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고 Oct 11. 2021

구름에 달 가듯이, 영남알프스 억새길 ㅡ천황산과 재약산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66화 재약산

영남알프스에 포함된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4곳중 마지막 남은 한 곳인  재약산.

그 재약산을 오르기 위해 5년여만에 개별 무박 산행에 나섰다.

수원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가는 무박산행이다.

그동안 무박산행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오던 아내도 오늘은 협조를 해주었다.



덕분에 수원역까지 아들이 픽업 ㅡ 밀양역(무궁화호)ㅡ배내고개(택시)ㅡ산행후 표충사(택시)ㅡ울산역(ktx)ㅡ광명역(역시 아들이 픽업)ㅡ집이라는 복잡한 여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수원역을 출발한 야간열차는 덜커덩거리며 달리다 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추억의 열차인 야간 열차는 예나 지금이나 복잡하고 어수선했다.

예전에야 많이 탔었지만 가깝게는 5,6년전쯤 아들과 지리산 종주하러 갈때 탔었던 야간열차다.

맥주 한켄을 마시고 잠을 청해보지만 쉽지않았다.

잠이 들었을까 말까하는데 밀양역이란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고 기차에서 내리자 한기가 밀려들었다.

추울거란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추웠다.



택시를 타고(택시비가 의외로 비싸다)도착한 배내고개는 새벽(4시 30분)인데도 불구하고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5~6대의 산악회버스에서 내린 산악회 회원들의 만찬으로 시끌벅적한 배내고개 휴게소를 뒤로 하고 나는 바로 능동산을 향해 오른다.

배내고개에서 왼쪽으로 가면 간월산과 신불산쪽이고, 오른쪽으로 오르면 능동산과 재약산이다.

산악회 사람들은 거의다 왼쪽으로 간다.

아무래도 억새가 많은 쪽을 택한것 같다.



등산로에 들어서자 아직은 칠흙같은 어둠이다.

덕분에 까만 하늘에 알알이 박힌 보석같은 별들을 본다.

5년여전 아들과 지리산 종주에 나섰던 성삼재에서 본 밤하늘 풍경 그대로다.



그날의 그 감정을 다시 적어본다.


"별이 유난히도 밝았다.

어렸을때 시골마을에선 밤이면 보기싫어도 보아왔던 무수히 많은 별...

여름날이면 고향집 앞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우면 하늘은 온통 별천지였다.

그 무수한 별들을 보며 온갖 상상이 끝없이 이어졌던 어린날의 동심.

요즘 아이들은 별에 대한 그런 추억이 없는것같아 안타깝다.

21살 아들은 이렇게 밝은 별은 처음본단다.

하긴 나도 잊고 살았던 별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수많은 별이다."


벌써 딱 5년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랜턴 불빛에 의지해 어둠과 고요를 뚫고 가파른 길을 오른다.

오르다가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오르고,또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또 오르고를 반복한다.

초롱초롱한 가을 하늘의 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걷다가 처다보고 걷다가 처다보기를 50여분, 이윽고아련히 여명이 밝아오고 능동산 정상이 나왔다.

능동산 정상에서 일출 사진을 담고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해가 떠오를 위치를 확인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일출사진을 담을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왔던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올라오면서 눈여겨 봐뒀던 전망데크를 향해서.....



6시30분.

서서히 붉어지던 동쪽 하늘에 드디어 붉은 불덩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감동이다.



용솟움치는 붉은 기운....

밤을 새운 피로를 날려보내고 새로운 기운을 받는다.

그리고 그 기운으로 대장정을 시작한다.



능동산 정상.

일출 감상을 하고 다시 능동산 정상을 지난다.

능동산은 높이가 983m로 제법 높은 산이지만 이곳 영남알프스 산군에서는 지나가는 봉우리 정도로 인식된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은 산이다.



능동산 정상을 지나면 걷기좋은 능선길과 임도길로 이어진다.

능동산에서 천황봉까지는 5.9km.

그러나 거의 평지 수준의 아름다운 억새길이다.



샘물상회와 부근 억새밭이다.



능동산에서 사자봉으로 이어지는 분지형 억새길이다.

아침햇살에 은빛을 발산하는 억새길을 걷는 기분이 더없이 상쾌하다.



그 분지형 억새길을 지나 이제 천황을 오른다.



가지산, 운문산과 천황, 재약산을 가르는 밀양~울산간 도로.



