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먹빛의 아득한 세계를, 몇 줄기 은화살이 비스듬히 떨어지는 속을, 부지런히 젖으며 가는 나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시도되고, 하이쿠로 읊을 수도 있으리라. 사실 그대로의 나를 완전히 잊고 온전히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나는 그림 속의 인물로서 자연의 풍물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된다. 단 내리는 비의 괴로움과 내딛는 발의 피로에 마음을 두면, 그 순간 나는 이미 시 속의 인물도 아니고 화폭 속의 인물도 아니다.
_나쓰메 소세키 <풀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