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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Feb 08. 2022

여름날의 덕유산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85화 덕유산 2

2018년 여름.

아내와 함께 그해 여름 피서를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로 가기로 하고 예약을 했다.

겨울철에는 예약하기가 하늘에서 별따기라는데 여름이라서 의외로 쉽게 예약이 되었다.

산상의 대피소에서 여름 밤을 보낸다는 설레임.
그건 과거를 체험하고 옛날을 추억하고 싶은 본능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산상의 대피소는 현대 문명과는 거의 대부분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곤도라로 올라갈 수 있는 설천봉

우리나라에서는 산상에서 가장 쉽게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곳이 덕유산 향적봉이다.

물론 겨울철에는 예약이 쉽지 않아서 그마저도 힘들지만.
곤도라를 타고 오른 후 300m만 오르면 정상에 이를수 있고 다시 100m만 내려가면 바로 산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간 날은 여름 피서라고는 하지만 늦여름이라서 곤도라를 타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겨울에는 2시간씩 기다려야 탈 수 있는 곤도라가 거의 빈 상태로 공허하게 운행되고 있었다.

곤도라 하차 지점인 설천봉 풍경도 썰렁하기는 마찮가지였다.

겨울 같았으면 장터를 방불케하는 왁자지껄한 풍경이었을텐데.

그래서 곧바로 정상을 향해서 오른다.



오르는 중간 전망바위에서 본 산그리메 풍경이다.

황소의 근육질같은 굵은 선이 살아있는 겨울 산그리메와는 또다른 은은한 멋을 선사하고 있다.



그리고 10여분만에 오른 정상이다.

겨울이면 저 넓은 정상 광장이 산객들로 넘쳐난다.

그런데 오늘은 손에 꼽을 정도의 산객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구름 놀이를 하고 있다. 


덕유산은 임진왜란때 짙은 안개때문에 산자락에 숨어있던 많은 피난민들을 보지 못하고 왜놈들이 그냥 지나쳐서 그 피난민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고한다.

그래서 덕이 많은 너그러운 모산이라고 해서 한자어로 덕유산(德裕山)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후 현대에 들어서면서 스키장이 들어서고 곤도라가 설치되면서 명실상부한 겨울명산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래서 나도 겨울에만 두번 올랐던 산이다.



향목이라고도 부르는 주목이 많아서 향이 쌓이는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덕유산의 향적봉은 높이가 1,614m로 한라산,지리산,설악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번째로 높은 산이다.
그렇지만 곤도라 덕분에 가장 쉽게 오를 수 있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정상에서 향적봉을 빙 둘러싸고 있는 산그리메 삼매경에 취해 있는 사이 다른 산객들은 모두 내려가고 산장에서 1박을 예약하고 온 우리 부부만 남았다.



내노라하는 우리나라의 유명한 산 정상에서 이렇게 호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건 정말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눈꽃으로 대변되는 덕유산의 색다른 풍경에 다른 사람의 방해 없이 빠져든다는 것.

그것은 쉽게 맛 볼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기도 했다.



뭐 눈이 없으면 어떠랴!
먼 그리움같은 이 산그리메만 있으면 그만이지.

겨울에는 볼 수 없는 사방을 둘러싼, 마치 먼 그림움 같은 산그리메만 있으면 그만이지.



덕유산은 이름 만큼이나 덕이 많아보이는 부드러운 육산이다.
그래서 산그리메도 부드럽다.

그 온화한 산세가 덕유산이란 이름 만큼이나 부드럽고 덕이 많아 보인다.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느긋하게 즐기는 산정에서의 시간.

파아란 하늘에  멋진 뭉개구름까지 더해진 산그리메는 말 그대로 생생한 한폭의 그림이었다.



백련사에서 올라오는 데크길이다.

그리고 저 멀리 중봉이 보인다.

백련사 코스는 겨울에는 산객들이 줄지어 오르내리는 코스인데 오늘은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늦은 오후의 비스듬히 내리쬐는 은빛 빛내림.

산정에서 마주하는 빛내림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지금까지 이렇게 와이드한 빛내림은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지리산은 어디쯤에 있을까?
향적봉에서는 지리산은 물론 무등산,황매산,가야산등 서남쪽 고산준봉들을 모두 볼 수 있다는데 나는 전혀 모르겠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뒤  다양한 구름 쇼를 뒤로하고 일단 입실 수속을 해놓기 위해서 산장으로 내려갔다.

