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짜의 글을 적기 전에 먼저 기록해야 할 것이 있다. 내 내면에 얼마간의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성 A에 대한 기도를 처음 시작할 때, 나는 몹시 서툴렀었다. 신앙적인 부분에서나 정서적인 부분에서나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조그마한 행동에도 감정이 쉽게 변했으며, 하나님보다는 온통 마음을 A에게 빼앗겨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주님은 나의 약한 점으로 내게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게 하셨다. 그렇게라도 해서 나를 회복시키길 원하셨던 모양이다. 어쩜 그리 날 잘 아시는지. 나는 기도를 하며 점점 달라졌다.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는 동안 나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세 달이 넘어가자 내 안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음은 부정하지 못한다. 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이 A를 내게 주실 거라는 그런 종류의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시고 도우시고 계신다는 믿음이었다. 이 믿음은 날이 갈수록 점점 강해졌다. 이 믿음보다 세상에서 귀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우상숭배라는 것을 알게 하셨다. 또한 내가 음란의 죄에 깊게 빠져 있음을 깨우치게 하셨다. 하나님은 내가 무언가를 얻기 전에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길 원하신다는 것을, 먼저 내가 정결한 그릇이 되기 원하신다는 것을 깊게 깨달아 알았다. 말씀의 빛이 내 혼탁한 어둠에 비추자 놀란 어둠은 사그라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예수 복음이 아니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A를 얻어도, 암만 A를 갈구해도 내게 오는 건 안정과 행복이 아니고 불안과 근심이었기에. 주님은 아무래도 내가 A에 대한 모든 것은 주님께 맡기길 원하시나 보다. 아무래도 내가 근심과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 늘 그렇게 말씀해 오셨듯이 – 포로 된 모든 것에서, 속박된 모든 것에서 자유하길 원하시나 보다. 그게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어떤 소중한 대상이 있더라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 것. 내 안의 공허함을 채워줄 대상으로 한낱 인간을 선택하지 말 것을, 말씀하시나 보다. A가 한낱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한낱 인간이다. 한낱 인간에게 안정과 자유함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자신에게 내가 다가와 안정과 자유함을 느끼길 원하지 않으셨을까?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제 기도시간, 나는 A에 대해 구했다. 이제는 더는 뒤로 미룰 수가 없었다. 이때까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한 기도는 그리 많이 하지 않았는데, 어제는 그렇게 좀 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인지, 하나님이 이런 기도까지도 들어주시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기도를 해도 된다면, 계속 기도를 깊게 방언으로 인도해 달라고 했다. 그게 아니라면, 멈춰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놀랍게도 깊게 인도해 주셨다. 그리고 놀라운 평안을 기도하는 내내 허락하셨다. 모든 염려와 걱정을 내려놓으라고, 반드시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그 소리가, 그 생각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맞는지. 내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 즉, 그 아이 없어도 살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그래도, 분명 마음으로 깊게 좋아하고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괜찮겠다 싶은 마음이, 아예 이 모든 여정을 종료하라는 사인이 될 것 같아서 두렵다. 내가 두려워하면, 분명 늘 그래오셨듯이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겠지. 어쩌면 내가 A 없이도 살 수 있도록 만드시고, 아예 포기하게 하실 지도 모른다. 내가 하나님을 잘 몰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