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제비꽃은 잠을 자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기이한 모습인 듯'이라고 형용한 서양인의 글은 영 적합하지가 않던. 이렇게 생각한 순간 나의 발걸음이 멈췄다. 발걸음이 멈추면 싫증이 날 때까지 거기에 머문다. 머물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사람이다. 도쿄에서 그랬다가는 바로 전차에 치여 죽는다. 전차가 죽이지 않으면 순사가 내쫓는다. 도회는 태평한 백성을 거지로 착각하고, 소매치기의 두목인 탐정에게 높은 봉급을 지불하는 곳이다.
_나쓰메 소세키 <풀베개>
멈춰서 있어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끝없이 넓은 푸른 하늘을 수만 가지 모습으로 변화해 흘러가는 구름이 있다. 길가의 잎 무성한 나무와 나무 사이에 핀 색색의 꽃들이 있다. 수풀 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고양이가 있다. 목줄에 끌려가면서도 킁킁거리며 온갖 곳의 냄새를 다 맡는 개가 있다. 유장한 강물이 물굽이를 일으키며 흘러가는 결이 있다. 파도가 쓸어갔다 쓸어오는 흰 포말 속의 조개류가 있다. 빌딩 사이 산 아래로 내려가며 점점 사멸해 가는 노을빛이 있다. 만약 차도 위에 서서 멍하니 이런 풍경을 잠시라도 쳐다본다면 차에 치여 죽고 말 것이다. 또 다른 세세한 풍경들이 있다. 폐지를 줍는 노인, 반찬 좌판에서 반찬을 고르는 아주머니들, 우산 속의 두 남녀, 정자 아래서 볕을 피하는 할머니, 기차 안에서 햇살을 받으며 노래를 듣는 청년. 이런 풍경들은 - 이런 풍경들 외에도 수만 가지의 비인정한 풍경들이 있을 것이다. - 멈춰서 있어야만 볼 수 있다. 바쁘게 걷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서 세계의 결을, 나무의 결처럼 울퉁불퉁하고 거칠지만 분명하고 저마다 다른, 느껴보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길 한복판에서 구름을 보려 고개를 드는 소년은 사람들의 파도에 휩쓸려 다른 골목으로 옮겨지고 말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산 중턱에 앉아 산복동네의 풍경을 스케치하는 청년은 가족 중 누군가의 지탄을 받고 말 것이다. 장년이 그런다면 심각하게 욕을 들을 것이다. 이처럼 이 사회는 여유를 부리려는 사람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피크닉을 가서도, 아이들 챙기기에 여념 없는 주부들, 그들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제 시간 하나 챙기지 못하고 아이들을 더 잘 키우려고 애쓸 것이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이다. 짐 챙기랴, 운전하랴, 소품 설치 하랴 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쉬는 날에도 이런데 주중에는 오죽할까. 하지만 멈춰서 있을 때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분명히 있다. 그런 것들은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고, 세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주며, 인간이 사물에 사소한 정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이는 분명, 경쟁과 바쁨과는 대비되는 말이다. 시인과 화가들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품을 수 있는 마음이다. 모든 것이 경쟁화 되는 이 시대에,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인의 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