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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아품을 고스란히 간직한 경기 제일봉 화악산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 38 화 화악산

by 그리고

오늘 오를 화악산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北面)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史內面)의 경계, 북한과 접경지역에 있는 산이다.

옛날 어렸을때 겨울 강추위가 닥치면 어김없이 라디오 일기예보에서 알려주던

"전방 화악산은 영하00도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귀에 익은 산이다.

그 외에는 특별히 알려지지 않은 산이라서 웬지 호감이 가지 않은 산이다.

더군다나 경기 제일봉이라는 위압감 때문에 엄청 힘들고 험할 것 같은 생각이 든 산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뤄오던 산, 그 화악산을 드디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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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 집을 나서 가장 편한코스의 산행 기점인 화악터널에 도착했다.

9시20분이다.

20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조그만 주차장엔 벌써 차들로 꽉 찼있었다.

그래서 적당한 도로가에 주차를 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도로 한쪽에는 정자가 있고 반대쪽엔 곰조각상이 있다.

정자있는쪽 임도를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앞에 몇사람이 곰조각상이 있는쪽 등산로인듯 보이는 길로 올라가는것을 보고 따라올라갔더니 왠걸 길이 아니었다.

그분들은 아마도 약초꾼들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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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슴프레 길인듯한 흔적은 있지만 나뭇가지를 혜치고 올라가야한다.

가파른 길을 10여분 올라가니 삼거리 시멘트 포장 군사도로가 나왔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이정표가 없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그래서 스마트폰 검색을 하고 있는데 나물캐는 사람들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가서 정상으로 갈려면 어느쪽이냐고 물었더니 역시 잘 모른단다.

단지 방향감각으로는 오른쪽 방향인것 같단다.

그래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조금 걸어가다보니 산악회 리본이 걸려있는 조그만 샛길이 나왔다.

리본이 환경오염이라고 눈쌀을 찌뿌렸던 나인데 오늘은 그 덕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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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산은 최전방의 산답게 산 전체가 요새화가 되어있었다.

현대판 성곽인 셈이다.

분단의 아픔, 분단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는 화악산.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막상 와보니 아니나 다를까 정말 힘듦에 비해서 특별한것이 없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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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정도 매력없는 가파른 오르막 길을 오르고 나니 능선길이다.

그래도 능선엔 산철쭉이 이제 한창이고 이름모를 온갖 야생화가 만발해 있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런 걷기 좋은 길을 또 1시간정도 가면 정상 바로 밑 오늘의 목적지 북봉이 나온다.

정상이 군시설로 통제되어있기 때문이다.



정상 부근에 다다를 무렵 운무가 몰려들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일기예보를 숙지하고 오긴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정상은 갔다 오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북봉 정상이다.

높이 1,435m.

누군가 종이에 프린트해서 붙여놓은 것이 전부다.

원래 화악산 정상(1,468m)은 군시설이라서 통제구역이기 때문에 산악인들이 정상이라고 여기는곳이 중봉이다.

하지만 요 근래에 통제구역이였던 북봉이 해제되면서 상대적으로 승용차로 접근성이 용이하고 오르기 쉬운 화악터널에서 오르는 사람들이 북봉을 정상을 대신해서 찾고 있다.



화악터널에서 북봉코스는 정상석만 없는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 어떤 표지판도 없었다.

물론 내가 정규등산로를 이탈한 때문이기는 하지만.

최전방이라서 이정표 시설하는데 제약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사람도 많지 않아서 물어볼 수도 없기때문에 사전인지와 지도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코스다.



정상이라고 올라섰지만 구름때문에 전망도 전혀 없는 상황.

그냥 빈 인증샷 하나만 남기고 서둘러 하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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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나무에 막걸리꽃이 피었다.

몰상식한 사람들 같으니라구 ㅡ

산에서 막걸리 한잔 마시는것 까지야 뭐라 말할 수 없겠지만 저렇게 하면 안되지요...

큰 통인걸 보니 혼자 온 사람은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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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번개에 비바람은 거세지고 조망을 할 수 없으니 방향감각도 없고.

