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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Jan 17. 2022

산이름에 웬 민주? 겨울 민주지산.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84화 민주지산

민주(民主).

우리 세대는 지금도 '민주'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 지는 세대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에게 '민주'는 역사에서나 배우는것 쯤으로 생각하는듯 하다.

덕분에 그동안 선거때만 되면 민주와 반민주로 나뉘던 정치 환경도 완전히 바뀌었다.

급기야는 반민주 독재 세력이 민주 세력을 오히려 독재세력으로 몰아부치는 해괴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하기는 지독한 독재를 하는 북한도 인민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으니 민주주의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명칭이야 어떻든지 실제 어떤 정치가 행해지느냐가 문제의 본질일테니까 말이다.

민주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비민주도, 자유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도 오직 정권 잡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위정자들에게는 하나의 도구일뿐인 세상이다.

그 현상은 단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다보니 민주라기 보다도 자유방종에 가까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폭력적인 시위, 진화하는 범죄, 지능화된 디지털 범죄등 통제가 쉽지않은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고보면 진짜 민주인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날은 어쩌면 애초에 불가능한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할 때마다 지금의 민주주의 체체도 향후 50년을 넘기지 못 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다시 다수가 찬성하는 경찰국가형태의 국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무튼 산이름으로는 독특한 '민주지산'이라는 이름 덕분에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그런 엉뚱한 생각과는 달리 민주지산의 민주는 한자어로 표기하면 전혀 다른 뜻이었다.



그 민주지산을 오르기 위해서 물한계곡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도로를 따라 200여m오르다보면 나오는 황룡사다.

이름은 신라시대의 황룡사를 연상케 하지만 대웅전만 덩그러니 있는 조그마한 절이다.

산행은 황룡사를 지나면서부터 시작 된다.



이윽고 물이 차갑다는 뜻의 물한계곡을 건너 본격적인 산길에 들어선다.



다시 전나무숲을 지나면 민주지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나는 정상으로 올라서 삼도봉 방향으로 내려오기 위해서 정상쪽을 택했다.



정상 방향은 계곡을 따라 넓고 완만한 등산로가 2km쯤 이어졌다.

그리고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야 비로소 등산로다운 등산로가 나왔다.



가파라진 등산로에는 꽤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북쪽 사면이라서 햇볕이 들지 않은 때문이다.

그렇게 쌓인 눈이 녹지 않아서 발이 푹푹 빠지는 등산로가 겨울 산행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었다. 



그런 눈길을 한시간쯤 오르면 능선에 올라서고 다시 완만한 능선길로 이어졌다.

그리고 환상적인 겨울 산그리메를 감상하며 능선길을 3, 40분쯤 산책하듯 걷다보면 무인 대피소가 나온다.



대피소 근처는 산객들로 장터를 방불케 했다.

비교적 양지바르고 아늑해서 점심 먹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나도 간단하게 준비해 간 점심을 먹고 다시 정상을 향해서 간다.



정상과 석기봉으로 가는 삼거리다.

이 곳 삼거리에서 정상으로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석기봉으로 가야한다.



이윽고 도착한 정상에서는 상고대나 눈꽃은 없지만 장쾌하게 펼쳐진 근육질 겨울 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산행시작 3시간만에 정상에 섰다.

민주지산은 전형적인 육산이다.

대부분의 육산이 그렇듯 정상은 평범했다.

그러나 자칫 우거진 나무때문에 조망이 가려지기 쉬운것이 육산의 정상인데 민주지산은 정상부가 암질이어서 큰 나무가 자라지 않아 아름다운 조망을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사방의 거침없는 조망을 할 수 있었다.



오른쪽 뾰쪽한 봉우리가 가야할 다음 봉우리인 석기봉이다.



민주지산은 어감으로만 보면 민주주의의 성지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유래를 가지고 있다.



옛날 주민들 사이에서 이 산의 산세가 민두름하다 하여 "민두름산"이라 불렀는데 일제시대에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산맥을 뜻하는 岷자와 두루,둘레를 뜻하는周자를 써서 민주지산(岷周之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풀어서 쓴다면 '크고 두루뭉실한 산,겹겹이 쌓인 산'이란 뜻이 아닐까 싶다.



