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정 세계는 곳곳에서 포착되지 않는다. 풍물과 사람의 조화가 생겨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인정세계의 시시비비를 벗어나 자연과 풍물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그럴 때 그 관찰되는 모습은 회화 같고 시 같다. 난 시를 잘 쓰지도 잘 쓸 자신도 없으므로 이런 인상을 남긴다. 이런 인상은 단지 인상으로만 남지 않는다. 보는 이에게 약간의 즐거움과 평온함을 주는 그런 인상이다.
우리 할머니
볕이 직선에 가깝게 내리고 나는 고개를 그늘 쪽으로 던지고 있다. 어느새 할머니는 아파트 정자 벚나무 아래 앉아 있고 나는 그쪽을 쳐다본다. 벚나무는 빛에 물들어 연녹빛으로 빛나고 나뭇잎 사이의 어둠은 한층 짙어진다. 바람이 살살 땅을 쓸며 불어오는데, 할머니가 쓴 벙거지 모자는 바람에 흔들릴 생각을 않는다. 할머니는 따사론 볕에 인상이 구겨진 채 내 쪽을 바라본다. 몸에 열이 없어 연분홍 조끼와 베이지색 카디건을 걸치고서.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지, 내 주변의 식물을 바라보는지 모자챙에 가려 알 수 없다. 나는 할머니를 한동안 쳐다본다.
기차
역방향인 열차 안 창가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다. Nas의 Doo rags를 듣고 있다.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지고 있다. 해는 내 팔과 배의 일부에 비둘기새끼처럼 내려앉는다. 건설 중인 아파트 단지, 뜯겨나간 철조망, 전봇대들, 빠르게 내 앞을 지나간다. 열차는 조금씩 덜컹거리며 굴러간다. 옆 좌석엔 아무도 없고 음악은 제 박자를 유지하며 열차의 박자와 섞여들지 않는다. 기분이 좋다. 햇살이 좋은 것인지, 음악이 좋은 것인지, 책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순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