그냥 막연히 올라올때 길이 하나였으니 적당히 내려가면 왔던길이 나오겠지 싶어 그냥 감각으로만 하산을 한다.

하지만 가도가도 올라왔던 길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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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내려와버려서 다시 올라가기도 힘든상황.

물어볼 사람도 안내 표지판도 없는 산길을 마냥 내려갔다.

어떤 방향이든지 내려가고 봐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돌풍과 천둥번개 때문에 다시 올라간다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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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정신없이 내려왔을까.

비도 개고 돌풍도 거짓말처럼 멎고 거기에다가 올라오는 산객 한 분을 만났다.

한꺼번에 모든것이 해결되는 느낌.

올라오는 산객은 67세나 되셨다는 분이셨다.

이쪽으로 내려가면 어디가 나오냐고 물었더니 조무락골이 나온단다.

그럼 조무락골에서 화악터널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더니 엄청 멀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조무락골까지도 5km는 더 내려가야하고 교통편도 없어서 다시 올라가서 돌아가는것이 빠르단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행인 것은 날씨가 좋아졌고 내려온길이 3km정도이지만 급경사 구간이 없어서 다시 올라가더라도 큰 무리는 없을것 같다는것이다.

그래서 뒤돌아서 그분 뒤를 따라 다시 왔던길을 오른다.



그분은 그 연세에도 혼자서 그렇게 매주 10여km이상의 산행을 하신다고 한다.

대단하신 체력과 정신력이다.

도란도란 이야기 하다보니 그래도 쉽게 다시 정상에 올랐다.

이번엔 조금 전에는 보지못했던 확트인 조망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전망을 보지 못하고 내려갔다니.

다시 올라오느라고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론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무쌍한 화악산의 두얼굴을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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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실제 정상의 군부대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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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귀한 야생화인 앵초가 많다.



결국 두번의 정상 정복에 두얼굴의 화악산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방향감각을 되찾아서 올라왔던길을 찾고보니 정반대쪽으로 내려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화악터널에서 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꼭 지도를 챙겨야 할것 같다.

물론 지도에도 그쪽 등산로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방향이라도 제대로 잡고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왕에 통제를 해제 했다면 간단한 표지판이라도 설치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길을 잃고 보니 화악산이 험한 산은 아니지만 워낙 범위가 큰 산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옛날부터 화악산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정중앙으로 알려져 왔다.

우리나라 지도를 볼 때 전남 여수에서 북한 중강진으로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선이 국토자오선(동경 127도 30분)이다.

그리고 북위 38도선을 그으면, 두 선이 만나는 곳이 바로 화악산 정상이라고 한다.



평북 삭주에서 경남 울산으로, 백두산에서 한라산으로 선을 이었을 때 그 두 선의 교차점도 화악산에서 만난다고 한다.

신기하다.



1000m가 훨씬 넘는 산인데 정상까지 군사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최전방의 산이라는게 실감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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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산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와 있는 ‘경기 5악’ (운악산, 송악산, 관악산, 감악산, 화악산)중에서도 으뜸가는 산으로 좌우로 뻗은 골과 능선이 웅장해 풍수상으로도 조선의 심장에 해당하는 대길 복지 명당으로 전해오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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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도중 만난 야생화들이다.

고산답게 귀한 야생화들이 많았다.

날씨만 좋았다면 이녀석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냈을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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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빛날화)岳(큰산 악)山.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빛나는 큰산이란 뜻이다.

화악산은 높이도 높이지만 높이에 어울리는 거대한 산줄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반대로 높이에 어울리지 않은 철저한 육산이었다.

그 흔한 이름을 가진 바위하나 제대로 볼 수 없는 산이다.

높지만 부드러운산이다.

그러나 곳곳의 군사시설과 38선상에 있는 화악산은 분단의 아픔 만큼이나 크고 깊은 산이었다.



산행코스,:화악터널 ㅡ실운현 ㅡ능선ㅡ북봉 ㅡ조무락골3km지점 ㅡ북봉 ㅡ능선 ㅡ실운현 ㅡ화악터널(휴식,사진촬영포함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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