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터'라는 단어를 접할 때면 10년도 더 지난 어느 날이 기억난다.
아이가 6살쯤 되었으려나.
31가지 맛으로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메뉴를 보던 딸아이가
"엄마. 쿼터가 뭐예요?"라고 물었다.
이 가게는 파인트, 쿼터, 패밀리 등의 메뉴가 있다.
메뉴 표시 중에 쿼터라는 단어 뜻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쿼터의 사전적인 의미는 1/4이라는 것을 그때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아는 것이 정확한지 자신이 없었다.
나는 딸아이의 "쿼터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못 들은 척했다.
아이는 천진한 목소리로 다시 또 물어본다. "엄마. 쿼터가 뭐예요?"
나는 다시 한번 더 못 들은 척했다. 등에 땀이 맺혔다.
나는 주위를 의식하고 있었다.
내 대답이 틀리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비웃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 누구도 우리 대화에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딸아이는 계산을 기다리는 동안 몇 번이나 더 쿼터가 뭐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아이는 쿼터와 관련한 질문을 그 이후에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쿼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딸아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서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마음 한켠에 묵직하며 불편해진다.
며칠 전 영단어를 공부하다 쿼터라는 단어를 보게 되었다.
또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일까. 부끄러운 내 모습 때문일까.
"정확히 모르겠으니 나중에 같이 찾아보자~"라는 말을 용기있게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고 1이 된 딸아이가 영단어를 외우고 있다.
쿼터라는 단어 뜻이 뭐냐고 슬쩍 물어봤다.
"1/4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냐는 얼굴로 쳐다본다.
"왜... 배스킨라빈스에 쿼터라는 메뉴가 있잖아..."라며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날 이야기를 딸에게 털어놓았다.
"엄마가 그때 대답을 제대로 못한 게 마음에 걸렸는지, 쿼터라는 단어만 나오면 기분이 이상해진다"라는 솔직한 마음도 전했다.
아이에게 그날을 기억하는지 물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질문한 기억은 안 나는데, 한동안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쿼터 메뉴가 뭔지 늘 궁금해 하기는 했어요."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이제 나보다 영단어를 더 많이 알고 있는 딸에게 다시 물었다.
"근데 아이스크림 가게 메뉴에 쿼터는 뭘 의미하는 걸까?"
"가장 큰 사이즈 용량의 1/4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라고 딸은 답한다.
"쿼터가 뭐예요?"라고 물었던 천진한 딸이 이제는 엄마 대답이 필요 없을 정도로 커버렸다.
모든 건 때가 있다. 아이 질문을 피하지 말자.
모르는 건 모른다고, 같이 한번 찾아보자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어른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그 일을 고백한 후 신기하게도 쿼터에 대한 내 불편한 마음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