억새길이 끝나고 천황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키작은 잡목이 많은 목초구간이라서 상쾌한 기분으로 오를 수 있다.

그렇게 기분좋은 걸음을 내딛는 사이 건너편 산군이 조망되었다.



가지산(앞쪽)과 운문산(뒷쪽)이다.

얼마 전에 연계산행을 했던 역시 산림청선정 100대 명산들이다.



지난 초여름에 종주했던 가지산과 운문산이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하다.

덕분에 그때의 그 벅차오른 감정에 다시한번 젖어본다.

"가지산 산행은 영남 알프스의 첫 대면이었다.

초여름 날, 마침 산행 시작은 비가 왔으나 정상에서는 확 개었었다.

비개인 산정,그것도 영남 알프스의 중심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가히 일품이었다.

끝없이 펼져지는 산능선의 파노라마, 그 사이사이를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조각들.....

여기저기서 터저나온 산객들의 탄성...."

그때의 그 감정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올랐던 산을 다시 건너편에서 바라다 보는 기분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실제 오를때의 힘듦과 감동이 동시에 되살아 나기 때문이다.



이제 천황정상부의 은빛 억새길을 걷는다.



이 구간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길이기도 하다.

사실 뭐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억새평원이라든가, 최고의 억새군락지라든가, 이런 수식어가 붙어있는 곳 보다 여기가 좋은건 다양한 풍경과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끝없는 산그리메와 어우러지고, 키작은 잡목의 화려한 단풍색과 어우러지고, 큰 산과도 어우러지고 작은 언덕배기와도 어우러진 다양한 억새풍경.



그 그림같은 풍경 속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산객들.

무엇보다도 길이 가파르거나 거칠지 않아서 유유자적 즐기며 걸을 수 있어서 더 없이 좋은 길이다.



아무튼 오늘 산행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구간을 지나간다.

사방의 조망이 확트여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산그리메를 보면서 은빛 억새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기분.....

내가 걷는 기분도 물론  좋았지만 한쪽에 비켜서서 구름에 달가듯이 하늘거리는 억새꽃 사이를 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낭만적이이었다.



정상이 가까워져 올 무렵 뒤돌아 본 풍경이다.

평지 같지만 고도가 900~1,000m에 이르는 능동산에서 천황으로 이어지는 고원지대다.


 

천황봉 정상부근에서 다정하게 쉬고 계시는 노부부.

그래, 사랑은 마주 보는게 아니라 같은 곳을 보며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 했지.....



천황산(사자봉)정상(1,189m)

오늘 산행의 최정상이다.

천황산은 일본식 이름이라고 해서 일부 산악인들이 천황산과 재약산을 묶어서 재약산으로 하고 천황산을 그 통합 재약산의 주봉인 사자봉으로, 그리고원래 재약산을 수미봉으로 통일 했으나 또다른 일부에서 천황산이 우리 고유 이름이라고 해서 아직도 혼용되고 있는 산이다.

빨리 산이름이 정비되어 통일된 이름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천황산 정상은 1,189m나 되지만 부드러운 어머니의 젖가슴 형상이다.

주변은 나무가 없고 억새밭으로 형성되어 있어 다른 고산들에 비해 독특한 풍경이다.

바위가 더 많다는 것 말고는 마치 소백산 정상부를 닮았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확 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천황산 정상에서 잠시 풍경 감상겸 휴식을 하고 다시 재약산을 향해서 간다.



하산길에 뒤돌아 본 천황산 정상이다.



그리고 가야할 앞쪽 풍경이다.

재약산과 그 아래 사자평이 펼쳐져 있다.



다른 방향에서 담아 본 천황산 정상이다.

바위와 어우러진 단풍이 삭막한 민둥산을 컬러플하게 해주고 있다.



이제 사자평 억새 군락지에 들어섰다.



아~ 내게는 넘사벽인 멋진 포스다.

이건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산객이 아니라 무거운 짐 진 자들이다.

그렇지만 부럽다.



가끔 산에서 만나는 큰 배낭 멘 산꾼들을 보면 항상 부럽다.

허름한 배낭 메고 어슬렁어슬렁 걷는 내 모습과 대비 되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의 배낭은 어쩌면 한결 같이 단정하게 꾸렸는지...



구슬봉이 꽃.



사자평이다.

사자평은 천황산과 재약산 사이에 있는 125만평에 이르는 억새평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억새평원이라고 하는데 느낌은 그렇지 않았다.



