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를 써본적이 있나요.
김형수시인의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라는 에세이의 첫 에피소드는 어릴 적 손편지에 대한 추억으로 시작된다.
첫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가 아들 걱정과 집안 일로 며칠동안 끙끙 앓으시는 모습이 마음이 아파 당시초등학교 2학년이던 시인은 "백설이 분분히 내리는 날에......" 로 시작되는 이상한 편지를, 글씨를 쓸 줄 모르는 '글자맹'어머니하고, 글에 담을 내용을 모르는 '문학맹'인 어린 동생 둘이서 합작하여 큰 형님 부대의 중대장님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보름후에 큰 형님이 특별휴가를 나왔다고 한다. 동생의(?) 편지를 받은 중대장님은, 너는 동생의 편지를 받고 보내는 거니 집에 가서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드리고 오라, 이랬다고 한다.실로 놀라운 손편지의 위력이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손편지는 흔했다. 군인아저씨에게 보내는 위문편지, 친구들과 서로 주고 받는 우정편지, 연애하는 사람들이 수줍게 건네주는 연애편지, 생일이면 의례 편지를 주고 받았다. 라디오의 감성이 충만하던 시기에는 손편지 사연을 보내기도 했다. 서랍에 우표 몇개는 늘 있었고 한참 유행하던 크리스마스 씰도 우표옆에 살포시 붙여보내는 센스도 있었다. 학교 문방구에는 다양한 편지지도 많았었다. 학창시절을 졸업하면 모아둔 손편지가 한 박스가 되었다. 근래 손편지를 받아보았던가 기억을 더듬어 봐도 몇년간 짧은 카드는 받아봤어도 우표딱지 붙은 손편지는 몇년안의 기억에는 없다. 그야 말로 누가 핍박하지도 않았는데 손편지의 말살이 이루어진 거다.
우체통이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것은 약130년전 구한말에 우정청국과 함께 우체통이 설치되었는데, 처음에는 현재의 우체통의 색깔의 상징인 빨간색이 아니고 원목으로 된 나무색깔이었다고 한다. 하얀 옷을 즐겨입었던 백의민족 다운 색깔이라는 생각이 든다. 빨간색에서 초록과 빨강이 섞인 색깔을 쓰다가 다시 눈에 잘 띈다는 이유로 현재의 빨간색우체통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약 20년 전에 5만 7천개였던 우체통은 작년통계에 의하면 만 9천개정로도 삼분의 일 정도만 남았다고 한다. 인터넷이 보편화 되고, IT가 발전하면서 전자메일이 종이편지를 대체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체통 이용량도 2008년 8270만회에서 2013년 3836만회로 5년만에 절반이상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앞으로의 추세도 달라보이지 않는다. 더 줄어들면 줄어들었지 늘기는 쉽지 않을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길거리에서 혹은 여행길에서 우체통을 발견하면 이색적이기 까지 하다.
2000년에 개봉된 영화 '시월애'는 우체통을 매개로 과거의 남자와 미래의 여자가 편지를 주고 받는 스토리이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과거에나 가능한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현재 영화에서는 남녀가 동영상이 담긴 이메일을 주고 받는 소재가 가끔씩 영화에서 등장한다. 그처럼 종이편지, 손편지는 더 이상 영화의 소재가 아니다.
손편지를 써 본 사람은 그 느낌을 알고 있다. 꾹꾹 눌러가며 생각하고 또 쓰고 다 쓴 편지를 보내기 전에 다시 한번 읽어보고...받는 사람의 마음이 어떨까 상상도 해보고 우체통에 넣고서는 또 며칠의 기다림. 그리고 다시 다시 답장을 받기까지의 더 긴 기다림. 아니 기다림이 가져오는 설레임이 있다. 1초면 전송되는 전자이메일과는 너무나 다른 무게감과 정성과 감성이 담겨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내...' <가을 우체국앞에서>라는 윤도현의 곡에서 느림의 미학을 본다. 기다림 그리고 설레임.
편지야 내용과 마음을 전달하면 되지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의미로 보면 손편지만한 것이 있을까. 스마트폰의 짤막한 카톡대화나 간단한 문자가 일상화가 되어 서로의 소통도 마음깊은 곳의 이야기보다는 단편적인 일상만 주고 받는 세상에서 다시 손편지가 부활하길. 그래서 우리의 마음도 좀 더 여유있어지고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공유할 수 있어지길 기대해본다.
*사진은 제주도 최남단 마라도 섬에 있는 우체통.
지난 여름 휴가에서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