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먹빛의 아득한 세계를, 몇 줄기 은화살이 비스듬히 떨어지는 속을, 부지런히 젖으며 가는 나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시도되고, 하이쿠로 읊을 수도 있으리라. 사실 그대로의 나를 완전히 잊고 온전히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나는 그림 속의 인물로서 자연의 풍물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된다. 단 내리는 비의 괴로움과 내딛는 발의 피로에 마음을 두면, 그 순간 나는 이미 시 속의 인물도 아니고 화폭 속의 인물도 아니다.
_나쓰메 소세키 <풀베개>
<차 닦는 남자>
경비 아저씨가 빗질을 하는 것 같은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한 중년의 사내가 트럭 유리창을 닦고 있다. 사내는 흰 거적으로 푸른 트럭 유리창을 힘주어 닦고 있다. 와이퍼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번 움직이고 사내는 등을 돌린 채 와이퍼 위아래를 닦고 옆 창문도 닦는다. 등을 돌리기 전까진 사내의 얼굴에 인상이 가득했는데, 창을 닦으려 몸을 돌리자 그의 표정이 사라지고 한 폭의 그림만 남는다. 인상이 사라지니 그보다도 평화로울 수는 없다. 새들은 이따금 울고 수풀은 어제보다 한층 더 우거지고, 사내는 트럭 창문을 닦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