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단상
내가 어릴 때 겨울이면 집안에 쇠로 된 난로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뜨거운 쇠덩어리가 방 한가운데 있을수 있다는게 상상이 안가는데 보통 주택이라면 방이나 마루에 연탄난로가 하나씩 있었다. 그 난로 위에 양은주전자에 보리차가 보글보글 끓었고 밤이면 그 위에다가 가래떡도 노릇노릇 구워먹은 기억이 난다.
춥고 가난했던 시절이지만 작은 집은 단촐해도 포근했었다. 온 가족이 방 한칸에 누워자는건 다반사였다.
언제부터인가 자녀들마다 각 방들이 생기고 냉장고며 소파며 침대며 살림살이가 늘어나면서 집은 사람보다 물건이 채워지고 물건 때문에 집을 늘여야 하는 판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집을 사려면 월급을 꼬박 30년을 모아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서울 인지 경기도 인지 , 아파트인지 연립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월급쟁이가 돈모아 집을 산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얘기이다.
꼬박 30년을 모아 집을 산다고 해도 온 재산을 집에 투자했으니 집 이외에는 재산이 없을테고, 빚을 내어 집을 샀다면 집을 샀어도 매월 은행에 이자내는, 월세집이나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소시민에게 집이란 로망이자 삶의 짐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내집내집"을 외치며 달려왔을까.
부동산 광풍이 일던 1980년대를 시작으로 90년대를 지나 2000년 초반까지 집을 사서 되팔고 다시 사서 되파는 이른바 '부동산투자아줌마'들이 곳곳에 즐비했다. 회사든 교회든 '누구누구 와이프는 부동산 투자를 잘해서 지금 아파트가 몇억 이라느니' 이런 성공담들은 마치 부동산투자 안하거나 못하는 와이프는 무능한 여자로 보이게 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쌓아놓은 버블은 타인들이 범하지 못할 탑이 되어 '우리만 누리자'는 극한 이기주의의 산물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올려놓은 아파트가격에 서민들은 집살 엄무를 못내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 아파트모델하우스를 가면 입이 떡 벌어진다. 건축소재도 고급스러지고 현관에서 오늘 날씨를 알려주는 첨단시스템도 장착되어 있다. 돈있는 사람이라면 작은 정원이나 테라스를 갖춘 고급 빌라들도 유행하고 있다. 집은 넓어지고 고급스러워져 가지만 가난한 시절 아랫목에 담요 덥고 온가족이 모여 도란도란 얘기하던 그 따뜻함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다들 집으로 오면 각방으로 흩어지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들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주중 아버지와 대화하는 청소년의 비율은 31.8%. 하루 10분이라도 대화하는 아이가 10명중 3명이라는 얘기다. 그나마 고등학생이되면 학원과 공부때문에 그 비율도 줄어든다고 한다.
집은 무엇인가.
언젠가부터 집은 집이라는 고유의 역할 보다는 투자의 대상이 되고, 30대는 30평, 40대는 40평이라는 성공의 준거기준이 되어버렸다. 집은 쉴 수 있는 공간이고 밖에서 치이고 힘든 몸과 마음을 쉬고 회복하는 장소이다. 그것이 어떻게 평수와 가격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초원에 살며 집을 말 안장에 싣고 다니는 유목민들에게는 집이란 짐일 뿐이라고 한다. 그들의 진정한 집은 바로 광활한 초원인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성냥갑같은 아파트라는 집을 쟁취하기 위해 평생을 수고하는 우리들이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나는 아직 집이 없다. 있던 집도 팔아 치웠다. 그런데 언젠가는 내 집을 갖고 싶다. 집은 작아도 마당이 있어서 지인들을 불러 식사도 할 수 있고 비오는 날이면 처마밑에 앉아 커피향 맡으며 책읽을 수 있는 집. 내 아이들이 시집 장가 가서 손수들 데리고 놀러오고 싶은 몸과 마음이 편한 집을 갖고 싶다. 그러고 보면 나도 유목민처럼 광활한 초원을 품을 만한 배포는 없나보다. 그래도 좋다. 어릴적 시골 할아버지댁에서 가진 따뜻한 집에 대한 기억처럼 내 손주들에게도 집에 대한 따뜻한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
"집은 그저 집일 뿐이다. 아름다운 집은 집의 모양이 예쁘다거나, 아주 독특한 생각이 담겨졌다거나, 좋은 재로를 썼다거나, 튼튼하게 지어졌다거나 하는 걸로 결정 되지 않는다. 비록 싸구려 재료로 허름하게 지어진 집이라도, 초라하고 작은 집이라도 그저 그런 생각으로 지어진 집이라도,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예쁜 마음들이 있다면 그 집은 아름답다.'
-함성호. <당신을 위해 지은 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