬운게 인생사다.
모든 것을 다 갖는다면 그 또한 무료할 것이다.
끊임없이 부족한 것을 추구하는 행위.
그게 바로 인생사가 아닐까?
환상적인 순백의 풍경에 취해서 걷는 사이 어느새 중봉에 도착했다.
중봉은 높이가 1590m로 정상인 향적봉과는 또다른 풍경을 선사하는 봉우리다.
그중에 최고는 역시 덕유평전을 가로지르는 종주 길이다.
무등산의 중봉 억새길 같기도 하고 지리산의 연화선경길 같기도 한 덕유평전 길이다.
걸어보고 싶은 길이지만 오늘은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해버려서 참아야 한다.
이쪽 방향에서도 제법 많은 산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들 역시 진정한 산객들이다.
이 풍경을 끝으로 이제 본격적인 하산길에 든다.
오수자 굴을 지나 백련사로 하산 할 요량이다.
얼마 내려서지 않았는데도 언제 그리 멋진 순백의 세상이 있었느냐는 듯 금방 삭막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별 볼거리 없는 하산길을 터덜터덜 걷다보니 제법 큼직한 굴이 나왔다.
오수자굴은 바위밑으로 서너평쯤 될법한 크기의 굴이다.
옛날에 오수자라는 스님이 이곳에서 도를 닦아 득도했다는 전설이 있어서 오수자굴이라 부른다고 한다.
오수자굴 안에는 거꾸로 고드름이 자라고 있었다.
마이산 탑사로 유명한 역고드름이 신기하게 여기에서는 동굴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오수자굴에서 조금은 지루하리만큼 긴 하산길을 터덜터덜 내려오면 백련사가 나온다.
별로 가파른 내리막길은 아니지만 너덜지대라서 아이젠을 끼고 하산하기란 정말 쉽지않은 길이었다.
백련사(白蓮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이 초암을 짓고 수도하던 중 그곳에서 흰 연꽃이 솟아 나와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뒤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1900년(광무 4)에 당시 무주부사였던 이하섭이 중수하였고 6·25전쟁 때 불타버린 뒤 1961년에 대웅전을 건립하였으며, 1968년에 요사를 건립하였다.
그 무렵 백련암으로 불리던 절 이름을 백련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아무튼 백련사,백련암이라는 절은 정말 많은것 같다.
내가 아는 곳만도 몇곳이나 되니까말이다.
옛날 사람들이 백련을 좋아했기 때문이 아닐까?
백련사는 구천동계곡 제일 윗쪽에 비교적 넓은 터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도 터가 마땅치 않아서 그런지 가람배치가 좀 무질서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500m 한참 아래에 일주문이있고 정관당부도 바로옆 무시무시한 4대천왕이 있는 천왕문을 지나면 매점건물이 있고 매점건물을 지나면 까마득한 계단위로 대웅전이 위용을 떨치고 있다.
명부전은 대웅전 앞마당 앞쪽에, 그리고 원통각은 왼쪽에 삼신각은 대웅전뒤 오른쪽 위로 배치되어
전체적인 건물 배치가 좀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백련사를 나오면 본격적인 무주구천동 계곡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그 유명한 무주구천동 계곡이라지만 5.6km를 걷는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백련사에서 삼공탐방안내소까지는 5.6km나되는 거리다.
여름엔 구천동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쉬엄쉬엄 걸으면 지루하지않고 좋을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겨울엔 좀 지루한 거리였다.
그래도 차가 들어오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걸어 내려와야 한다.
아무튼 덕유산에 오르는 대부분 산객들은 올라갈때 걸어서 올라가고 내려올때 곤도라를 타고 내려오든지 아니면 반대로 하든지 한 번은 곤도라를 이용하기때문에 산 높이에 비해서 비교적 쉬운 산행을 할 수 있는 산이다.
*산행코스,:무주리조트 ㅡ곤도라 ㅡ설천봉(600m)ㅡ향적봉(1km)ㅡ중봉(1km)ㅡ오수자굴(1.4km)ㅡ백련사 (5.6km)ㅡ삼공매표소(사진촬영및 점심포함 6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