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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시작>에 대한 짧은 소회

by 커피탄 리

푸른 겨울. 쌓인 눈 위로, 산 까치가 나뭇가지 부러뜨리는 소리. 날카로운 가지들 아래를 서성이는 한 나그네가 있다. 나그네는 서른이 약간 덜 되어 보이는 얼굴. 그는 하늘을 바라본다. 얼음장 같은, 불을 붙여도 녹지 않을 것 같은 하늘을. 19살 겨울,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만나게 된 것은 운명이었다. 나는 뭔가에 이끌리듯이, 그것에 다가가게 되었다. 날마다 따라 부르며 나의 노래가 되게끔 했다. 물이 얼어붙은 작은 강가에서.
나이가 쌓이면서 그 멜로디들은 희미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겨울이 오면, 이상하게 몸이 움직여 거리를 배회했다. 눈이 오지 않는 도시, 내가 아플 때는 소주병을 들거나, 담배를 피웠다. 아프지 않을 때에는 공책과 펜을 들었다. 나는 어딘가로 그저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마음 붙이고 살던 동네를 떠나던 5살 때처럼. 2, 3년에 한 번씩 살던 곳을 떠난 것처럼. 특히 오래 잡았던 그 사람의 손을 놓았을 때, 떠돌이 병은 더 심해졌다.
나는 눈만 뜨면 시내로 나갔다. 매일 가는 카페로 가서 커피 한 잔을 들이켜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놓고 사람들 사이를 헤쳐 나갔다. 마치 바윗덩어리 천지인 연못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된 듯이. 또 소설가 구보처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내심 기대하면서도 불안해했다. 어딘지 모르게.
크리스마스에는 온 시내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세상이 화려한 불빛으로 반짝거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인공인 예수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들은 캐럴송의 분위기와 가족들, 친구들 간의 친목에 취했다. 그리고 산타를 사랑했다. 나도 딱히 아기 예수를 기억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는 나그네의 친구이기도 했다.
또 아무도 내게 인사를 건네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한참을 시내를 떠돌다가, 나는 음습한 시장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이 없는, 가게들이 문을 닫은 시장 골목 속으로.
곧 누군가 쉿 하듯이 겨울이 끝났다. 하지만 벚꽃, 무더위, 낙엽의 때가 순식간에 가고, 다시 겨울의 때가 찾아왔다. 푸른 겨울의 때가. 학교도 끝마치고 당장 해야 할 것이 없었다. 다시 펜과 공책을 가지고 거리를 떠돌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내가 조금은 건강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 밤, 베개에 누워 눈을 감으면 건반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나를 나무들이 푸른 그림자를 던지는 눈 덮인 숲으로 나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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