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폭력과 가스라이팅은 한 번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하루는 내가 에어컨을 꺼 놓고 나갔다는 이유로, 자기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며 이십 분 동안 날 혼냈다. 하루는 부모님이 함안에서 보내주신 간장게장을 보고 냄새가 난다며, 집 밖에 나가서 먹으라고 했다. 하루는 화장실 변기에 휴지를 한 장 넣어 두는 건 똥을 누고 나가는 일과 같은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내 침대에 내 속옷을 펼쳐놓은 것을 보고, “내가 네 속옷까지 봐야 해?”라고 말했다. 그런 일은 두 달 동안 줄곧 이어졌고, 날 괴롭혔다. 난 왜 이 모든 일에 대꾸다운 대꾸도 할 수 없었을까?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나였다면, 그와 진작 싸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잠자코 받아들였다. 모든 것을 내 잘못으로 인식했다. 두 달 동안 내 서러움은 극에 달했다. 난 미술 연습 후 쉬어줘야 할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공포스러웠다.
거기에 화룡정점을 찍은 사건이 있다. 하루는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비몽사몽간에 화장실 문을 노크 없이 연 적이 있다. 화장실 안에는 그가 있었다. 나는 입에 물을 물고 있어서 제대로 사과를 하지 못했다. 재차 손짓으로 사과를 했다. 그때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 난 일이 있어 밖으로 나갔다. 그날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밖에서 돌아왔을 땐, 근처에 사시는 강도사님이 와 계셨다. 그분은 그와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오늘도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긴장된 마음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강도사님이 나가셨다. 나는 다시 나갔다가 남부터미널 쪽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그가 나를 불렀다. 그는 거실에 주광등을 켜놓고 캠프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내게 오전의 화장실에서의 일을 언급했다. 그는, “왜 손짓으로 사과를 해? 니가 GD야? 한 번만 더 그러면, 널 죽일지도 몰라. 성별 바꿔서 일어났다면 너 성폭행이야. 진짜 패버릴 뻔했어.” 란 말을 시작으로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한 모든 어휘를 동원해 내 인격을 모독했다. 나는 두 손을 모은 채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겁에 질린 내가 단지 뭘 할 수 있었을까? 그 후 난 편입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시작될 내 커리어도, 학원에서의 내 인간관계도, 서울 살이의 꿈도 그날로 다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도저히 못 하겠다.”라고 처음으로 말했다. 그때 하나님은 무얼 하고 계셨을까? 나는 날마다 기도했다. 날마다, 나 자신만 아니라, 온 인류의 영혼과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 학원에서 돌아온 밤 열 시 반, 나는 근처 교회 지하의 기도실로 향했다. 거기서 찬양을 하며 날마다 부르짖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려 했다. 수없이 그를 용서하고 그를 위해 날마다 기도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내 배에 칼침을 놓고 말았다. 이 외에도 많은 욕지기들이 내 귀로 들어왔지만,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그즈음, 어머니와 여동생이 서울로 올라오셨다. 내가 잘 지내는 가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영등포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늦은 밤에 방배동에서 지하철을 타고 영등포로 향했다. 열차는 조용히 땅 위를 굴러갔다. 열차가 동작역을 지날 즈음이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선로 기둥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것이 실재라 믿었다. 내가 열차에서 내렸을 즈음에는, 그 사람이 이미 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열한 시였고, 낮 두 시부터 학원에서 줄곧 그림을 그린 뒤라 몹시 피곤했다. 내 머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헛것을 본 것이었음에도, 그날 밤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내가 살인을 방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날 낮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함안으로 보냈다. 난 곧장 동작역으로 가서 밖에서도, 안에서도 그 자리를 확인해 보았다. 그 자리에는 기둥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선로 위로 인간이 올라갈 수 있는 지를 계속해서 수색했다. 나는 고객지원실에 가기까지 했다. 그곳에 가서 간밤에 사고는 없었는지, 열차를 찰 때 생기는 틈 사이로, 사람이 선로 위로 갈 수 없는지를 물어보았다. 고객지원실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다. 또 선로 위로 갈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재차 설명했다. 하지만 난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난 극도로 공포에 질려있었다. 하나님이 내게 살인죄를 물으시면 어떡할까? 내가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날 두렵게 했다. 공포에 질린 나는 학원 생활도 똑바로 할 수 없었다. 나는 학원을 일찍 조퇴했다. 그리고 방 안에 누워서 멍하니 천창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정신을 빼놓고 다니자 학원 동료들은, “XX아,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내가 도와줄 게 나한테 말해 봐.” 라며 날 도우려 했다. 하지만 난 일주일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일주일이 지나서는 다른 문제가 나를 덮쳐왔다. 지하철 사건 뒤, 난 사고의 혼란에 휩싸였다. 내 머릿속엔 별의별 생각들이 다 떠다녔다. 난 내가 한 생각 중에 성령을 모독한 생각이 있으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했다. 혀로 성령을 모독하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성경의 구절 때문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나는 도저히 일상을 살 수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버스를 타고 함안으로 내려왔다. 함안으로 내려오는 버스에서도 나는 줄곧 두려움에 떨었다. 네 시간 뒤, 두렵고 복잡했던 마음이 함안의 둥근 산을 보자 좀 나아졌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날 괴롭게 하던 그 생각들은 여전히 날 사로잡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편입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집으로 내려온 뒤, 부산에 기도도 받으러 다녀보았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난 결국 부산 신평의 이모 집으로 적을 옮겼다. 동래구까지 다니며 편입 입시를 계속했다. 하지만 증상이 계속되었다. 나는 한 달 만에 입시를 아예 그만두었다. 나는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혔다. 하나님과 성령을 욕하는 소리들이 동시에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나는 머리를 때 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결국 십일월이 되어서야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죽고 싶었다.
병원에서는 네 가지 병명을 말했다.
‘중증 우울증, 강박장애, 중증 불안장애, 화병’
나는 내 인생이 거기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비단 질병을 얻게 되어서 뿐만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성령 모독자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으며, 죽어서는 지옥에 가고 말 것이라고 믿고 또 믿었다. 그때부터 하루 열 알에 가까운 약을 먹어야 했다. 이천 이십 년 십일월 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