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과 단축근무, 복권 당첨을 고민하며 행복한 상상을 한다.
얼마 전 출근길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이다.
말복을 기념하여 사장님께서 직원 격려 제안을 하셨단다.
첫 번째 제안은 치킨쿠폰 10장과 오후 6시 정시퇴근
두 번째 제안은 오전근무만 하고 퇴근, 대신 치킨쿠폰 없음
사연자는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너무 고민이 돼서 한숨도 못 잤다고 말했다.
나는 사연을 듣자마자 "당연히 오전근무만 하고 퇴근하는 거지!! 그걸 왜 고민해?"라고 말하며
운전하는 남편에게 호응을 구했다.
별다른 반응이 없는 남편에게 나는 한번 더 말했다.
"그까짓 치킨이 뭐 대수라고... 나는 무조건 쉴거야!!"
그런데, 바로 이어 라디오 DJ가
"아~~ 치킨 10마리를 받을 것이냐~~~ , 오전 근무냐 그게 고민이시군요~"라고 했다.
"치킨 10마리"라는 단어가 유독 크게 들린다.
DJ의 멘트를 듣자마자 나는 "뭐? 치킨이 열! 마리!라고? 그럼 고민 좀 해야겠는데?"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방금 전과 전혀 다르게 말을 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갑자기 크게 웃는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남편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나는 약간 머쓱했지만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치킨 한 마리에 2만 원, 10마리면 20만 원. 20만 원이면 좀 고민할 필요가 있겠네.. 헤헤."
우리 회사 사장님 제안도 아닌데, 나는 사연자와 한 마음이 되어 치킨 10마리의 가격을 매겨보며, 아침부터 행복한 고민을 한다.
얼마 전부터 카드사에서 무료로 알려주는 오늘의 운세를 아침마다 확인한다.
딸아이 픽업을 위해 학원 인근에서 대기하는데 복권방이 눈에 띄였다.
오늘의 운세에 횡재수가 있었다는 게 문득 생각났다.
- 아! 오늘 복권 사야 해!! 오늘 금전운이 좋았거든!!
- 금전운, 그런 건 또 뭐래..
- 오늘의 운세를 봐주는 사이트가 있어~ 내가 매일 보거든. 근데, 오늘은 횡재수가 있다고 하더라고!!
- 그래? 그럼 사던지~
- 오예~ 로또도 사고 연금복권도 사야지~
마치 이미 복권에 당첨된 양 벌써 신나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한다.
"둘 중에 하나만 당첨되면 회사 그만두고 쉬어."
어머! 이 남자가 웬일이래. 평소에는 복권 당첨돼도 서울에 있는 아파트 한 채도 못 산다며 현실적인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쉬라고 하다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남편이 바로 말을 바꾼다.
"아니다. 그만두지는 말고 단축근무로 바꾸면 되잖아. 오전 근무하고 회사에서 점심 먹고 한 시간 더 근무하고 퇴근해. 그리고, 오후시간에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지. 자기가 평소 좋아하는 도서관을 가든, 카페를 가든."
"그래. 그러면 되겠다. 여유가 있으니 회사도 즐기면서 다닐 수 있을 거고, 오후에는 내가 평소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카페도 가고~ 그렇게 살면 되겠다."
나는 복권에 이미 당첨된 것처럼 행복한 고민을 한다.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모든 일을 미리 고민하고 자주 걱정하며 마음을 지치고 힘들게 한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하는 고민, 걱정 중에 90%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으니 걱정으로 인한 불안감을 줄이라고 한다. 그러나 '치킨을 선택할까, 단축근무를 선택할까, 복권에 당첨되면...' 같은 고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아도 마음을 잠시 행복하게 해준다.
그런데! 진짜 이번주에 복권이 당첨되면 어떡하지?
(그 고민은 당첨이 되면 다시 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