산장은 정상에서 중봉 방향으로 다시 100m쯤 내려가면 된다.

그런데 입실 수속을 하려니까 예약 없이 왔다고 대뜸 다짜고짜 다시 내려가란다.
어이가 없다.
사실 원래 예약일은 내일인데 사정상 하루를 앞당겨서 왔기는 하지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서 인터넷에 올려놓고 그냥 왔는데 보지를 않았는지 알면서도 그러는지 텅빈 산장을 놔두고 다짜고짜 내려가라니 어이가 없다.



화가 치밀었지만 참고 사정사정을 하고나서야 여장을 풀 수 있었다.

여장을 풀고 삼겹살로 이른 저녘을 먹고 다시 향적봉에 올랐다.

산상에서 해넘이를 감상하가 위해서다.



다시 올라선 텅 빈 정상.

아직도 빛내림은 계속되고 있었다.

마치 영사기의 불빛같은 빛내림 ㅡ
멋진 일몰풍경을 예감하는 벅찬 순간이다.



그러나 해가 지기 위해서는 아직도 30여분은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어둠을 맞을 준비를 한 향적봉에 어느새 적막이 흐르고 있다.

그 적막한 향적봉 정상 앞마당이 오늘은 온통 우리 부부 차지다.

그런데 다이나믹한 빛내림 풍경이 펼쳐지다가 서서히 저녁놀이 물들어갈 순간.

순식간에 구름이 산정을 덥고 말았다.

아무튼 산정의 날씨는 예측 불허다.



기대했던 산상 일몰풍경을 포기하고 지척에 있는 야생화 보는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다시 대피소로 내려와서 운무속에 찾아드는 어둠을 맞는다.
36명이 잠을 잘 수 있는 큰 대피소에는 우리 두 부부 뿐이다.
어둠과 적막이 함께 찾아드는 시간.

밤하늘 별 감상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흐린 날씨때문에 적막과 함께하는것만이 유일한 산상의 밤이다.



벌써 산장의 밤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추웠다.
한기를 느끼며 청한 잠이  쉽게 올리가 없다.
워낙 좁은 공간이라서 뒤척이기도 쉽지 않은 침상에서 긴긴밤을 지새운다는건 정말 고역이었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자다가 깨다를 반복한 끝에 아침이 밝았다.



일출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침에도 산정은 운무속에 갖혀있다.
그래서 일찍 라면과 김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중봉으로 향했다.



향적봉에서 중봉으로 가는 중간에는 덕유산의 주목 군락지가 있다.

겨울이면 환상적인 설경을 연출하는 구간이다.



덕유산을 대표하는 고사목이다.
상고대가 있는 겨울엔 한몫 하는 녀석들이다.



살아서 천년,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
향기가  좋다고 해서 향목이라고도 부른단다.
그래서 향목이 많은 산이라서 덕유산 정상을 향이 쌓이는 봉우리,즉  향적봉이라고 부르게 된 나무다.

향이 쌓이는 봉우리.

참 아름다운 이름이다.



이제 중봉으로 오르는 계단을 오른다.

그런데 중봉쯤 걸어오면 운무가 걷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전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상에서도 아무런 조망을 할 수가 없었다.

뭐 오늘의 운세는 여기까지라는 생각으로 마음 편히 바로 하산길에 든다.



하산도 왔던길을 되돌아서 곤도라로 할 예정이다.



하산하는 중에도 여전히 운무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유일하게 볼 수 있는건 길가의 야생화였다.



이제 향적봉정상을 지나 곤도라 탑승장으로 내려간다.



옥황상제께 제사를 지낸다는 뜻으로 지어졌다는 상제루다.

이곳 덕유산 무주리조트를 공사하던 당시 자꾸만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상제루에서 제사를 지내고난 후 신기하게도 공사가 무탈하게 진행되었다는 일화가 있단다.



곤도라 탑승장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9시 30분이다,
하산하는 곤도라는 10시부터 운행한다고 하니까 아직도 30분을 운무속에서 갇혀 있어야 한다.

가까운 거리에서도 상제루가 보였다 가렸다를 반복하는 운무 속에서 서성이는 사이 10시가 되었는지 곤도라를 탑승하라고 한다.
아무튼 예상치 못했던 운무 때문에 산상의 일몰도 일출풍경도 보지는 못했지만 산상에서의 하룻밤은 나름 호젓한 멋진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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