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흔들린다. 쇠처럼 달아오른 6월의 저녁 해가 산등성이 근처에서 등목운동을 한다. 관목 숲이며 풀숲 집이며 공장지붕, 교회첨탑이며 아파트의 단면 같은 것들은 이제 오후 4시 해의 열기에서 해방되었다. 거무스름하고 푸르스름한 고요한 그늘이 그들을 실크이불처럼 감싸고 있다. 무수히 많은 전신주의 선들이 인간들의 관계처럼 모였다가 흩어진다. 열차 안의 손님들의 머리는 대부분 의자에 기댄 눈이 감긴 채 창밖을 향하고 있다.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객석은 3분의 2 이상이 이미 비어 있다. 서울에 다녀오는 길이다.
대도시의 실향민인 나는 서울 여행 동안 풀이 있는 곳에만 시선을 던졌다. 가로수의 잎들, 아파트 울타리 담장에 우거진 풀들, 어쩌다가 보이는 근린공원들, 강변의 초록색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있으면 사람이 눈에 들 법도 한데 나의 1차적인 관심은 풀에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꽃이나 풀의 이름을 외우고, 모양만 봐도 어떠한 종인지 아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 정도의 열정은 내게 없다. 하지만 나는 꽃이나 풀을 좋아하고, 구름을 좋아하고, 하늘에 겉옷을 던져 놓고 헤엄을 치고 싶다. ‘서울이야말로 인간이 자연을 인공적으로 조성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곳곳에 사람의 손길을 탄 작은 숲들이, 집 단위로 형성되어 있기도 했기에. 도시화의 심각함을 느낀 사람들이 그제야, 묘목을 심고 정원을 꾸미는 그런 느낌이었다. 서울의 풍경은 묘사할 수도 없고 묘사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니라. 여하튼, 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온갖 차들이 온갖 소음을 일으키면서도, 사람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초대형 빌딩 아래로 발을 열심히 굴리면서도, 코에는 가로수의 밤꽃나무 냄새가 닿길 원하는 곳. 한강의 습기 머금은 바람이 건물들 사이로 흘러오길 염원하는 곳. 근교까지 2000만 인구가 일개미처럼 유동하는 곳.
역시 서울이라 하면, 유적지를 구경하거나, 공연, 전시를 본다거나 하는 문화생활을 향유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그중 어느 혜택도 누리지 못했다. 일정상, 그리고 형편상 도저히 무리였다. 대신 찜질방에서, <풀베개>를 읽고, 지하철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봄눈>을 조금 읽었다. 두 일본인 거장의 글을 읽으며, 나는 서울에 비인정한 풍경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서울이야 말로, 인정한 요소들이 스마트폰 부품처럼 정밀하게 모여 있는 곳이니 말이다. 도심에는 모르겠으나, 비인정을 불러일으킬법한 풍경이 외곽에는 있었다. 꼭 외곽에서 볼 법한 풍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점 옆이었고, 나는 여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요일 오전이었다. 편의점 옆으로 그림자가 들고 있었다. 기다란 허리 없는 벤치 하나가 그림자가 드는 거기에 있었다. 한 할머니 한 분이 양손을 허리 없는 벤치 뒤춤을 잡고 앉아 있었다. 옆에는 텀블러와 가방을 두고서. 뽀글한 머리에는 선캡을 쓰고 선분홍 티셔츠와 남색 슬랙스를 입은 채 그녀는, 반대편 풀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를 구경하는 듯이, 혹은 기다리는 듯이. 풀길 위로는 나무들이 아치를 그리며 노란 볕을 쐬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고요하고 노인의 어떠한 시비스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나는 이 풍경을 좋은 그림이라 생각했다. 물론 노인의 속이야 알지 못하리라. 속으로는 증오와 복수심을 품고 있을 지라도.
반면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인정스런 광경도 목격했다. 역시 같은 편의점 안이었다. 나는 레인지 앞에서 핫바를 데워 먹고 있었다. 내 옆에는 아이 두 명과 보호자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있었다. 그들은 정말 인정스럽기 그지없었다. 한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서울대 출신이라며, 아버지 왈 ‘스카이가 아니면 대학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음을 여자에게 말했고, 같은 서울대 출신인 여자는 공감을 보이며 아이들이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했다. 그 아이의 큰 형이 과학고를 간다는 이야기, 자신도 서울대라는 이야기 등 가만히 듣지 못할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이야기를 열 살배기 아이들과 하고 있다는 것이 중점이었다. 그만한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당연하게 했고 또 집에서 들어왔다는 것이 소름이 돋는 점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도 이런 부모들이 있다니. 아직도 대한민국 교육은 이 모양이라니.
어쨌든 나는 서울을 잘 다녀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일일이 메모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지금은 기차 안에서 이 글을 적고 있다. 기차는 밀양을 지나 낙동강이 흐르는 쪽으로 달리고 있다. 해의 잔광에, 유장한 강물이 어두워지는 하늘 속에서 아련하게 빛이 난다. 산은 옅은 안개와 먼지에 둘러싸인 채 강물 주변으로 누워 있다. 물놀이를 하다가 지친 소년들처럼. 저런 곳에서야 말로 비인정한 풍경들이 구름 위의 참새처럼 솟아오르리라. 한편, 내가 향하고 있는 부산에서도 비인정한 풍경을 찾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