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던 한 사람이 있다. 어떤 점이 좋았던지 - 뛰어난 예술적인 재능과 감수성, 사람을 잘 챙겨주는 성격, 능통한 외국어 능력, 과감한 추진력, 모나지 않은 성격 등이 좋았던 것 같다. - 물론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도 있다. 그건 운동을 하지 않아 살이 쪘다는 점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 점을 꼬집어 욕했다. 내가 살이 찌지 않는 체형인 데다, 당시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배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꼬이는 인생을 살아왔다. 살아오며 많은 사람들에게 이유 없는 미움을 받아오며 살았다. 물론 이렇게 묻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 이유 없는 미움이 있냐고.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잘못을 했느냐가 아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분에 넘치는 미움을 받아왔고 그로 인해 얼마나 상처받았느냐이다. 때에 따라선 미움을 받은 이유에 관해 생각해 보기도 해야겠지만.
내 기준에서 그는 기구했다. 그의 과거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밝힐 수 없지만. 내가 그를 만났을 무렵 그는 약을 먹고 있었다. 그때는 약을 먹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남에게 이유 없는 미움을 받는다는 것도. 그저 얕은 공감을 해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심정을 헤아리려 노력하고 기도해 줄 뿐이었다. 당시 나는 건강했다. 운동을 할 수 있었고, 내 처지를 비관하기보단 남을 더 사랑하는데 에너지를 쓸 수 있었다.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려 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기도의 동굴로 가지고 들어갔다. 나는 말 그대로 '착한 행동'을 하는 삶을 살았다. 그랬기에 내게 불행이 닥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나선 안 되었다.
내가 그의 외모를 보고, 속으로 좋지 않은 생각을 품은 뒤 이년, 내 인생에는 일생일대의 일이 일어난다. 필자의 본 에세이를 읽어 온 독자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서울에 편입을 하러 갔다가, 병을 얻어 낙향한 일이다. 전래동화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내 인생에 일어났다. 나 역시 이유 없는 미움을 받았고, 인격이 짓밟혔으며, 그로 인해 병을 얻었다. 강박장애와 불안장애, 우울증, 화병이 그것이다. 병을 얻게 된 이후 나는 좌절했다. 한 번에 네 가지에 이르는 병들이 내 방문을 노크했기 때문이다. 이제 나도 내가 알던 그처럼 약을 먹게 되었다. 나는 세상을 벗어나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려 글을 썼다. 알바 따위의 일을 많이 하지 않았다. 학업에 성실한 것도 아니었다. 난 책을 정신없이 읽었다. 글을 미친 듯이 써댔다. 운동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도 살이 찌기 시작했다. 핑계는 아니지만, 약을 먹으니 종일 잠이 왔다. 움직이기가 싫어지고 움직임이 둔해졌다. 약을 먹은 지 삼 년 차부터는 그 현상이 심해졌다. 살이 점점 쪄갔다.
나는 내 인생을 사느라 바빴다. 글을 읽고 쓰느라 늘 정신이 없었다. 나를 돌아보는 것은 신경을 쓸 수 없는 일이었다. 한 가지 이상의 생각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의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이전의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동정심 많고, 남을 챙기던 성격은 온 데 간 데 없어져 버렸다. 약을 먹음으로써, 내 앞에 펼쳐진 일들을 처리하는 데도 벅찼다.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등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것만이 내게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난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지만, 가끔은 거울 앞에 서게 되었다. 거울 속에서 떠올리기 싫은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사라지는 턱선, 자꾸만 나오는 배. 살에 묻혀 작아지기 시작하는 이목구비. 평생 살 때문에 걱정 않고 살아왔던 나였는데, 어느 틈에 나는 경도비만을 향해 가고 있었다. (육십일, 육십팔, 칠십이, 칠십사, 칠십구... 지난 이년 동안의 내 몸무게 변화이다.)
새벽에 나는 자주 잠을 깼다. 깰 때마다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유리거울을 봤다. 나는 살이 더 쪄있었다. 내가 싫어하던 체형이었던 그의 모습이 바로 내 눈앞에 서 있었다. 그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얼굴이 일그러진 내가 그 옆에 서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젊은 나이에 약을 먹는다는 것. 그것도 오래 먹는다는 것. 그로 인해 몸이 둔해지고 찌지 않던 살이 찐다는 것. 그럴수록 더 게을러진다는 것. 그때 당시는 내가 싫어했던, 그의 면모들이었다. 이제는 내가 겪어봐라는 듯, 그 면모들이 내게 왔다. 선물처럼. 선물이라면 선물일 것이다. 이로 인해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계기를 얻었고, 그의 심정을 한층 이해하게 되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