사자평이란 이름은 천황산을 사자봉이라 부르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산 늪지대라서 그런지 다른곳의 억새에 비해서 튼실하고 풍성해서 더욱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고 있었다.

은빛물결이라는 표현에 딱 맞는 풍경이다.



사자평에서 본 천황산 정상부다.



사자평을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 길로 접어든다.

이제 재약산 구역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다시 재약산 오르는 길에 뒤돌아 본 천황산 방향 조망이다.

천황산에서 능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마치 지리산의 연하선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오늘 내가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재약산(수미봉)정상에서 본 천황산.

재약산은 천왕산과 함께 100대 명산에 들어있는 영남 알프스 산군의 하나다.

재약산이란 독특한 이름은 신라 덕흥왕의 셋째아들이 이 산의 영정약수를 마시고 고질병이 나았다고 전해지면서 약수를 가진 산이란 뜻의 재약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사자봉은 정상 서쪽에 사자머리를 닮은 바위가 있어서 사자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영남 알프스 산군에 포함되어있는 가지산 1,241m, 운문산 1,188m, 천황산(재약산) 1,189m, 신불산 1,159m등 4개의 100대명산을 완등했다.



그중에 운문산에서만 비를 만나 제대로 즐기지 못했을 뿐 나머지 3개의 산에서는 최상의 조건에서 즐긴 셈이다.

그 마지막날인 오늘도 날씨가 너무좋아서 시야도 좋고 산행하기에도 최적인 조건이다.



천황산(사자봉)이 이름과는 다르게 완만하고 부드러운 산세인 반면 재약산(수미봉)은 수려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영남 알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세가 아닐까 싶다.



신불산과 간월산 그리고 간월재.

한달 전에 올랐던 웅장한 산세의 신불산이 손에 잡힐듯 하다.

역시 영남 알프스의 완등자 답게 보이는 산마다 그때의 감동을 되새겨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때는 아직 만개하지 않은 억새가 지금쯤은 온통 은빛으로 일렁일 터이다.



하산은 표충사로 한다.

저 멀리 오늘 산행의 종착점인 그 표충사가 내려다 보인다.



재약산 수미봉에서 표충사로 하산하는 길은 6km쯤이다.

대부분의 길이 긴 데크 계단과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지루하고 힘든 하산길이었다.



하산중에 만나는 고사리분교 터다.

옛날 화전민이 살던 마을에 하늘아래 첫 학교였다는 고사리분교가 있었다고 한다.

몇십년 지나지도 않았을 터인데 벌써 흔적이 없다.



고사리 분교 터를 지나 표충사로 가는 길은 폭포길이다.

눈에 보이는 폭포, 보이지 않는 폭포.

이름있는 폭포, 이름 없는 폭포.....계곡 자체가 폭포다.

그래서 하산하는 내내 폭포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 계곡과 폭포 주변으로는 제법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어 가을 기분을 만끽하며 하산한다.



층층폭포.

폭포가 층층이 내려온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폭포아래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아이가 기념 촬영을 하는 모양이다.



수량이 많은 날은 정말 대단한 위용을 뽐낼것 같은 높이다.



폭포가 귀한 다른 산이라면 제법 그럴싸한 이름 하나쯤은 있을 텐데 이름이 없다.



홍룡폭포.

또는 흑룡폭포라고 부르는 폭포다.



오후 2시 30분 표충사 도착.

울산역 ktx 3시 22분 예약.

시간이 촉박해서 표충사 관람은 생략한다.

그러나 울산역까지 택시편이 쉽지 않다.

밀양 택시를 불러야 해서 요금도 요금이지만 밀양에서 표충사 오는 시간이 만만치 않아서다.

결국 열차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히 다음차 승차권을 구입할 수 있어서 귀가는 정상적으로 했다.

역시 대중교통은 몸은 편하지만 머리는 복잡하다.



*산행코스:배내고개 ㅡ능동산 ㅡ임도 ㅡ샘물산장 ㅡ천황산(사자봉) ㅡ천황재 ㅡ사자평ㅡ재약산(수미봉)

                ㅡ 고사리분교터 ㅡ층층폭포 ㅡ홍룡폭포 ㅡ표충사(16km,사진촬영, 식사와 휴식 포함 9시간)




작가의 이전글 팔영산 ㅡ여덟개의 봉우리에서 즐기는 한려수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