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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탄 리 Jun 08. 2024

구름을 담는 남자

일본의 제비꽃은 잠을 자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기이한 모습인 듯'이라고 형용한 서양인의 글은 영 적합하지가 않던. 이렇게 생각한 순간 나의 발걸음이 멈췄다. 발걸음이 멈추면 싫증이 날 때까지 거기에 머문다. 머물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사람이다. 도쿄에서 그랬다가는 바로 전차에 치여 죽는다. 전차가 죽이지 않으면 순사가 내쫓는다. 도회는 태평한 백성을 거지로 착각하고, 소매치기의 두목인 탐정에게 높은 봉급을 지불하는 곳이다.
_나쓰메 소세키 <풀베개>


“야, 쟤 좀 봐. 맨날 허공만 쳐다봐. 허공에 뭐가 있다고 그래.”
 친구 놈 중 하나가 말했다. 나는 그의 뒤에 무심코 서서 그가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작은 화첩에 뭔가를 새겨 넣고 있었다. 나는 거의 그의 등 뒤에까지 갔다. 그의 어깨너머로 그림이 보였다. <끝없이 푸른 하늘을, 수만 가지 모습으로 변화해 흘러가는 구름 떼>가 보였다. 구름과 구름 사이에선 장엄한 빛이 떨어지고, 어떤 구름은 희고 어떤 구름은 회색이며, 어떤 구름은 흰색과 회색이 다 들어 있기도 했다. 회색 중에도 층이 있어서, 그 진하기가 다른 것들도 있었다. 구름의 모양은 다 제각각이었다. 어떤 구름은 사슴을, 어떤 구름은 고래를 닮았고, 어떤 구름은 비행선 같은 것도 있었다. 난 다시 허공을 보았다. 하지만 허공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급히 친구들을 따라가야 했으므로, 적어도 마음속엔 그런 마음으로 가득했으므로, 그의 그림을 보면서도, 실재론 보는 게 아니었다. 친구들이 언덕 위에서 재촉하고 있었고, 친구들의 목소리에 이어 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를 내버려 두고 그리로 뛰어갔다.


 우리는 시내로 갔다. 시내에는 빌딩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한껏 멋을 내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불이 꺼진 가로등들은 아직 쓸모 이유가 없어 보였다. 어떤 엄마들은 아이가 뒤를 보며 걷다가 그 가로등에 부딪힐까 봐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하온아! 하온아!”
 하지만 아이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아이의 엄마가 팔을 번쩍 든 사이 아이는 가로등을 지나쳤다. 하지만 다른 것에 걸려 넘어졌다. 나는 그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아이가 넘어져 앉은 곳은 폭신했고, 폭신한 만큼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다. 달려온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엉덩이에 묻은 무언가를 털어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길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공이었다. 그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친구들을 뿌리치고 그리로 가 보았다. 화공의 그림 속에는 <가로등 옆의 잎 무성한 아름드리나무와 엉덩이에 흙이 묻은 풀밭에 누운 아이>가 있었다. 나는 이걸 왜 보지 못했을까? 분명 내 시선은 아이를 향하고 있었음에도. 풀은 더없이 푸른 녹색이었다. 빛이 나무 아래로 내려와 넘어진 아이를 비춰주고 있었다. 나는 볼 수 없었다.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앞전의 상황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그 생각들은 시간이 희석해 갔다. 나는 친구들과 이 빌딩으로 들어가 게임을 하고, 저 빌딩으로 들어가 영화를 보고, 또 다른 빌딩으로 들어가 당구를 쳤다.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다. 우리가 당구를 다 쳤을 때, 시간은 벌써 6시를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굶주렸다. 주린 배를 감싸 안고 빌딩 밖으로 나와서 길을 걸었다. 건널목을 건너 있는 음식점에 가기로 하고 길을 건너려 했다. 그런데 그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어깨에는 작은 가방을 메고, 손에는 화첩과 그림도구를 들고서. 왜 저런 걸 가방에 넣지 않고 다니나 싶었다. 이윽고 파란불이 들어왔고, 사람들은 일제히 신호를 건넜다. 나는 그와 같은 보폭으로 걸었으므로 그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횡단보도 한 복판에 멈춰 서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내 발은 계속 걷고 있었으므로, 내 몸은 이미 횡단보도의 3분의 1만을 남겨놓은 상태였다. 그는 횡단보도 한 복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곧 신호가 바뀌었고 차들이 미친 듯이 경적을 울려댔다. 기다리다 못한 차들은 그를 스쳐 지나갔다. 난 차들이 오는 데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그림첩을 뺏어 들었다. 나는 보았다, <더없이 넓은 하늘에 주홍빛 노을이 깔려 온 세상이 노을의 합창 속에 빠져들고 있는 모습>을. 나는 그걸 보고 머리가 멍해졌다. 갑자기, 잊고 있던 중요한 것을 놓고 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허공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멈춰서 있어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끝없이 넓은 푸른 하늘을 수만 가지 모습으로 변화해 흘러가는 구름이 있다. 길가의 잎 무성한 나무와 나무 사이에 핀 색색의 꽃들이 있다. 수풀 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고양이가 있다. 목줄에 끌려가면서도 킁킁거리며 온갖 곳의 냄새를 다 맡는 개가 있다. 유장한 강물이 물굽이를 일으키며 흘러가는 결이 있다. 파도가 쓸어갔다 쓸어오는 흰 포말 속의 조개류가 있다. 빌딩 사이 산 아래로 내려가며 점점 사멸해 가는 노을빛이 있다. 만약 차도 위에 서서 멍하니 이런 풍경을 잠시라도 쳐다본다면 차에 치여 죽고 말 것이다. 또 다른 세세한 풍경들이 있다. 폐지를 줍는 노인, 반찬 좌판에서 반찬을 고르는 아주머니들, 우산 속의 두 남녀, 정자 아래서 볕을 피하는 할머니, 기차 안에서 햇살을 받으며 노래를 듣는 청년. 이런 풍경들은 - 이런 풍경들 외에도 수만 가지의 비인정한 풍경들이 있을 것이다. - 멈춰서 있어야만 볼 수 있다. 바쁘게 걷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서 세계의 결을, 나무의 결처럼 울퉁불퉁하고 거칠지만 분명하고 저마다 다른, 느껴보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길 한복판에서 구름을 보려 고개를 드는 소년은 사람들의 파도에 휩쓸려 다른 골목으로 옮겨지고 말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산 중턱에 앉아 산복동네의 풍경을 스케치하는 청년은 가족 중 누군가의 지탄을 받고 말 것이다. 장년이 그런다면 심각하게 욕을 들을 것이다. 이처럼 이 사회는 여유를 부리려는 사람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피크닉을 가서도, 아이들 챙기기에 여념 없는 주부들, 그들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제 시간 하나 챙기지 못하고 아이들을 더 잘 키우려고 애쓸 것이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이다. 짐 챙기랴, 운전하랴, 소품 설치 하랴 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쉬는 날에도 이런데 주중에는 오죽할까. 하지만 멈춰서 있을 때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분명히 있다. 그런 것들은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고, 세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주며, 인간이 사물에 사소한 정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이는 분명, 경쟁과 바쁨과는 대비되는 말이다. 시인과 화가들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품을 수 있는 마음이다. 모든 것이 경쟁화 되는 이 시대에,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인의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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