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 지어놓고 오랫동안 방치해 놓은 빌딩들을 보고 무책임함을 느낀다.
길가 여기저기, 또 건물 주차장 바닥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들을 보고 무책임함을 느낀다.
돌담과 철망 사이, 끙끙대며 힘겹게 가지를 뻗치는 나무를 보고 무책임함을 느낀다.
오래된 도시의 길가에 서 있는 들풀 같은 노인들을 보고, 무책임함을 느낀다.
새로운 도시로 나 몰라라 떠나버린 젊은이들을 보고 무책임함을 느낀다.
누군가 뿌리고 간 씨앗에 노랗고 뿌옇게 오염된 하늘을 보고 무책임함을 느낀다.
그 누구와 비교할 것 없이 무책임한 나 자신, 가족에, 이웃에, 자연에 무책임한 나를 보고 더없이, 무책임함을 느낀다.
봄날 날씨가 서늘하다. 하늘은 희뿌옇고 빛바랜 건물들과 공장이 우거진 이 도시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나는 매일 하던 대로 깨어나서, 매일 하던 대로 담배를 피우고, 매일 하던 대로 강의를 듣고, 밥을 먹고, 씻고, 학원 강의에 나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같은 일은 하는데 날마다 새로우며, 이 같이 새롭게 단장해 가는 봄을 보고 날마다 기뻐야 할 텐데,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마음 바닥에 알알이 어제 먹은 알약들이 굴러다니기 때문일까?
이제 새롭게 수필을 쓴다. 소설, 시, 회화, 그림책 창작까지 이것저것 발을 넓혔던 내가, 나 자신에게 살인자가 되기가 두려워. 또 내 스스로의 욕망을 감출 수가 없어, 감추지 못한 욕망을 화초처럼 돌볼 수가 없어 모든 걸 내려놓고서.
수필을 쓴다는 건 아마 마음을 정돈하는 일일 것이다. 창작의 법칙들 속에서 골머리를 앓다가 피로해진 마음을 물가에 누이는 일일 것이다. 쉴 만한 숲 속, 쉴 만한 물가에. 이런 과정이 없다면 천만금을 얻는다 해도 마음이 지옥 같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눈이라도 귀라도 쉬고 싶었는데, 어딜 가나 소요스런 도시의 소음, 또 눈 둘 데가 없는 엉망이 된 도시 풍경, 또 피해자가 된 자연은 내게 사람의 무책임함을 불러오는 것이다. 덜 개발된, 덜 자라난, 덜 보호된, 덜 아름다운 - 이란 수식이 이 도시에는 알맞은 말일 것이다. 이런 도시에 젊은이들이 살 리가 없다. 젊은이들은 저마다의 유익을 위해 수도권으로 떠났고 떠난다. 이 도시는 생명이, 유효기한이 다 한 도시인가? 건물 사이사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공장들의 녹슨 철골 구조가 대답을 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 도시가 내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도시는 나다. 아직도 끊지 못한 약, 여물지 않은 마음, 이해받지 못하는 상처, 지저분한 턱수염, 낡고 유행이 지난 옷을 입고, 생명과 유효기간이 다 한 채 그저 세월이 가는 데로 세월의 옆길을 가는 것이다. 이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 채. 길가에 어떤 꽃이 피었는지 보지도 못하고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꿈을 가진 채 간신히 걸음을 뗀다. 하지만 몸이 꿈을 따라주는 것도 아니라, 무기력한 발걸음을 응원해 주는 것은 강바람뿐이다. 강바람뿐이다.
오늘도 나는 강의를 나간다. 사상구 감전동의 아주 퇴락한 골목의 가난한 동네 미술 학원이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네 명. 그들 틈에 있으면 유일하게 생기를 얻지만, 그들을 만나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도 여의치 않다. 그러고 나면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거나 그림책을 작업해야 한다. 마음속을 불안으로 온통 채우고서. 또 창작의 오만 짐을 지고 소설을 궁리해야 한다. 이 시기는 언제가 되어야 끝날까? 학창이, 수능이, 학업이 끝나면 끝날 줄 알았던 통증처럼 이 시기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살짝 열린 창틈으로 낙동강에서 물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