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서울 XX대의 수시를 떨어지고 나서 나와 내 어머니는 거의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듯이 좌절했다. 나는 수시를 두 군데밖에 준비하지 않았기에 – 도대체 무슨 깡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 남은 대학은 창원 XX대 한 군데뿐이었다. 십이월부터 일월까지 본격적으로 수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요구하는 인체수채화는 물 칠한 습작들만 나올 뿐이었다. 대학 수준에 근접한 습작은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좌절에 빠졌다. 이때까지 문학에 더 집중했던 것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글쓰기와 책 읽기를 그치지 않았다. 조금 더 그림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 말이 맞는 말일 것이다. 나는 학원에서 눈을 감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 우리 어머니가 늘 집에서 하는 대로.
‘나 재수까지 했다고. 우리 엄마 돈 없는데 친척들한테 욕먹어 가며 나 재수시킨 거라고. 그런데 나 철없게 문학에 더 집중했다고. 날 좀 도와달라고.’
그러자 이상한 안도감 같은 게 들었는데, 느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뭘 잘했다고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말인가. 나는 늘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과 반대되는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 글도 삐딱하게만 썼다. 사고 자체가 현대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었다. 나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을 비판했고 정죄했고 미워했다. 그런 내게 무슨 자격이 있단 말인가.
나는 수시 삼차 만에 창원 XX대학에 합격했다. 시험날도 완전 잿빛이 된 얼굴을 하고 시험장 밖으로 나왔다.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는 기절할 것 같았다.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때는 일월이었다. 며칠째 거리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즈음 수시 결과를 기다리며 정시를 준비하러 창원의 학원으로 통원을 했다. 거리는 새하얬고 나무들의 머리도 하얬다. 하늘도 하얬고 차 유리창 틀에도 눈이 끼었다. 얼마나 떨리는 날들의 연속이었는지 모른다. 앞이 보이지 않는 눈길 속에서 얼마나 헤매고 허덕이는 나날들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합격 통보를 받은 날, 나는 나무에 눈을 던질 수 있었다. 눈사람을 쌓고 풀 위에 덮인 눈을 털어버릴 수도 있었다. 나는 대학에 합격했다.
대학에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드디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내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 일월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동생들과 함께 수도권의 한 수련회에 가게 된다. 내가 평생 살면서 매해 갔던 것이 수련회였다. 하지만 그 수련회는 달랐다. 나는 수련회에서 늘 핸드폰을 보거나, 예쁜 여자애들을 보거나, 자거나 하는 둥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청소년시절, 하나님은 내게 너무 먼 존재였다. 그러나 그 수련회에서, 하나님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주셨다. 찬양을 하는데 평생 흘리지 않던 눈물을 흘렸다. 회개 시간에 열심히 회개를 했다. 기도 시간에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날 어루만져 주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직전의 순간까지만 해도 내 마음은 남동생에 대한 열등감과 세상에 대한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내게 다가오셔서 그런 내 마음을 녹여주셨다. 그분이 이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날 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모든 생각과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을 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괴롭고 서러웠던 순간도 다 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 마음을 고쳐주시고 바꿔주셨다.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하던 마음을 평안으로 바꿔주셨다. 열등감으로 일그러져 있던 눈을 사랑으로 바꿔주셨다. 나는 옆에 있는 동생을 더 이상 미움을 느끼지 않고 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난 그 순간 고백했다. 날 미술학과에 가게 하셨으니, 내게 주신 미술적인 재능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쓰겠다고. 또 하나의 놀라운 변화는 그 이후로 술,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술, 담배가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음란 비디오도 마찬가지였다. 내 공허한 속을 채우기 위해 숭배했던 괴테에 대한 마음도 무뎌졌다. 이 모든 일들이 다 한순간에 벌어졌던 일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러니 내가 어떻게 당시에 그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이후 내 삶은 백팔십도 달라져 버린다. 사랑하지 않던 것들을 사랑하게 되니,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기쁨으로 물들게 되었다. 그분은 내게 정말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나는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적합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내가 그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분이 내게 얼마나 많이 베풀어 주셨는지 내 감정을 글로 설명할 수가 없다.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만 느낄 수 있을 따름이다. 하나님이 날 만나주신 이 기적적인 일을 기점으로, ‘질풍노도’였던 내 청소년기가 대단원에 들게 된다. 시골 강가 교량 위에 서서 날이 지도록,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부르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어슴푸레한, 숲 속 아파트의 한 방에 숨어서 클래식과 온갖 전통 악기들의 음악을 듣던 나는 사라졌다. 나는 이제 해 아래로 나오게 되었다. 새로운 인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