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앞 낙엽 깔린 대로에서, 낙엽을 툭툭 밟으며 생각에 잠긴다. 지금보다 조금 어렸을 때만 해도, 같이 별을 보러 산에 올라가거나, 같이 클래식을 들으며 음악 이야기를 하던 내 친구들. 그때의 인연이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는지 새삼스레 떠올린다. 그랬던 그들이 지금은 직장인이 되었다. 가을을 탄다거나, 바다를 말없이 쳐다본다거나 하던 버릇은 그들에게서 다 사라졌다. 그들은 현실적이고 사무적이며 시간을 엄수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직장인으로서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 나는 안다. 반면 나는, 스무 살 무렵부터 시를 쓰던 사람으로서 현실을 적잖이 도외시하며 살아왔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인간관계의 속 따가운 즐거움을 느끼며 20대를 보냈다. 혼자 낙엽을 밟고 논다거나, 길을 가다가도 언덕에 앉아서 지는 노을을 보거나 했다. 나는 이제 함께 발을 담그던 바닷가에 혼자 남아 있다.
그런데 20대 후반이 되면서 내게도 생계를 책임져야 할 때가 다가왔다. 나는 각종 걱정에 휩싸이며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회에 소속되어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친구들을 보며 혼란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랬다. 내가 맞는 건지, 네가 맞는 건지. 내가 시를 쓰는 것, 또 이 나이에도 순수한 동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 궁금했다. 그게 아니라면, 친구들이 동심을 잃고서 점점 세상 속 깊이 들어가는 것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크게 느꼈다.
이윽고 나는 학교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걱정에서 벗어나 실제로 생계를 책임질 방편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남에겐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내 형편들이 날 옥죄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이, 내 눈에는 너무 크고 위대하게 보였다. 나는 그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글 쓰는 일 빼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마음으로 짓밟았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나,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계속 글을 적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비틀거리면서.
시 공모전에 계속해서 떨어지면서, 시를 쓰는 힘도 다소 빠졌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번 아웃 상태가 지속되었다. 사실 그 현상은 종종 겪었던 현상이다. 그러던 와중에 한 수업을 들었다. 나는 글의 개요 짜는 법을 배워, 글쓰기에 적용하려고 그 수업을 선택했다. 그 수업의 교수님은 한 시인 선생님이셨다. 나는 그분께 내 시도 보여 드렸고, 수업 중 배운 방법을 통해 적은 수필도 보여 드렸다. 그분은 내게, 나의 시보다는 수필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순간 내게 시적 재능이 없음을 직감했다. 몇 년간 알고는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으려 했음을 나는 안다. 나는 수필에 대한 칭찬에 힘입어 계속 수필을 써나갔다. 그런데 완성된 수필을 기대하는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시적인 수필이었다. 그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듯한 시의 묘사들이, 노래의 음들처럼 서로 호응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내 장점임을 깨닫고 좋아했다. 나에 대한 부정적 생각도 다소 수그러들었다.
수필을 쓰면서,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아갔다. 시를 적을 때, 나를 힘들게 했던 형식에 대한 부분이 해소되었다. 그러는 사이, 캠퍼스 앞을 흐르는 강물 주변은 붉고 노랗게 물들었다. 그 나무들 아래를 즐겁게 걸어 다녔다. 나는 내 이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윽고 강가를 아름답게 수놓던 붉고 노란 나뭇잎들이, 자줏빛과 갈색의 낙엽이 되어 떨어졌다. 길가에 수북이 쌓인 잎들을 밟으며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일이나 직장에 대한 걱정은 하고 있지 않았음을. 나를 스스로 장미 가시로 찔러대지 않았음을. 나는 나를 어쩔 수 없는 나라고 생각했다. 또 내게 맞는 일,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낙엽이 깔린 대로를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 나간다.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음을 확신한다. 친구들의 길만이 정답이 아닌 것도 알고 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글 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특수 교육실무원 면접 준비를 할 것이다. 맑은 하늘에, 두 거대한 구름이 서로의 꼬리를 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