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본다는 것에 대해
돌본다는 것.
'내가 고양이와 놀때에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몽테뉴
르네상스기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는 자신의 반려 고양이가 소재인 에세이 '레미몽 세봉에 대한 사과'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고양이는 철학하는 동물' 이라고 말한 진중권의 책에서도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고양이를 돌본다고 생각하지만, 고양이는 사람이 자기를 돌본다고 생각하기보다 자기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일을 하는것이라 여기니. '고양이 집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는가.
강아지, 고양이 모두 좋아하지만 이놈의 고질병인 비염으로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한다.
앞으로 마당이 있는 집에 살게 되는 날이 있다면 모를까.
SNS에서 나마 애묘,애견인들이 올려주는 사랑스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만족한다.
내눈에도 그렇게 사랑스러운데 그들에게는 얼마나 예쁠까.
1인 , 2인 시대이다.
혼자 살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살거나 하면서 자연스레 반려동물을 키운다.
내가 아는 지인의 어머님은 치매인데 낮에 식구들이 다 나가고 없을때 멍하니 혼자 있어서 고양이를 한마리 데려다 놓았다고 한다. 그 아이를 쫒아다니고 밥먹이면서 조금 호전되셨다고 하니 요즘 시대에 반려동물은 좀 더 우리 삶에 가까워진것 같다.
반려동물의 단점이라면 나보다 먼저 하늘나라를 간다는 것. 그들의 아픔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간다.
사실 우리가 돈을 들여, 시간과 정성을 들여 그들(반려동물)을 돌본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이 우리를 돌보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내 삶의 의지를 더 굳건히 하게 하고, 행복의 호르몬을 분비시키니까.
반려동물이 우리곁을 떠났을 때 우리는 더욱 분명히 느끼게 된다.
'돌본다는 것'을 반려동물로 얘기를 풀어봤지만, 우리는 서로 '돌보면서' 살고 있다.
그것이 삶에 큰 에너지가 된다. 돌보아서 고생하는 것이라기 보다 돌보기 때문에 사는지도 모른다.
돌보는 대상이 없어졌을 때 우리는 무기력해진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이타적인 동물이다. 이기적인 존재로만 알았는데, 얼마나 다행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