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우상숭배에 관하여 for 크리스천

by 커피탄 리

많은 현대인들은, 크리스천들은, 더는 이 세계에 자신이 숭배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우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철저한 오판이다. 인간은 모두 마음에 우상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삶이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큰 구덩이가 있는데, 어떤 혼합물을 들이부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매일 같이 술을 부어도, 매일 같이 도박장에 나가도, 매일 같이 여자와 쾌락을 누려도, 허기는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속 구덩이는 점점 깊어지고 넓어질 뿐이다. 인간이 왜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갈망하는지 이유를 아는가? 그러면서도 항상 불안해하는 이유를 아는가? 인간은 '모든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붉은 연못에서.
위대한 지성 파스칼은 말했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한다. 이것이 모든 인간 행동의 동기다. 심지어 목매어 죽는 사람의 동기도 마찬가지다."
어거스틴은 말했다. 그의 저서 고백록 첫머리에서.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쉬기 전까지 늘 불안합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고 했다.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할 마음이 그분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불안과 불만족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불쾌감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반문해 본다.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것이든, 자신의 마음을 채우려 했을 때 과연 온전히 채워졌는지를.
믿지 않는 자들은 그럴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믿는 자들의 형편은 어떤가. 우리는 머리로는 위의 지식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믿지 않는 자들과 똑같이 공허하다. 참된 안식과 만족을 주신다는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먼저 언제나 문 밖에 서서 우리 문을 두드리시는,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고 찾을 일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날마다 그러하다. 나는 대부분의 크리스천이 그렇다고 생각하듯이 '큰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 하지만 내면에 우리의 결핍과 상처를 통해 뭔가가 들어오면, 그것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기 마련이다. 나를 예로, 나의 우상을 한 가지만 예로 들어 보겠다. 나는 비록 도박에 중독되어 있지 않지만, 애정과 인정이라는 우상에 중독되어 있지 않은가? 당신의 경우에는 어떤 우상에 중독되어 있는가? 이것이 없으면 불안하다거나, 이것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슬픈 것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작은 것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한다. 그렇기에 끝없이 불안하다.
튤리안 차비진은 그의 저서 <Jesus All>에서,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인을 타락시키는-우상에 물들게 하는-가장 손쉬운 방법은, '복음 더하기 무언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 무언가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와 새로운 심리학, 기독교와 새로운 채식주의, 기독교와 신앙요법, 기독교와 스타일, 기독교와 긍정의 힘, 기독교와 자기 계발, 기독교와 환경 보호주의, 홈스쿨링, 사회정의. 첨가물의 수는 무한정으로 늘어날 수 있다.
기독교와 인기, 기독교와 성공, 기독교와 권력, 기독교와 개혁...
앞서 나열한 이 모든 첨가물들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나,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배우자, 자녀, 일, 성공, 외모, 평판 등. 이 모든 첨가물들을 '궁극적인 대상으로 삼을 때' 문제는 발생한다. 과연 이 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튤리안 차비진의 저서를 계속해서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당신이 지금 겪는 실망이나, 낙심, 슬픔은 당신의 마음이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지 보여주는 창문과도 같다.
예수님은 포로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오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속박에서 풀어 주시려고 오셨다.
나는 말한다. 내 가슴이 오직 예수로 찼을 때,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정말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분은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계신다.
복음은 무엇보다도 크고 광대하다. 복음은 목사들이 설교단에서 외치는 '일상적이고 귀에 익은 낱말'이 아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과 혼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 복음은 살아서 꿈틀거리며 생동하는 실체이다. 공기와 같이, 바람과 같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실존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적으로 복음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참된 평안과 행복, 기쁨과 자유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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