민주지산이 왜 겨울산행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풍경들이다.

언제나 저 겨울산 풍경 앞에 서면 화가 이중섭의 '황소' 그림이 생각난다.

영락없는 그 황소의 근육질을 닮았다.



황소 근육질을 닮은 겨울산의 굵은 선들은 눈꽃이나 상고대가 아닌 겨울산의 또다른 매력이다.



어두움과 밝음(陰과 陽).

멀고 가까움(遠과 近).

높고 낮음(高와 低).

검은 나무와 흰 눈(黑과 白).

산비탈과 능선(面과 線).

그 다섯가지의 대비가 빚어낸 지상 최대의 풍경화다.

역시 우리나라의 산악미를 다시 한 번 만끽한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 중국의 황산과 히말라야, 알프스등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웅장했다.

그런 산에서는 볼 수 없는 또다른 독특한 풍경이다.



나는 그 숨막힐듯 와일드한 환상적인 겨울산 앞에서 호연지기를 키워본다.

그리고 이제 다음 봉우리인 석기봉을 향해서 간다.



석기봉을 향해서 굽이굽이 산 능선을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그렇게 무념무상으로 걷다가 뒤돌아 본 풍경이다.

앞쪽 풍경과는 또다른 풍경이다.

마치 빛바랜 그림 같다.

양지쪽이라서 눈이 녹고 없기 때문이다.



저 맨 뒷쪽으로 덕유산의 스키장이 아스라히 보인다.



그리고 골짜기마다에 터를 잡은 민초들의 보금자리.

산에 오를때마다 저 모습을 보면 웬지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저 투명함.

벌거벗은 겨울 산에서만 볼 수 있는 산의 속살이다.



신선이 된 기분일까?

한폭의 진경 산수화를 머릿속에 담는 중일까?

혼자 있어도 멋있는 그림이다.



진경 산수화 속을 거닐듯 1시간쯤 오르락 내리락 걷다보면 닿는곳 석기봉이다.

쌀겨를 닮아서 쌀개봉이라고도 하는 석기봉은 정상보다 40여m 낮아서 유명세는 민주지산에 빼앗겻지만

암봉이라서 정상 기분을 내는데도 손색이 없고 조망도 훨씬 좋았다.



추위때문인지 다른 산객들은 내려가기 바쁘다.

덕분에 텅 빈 정상이 온통 내 차지가 되었다.

다른때 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셀카도 찍어보고 근육질 산그리메를 놓고 사진놀이도 싫컷 했다.



추위를 무릅쓰고 즐기는 겨울산.

30여분이 지나서야 발길을 돌려 하산길에 든다.



석기봉과 삼도봉 중간으로 내려서는 하산길은 의외로 가파랐다.

거기에다 급경사에 음지라서 눈이 무릎까지 차서 미끄러지고 넘어지고를 반복해야 했다.

한가지 다행인것은 미끄러지고 넘어져도 푹신한 눈비탈이라서 다칠 염려는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겨울산행은 하산이 문제다.



다시 올라갈때 지나갔던 전나무 숲길이다.

사실상의 하산이 끝난것이다.



원래는 정상만 올라갔다 바로 내려 올 예정이었는데 예상보다 산행이 쉬워서 석기봉까지 갔다 왔음에도 예상시간인 오후5시보다 20여분 일찍 하산을 완료했다.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실행에 옮기기에 쉽지 않았던 민주지산이다.

그래서 이것 저 것 따지다보면 심란할것 같아서 별 계획없이 무작정 출발 했다.

그러나 꼼꼼히 계획했던 산행만큼이나 결과는 모든것이 순조로웠다.

뿐만아니라 겨울산행으로서의 모든 조건도 최고였던 하루였다.



*산행코스:물한계곡 주차장 ㅡ황룡사 ㅡ무인대피소 ㅡ정상 ㅡ석기봉 ㅡ정자 ㅡ은주암골 ㅡ잣나무숲 ㅡ황룡사 ㅡ물한계곡 주차장 (천천히6시간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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