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술을 강요하는 사람이 있네.
술. 마시고 싶으면 내가 알아서 마실게요.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하던 차에 10주 과정 글쓰기 수업을 알게 되어 수강했고, 어제가 마지막 수업이었다. 종강을 기념하여 강사님과 수강생이 회식을 했다. 수강생은 20살 대학생부터 60넘은 어르신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대체로 수강생들은 성격이 온화하고 조용했다. 과정 초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강의실을 빠져나가기 바빴다. 10번 수업 중 5번째 시간, 수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활달한 수강생의 제안으로 회식을 한번 하게 되었다. 회식 덕분에 수강생들이 조금 친해질 수 있었고, 어제 종강을 기념하여 두 번째 회식을 했다.
나이가 많은 수강생 중 술을 유난히 좋아하는 분이 한 명 있었다. 회식 장소로 이동하면서 그분이 나에게 "오늘은 술을 마실 거냐"라고 물어봤다. 내가 지난 회식에도 차를 핑계로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술을 마시면 다음날 숙취로 너무 힘들어 웬만하면 마시지 않는다. 술을 아예 못하지는 않지만 차가 있어 운전도 해야 하고, 지난주에 걸린 감기가 완전히 낫지 않았기에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할 거 같다"라고 했다. 대답을 하자마자 이유를 물어보는 그분에게 구구절절 사정을 말하는 게 번거로워 "목이 좀 아파서요."라고 했다. 그러자 본인은 이미 목이 다 쉴 정도로 아프고 차도 있지만 택시를 타고 갈 거라고 말하며 나에게 서운하다고 했다.
식당에 도착하여 주문을 위해 인원을 확인하자 10명 중에 4명만 술을 마시겠다고 한다. 원래 술을 못 먹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차를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그분은 차를 가져왔으면 대리를 불러라, 대리비 없으면 대리비를 내주겠다. 같이 술 한잔 할 줄 알았더니 서운하다. 재미없게 다들 술을 안 마신다. 등 식사하는 내내 볼멘소리를 하며 술 안 마시는 사람들에게 눈치를 줬다. 계속해서 술잔으로 건배를 권했다. 술 잘 마시는 수강생에겐 "역시 성격이 제일 좋아! 최고야!"라며 칭찬하고 물이나 음료잔을 든 사람에게는 "진짜 이래야겠어? 내가 물 잔에 건배를 해야겠어?"라고 무안을 줬다. 처음에는 웃었지만 회식 내내 술타령을 하니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요즘에는 직장 상사도 함부로 술을 강요하지 않는데, 이런 사적모임에서 술을 저렇게까지 권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성격에 만약 그 상황이 직장회식이나 친한 모임이었다면 술을 왜 강요하냐고, 그러지 마시라고 한마디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약간씩 조심하고 예의를 지키는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회식이 끝나는 시간까지 불편한 마음을 참았다.
술을 좋아하면 본인만 맛있게 먹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혼자 취하면 재미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혼자 취한 모습을 보이는 게 싫어서일까? 수강생 중 한 명이 자신은 원래 술을 엄청 좋아하는데 차를 가지고 와서 못 먹는다고 했다. 그랬더니 술 권하는 그분이 말한다.
- 남편은 술 잘 마셔?
- 아니요. 안타깝게도 남편은 술 한잔도 못 마셔요.
- 진짜? 에이~ 뭐 그래! 부부가 같이 마셔야 즐겁지, 그럼 집에서 술도 못 마시고 재미없겠다.
- 그러게요~ 남편이 못 마셔서 집에서는 저 혼자 마셔요.
- 우리 부부는 술을 같이 마셔서 사이가 좋아. 싸웠어도 술 한잔 하면서 풀기도 하고 말이야.
아니. 술을 안 마시면 대화를 못하나? 왜 남의 부부 생활까지 술로 평가하려고 하는 거지. 싸우고 화해할 때 꼭 술이 있어야 하나.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는 개인의 취향이고 선택이지 왜 저렇게 술이 필수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사실은 나도 20~30대 리즈시절엔 술을 자주 마셨다.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많이 마시기도 했고, 숙취로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있기만 하며 하루를 몽땅 날린 적도 있다. 40대 후반이 되니 젊은 날처럼 술을 마셨다간 몸이 견디지 못해 다음날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숙취로 인한 고통이 그전보다 수십 배는 커졌다. 그래서 요즘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가급적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 개인마다 이런저런 사유가 있어 술을 안 마시는 것인데 아직도 술을 강력하게 권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불편하다. 나이 드신 분들 중에 본인도 원래 술을 못 마셨지만 많이 마시니까 늘더라면서 주변 사람에게 술 마실 것을 권하는 사람이 있다. 술은 마시면 는다며 술을 마셔야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위험한 발언을 하는 사람도 아직 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타인의 건강과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무서운 사람들이다.
회식을 마치고 집에 왔다. 마음이 헛헛하여 시원한 맥주가 땡겼다. 다행히 냉장고에 무알콜 칭따오가 한 병 있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식탁에 앉아 땅콩을 안주로 칭따오를 마셨다. 남편이 회식하고 왔다면서 뭘 또 먹냐고 물어보길래 나 혼자 시원하게 맥주 한잔 먹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순식간에 맥주 한 병을 비우고 꺼억하고 트림을 하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해졌다.
술 말고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제발 내가 좋다고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말자. 앞으로 우리 사회에는 상대의 상황과 취향을 배려하는 품위 있는 어른이 더 많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