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버이날,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 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 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 <호랑이 발자국>(창비, 2003)
⋆손택수(1970~). 첫 시집인 <호랑이 발자국>으로 2004년 신동엽창작상 수상함.
현재 실천문학 대표로 활동 중.
== 시샘의 시 읽기와 감상 ==
이야기가 담긴 서정시다. 낭송하기에 좋은 시다. 상황을 설정한 후에 감정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50~60세대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소재다. 목욕탕에 가는 것이 행사라도 되는 것처럼 특별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어린 아이에게는 목욕탕도 훌륭한 놀이 공간이다. 마음껏 물장난을 칠 수 있고, 겉에 둘렀던 그 모든 것을 벗어놓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공간이다. 가족이 함께 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남자 아이는 이제 남탕에 가고 싶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함께 가 주지 않아서 엄마나 누이를 따라서 여탕에 가는 것이 무척 부끄럽고 싫다. 그 어릴 때 사소한 사건은 그대로 늙어버렸고, 시간이 흘렀어도 아들과 아버지는 서먹하고 불편하다. 아들은 자신과 함께 목욕을 해 주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사소한 서운함이 어른이 되어서도 감정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아들은 아버지가 구두쇠라서 목욕탕 가는 비용을 아끼려고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에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버지 비난한다.
그러다 아버지가 사고로 쓰러지고 난 뒤에 병원 욕실에서 아버지는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리게 됐다. 그리고 그제서야 아들은 아버지가 왜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지 않았던 것인지를 알게 된다. 아버지의 등은 시커멓게 지게자국이 나 있었던 것이다. 시커멓게 난 지게 자국을 들키지 않으려고 아버지는 아들과 목욕탕에 함께 가지 않았던 것인데, 아들은 그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시커멓게 난 상처 자국이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는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고생과 고난으로 인해 생겼던 상처와 흉들을 자식에게도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감추고 싶은 상처였던 것이다.
목욕탕이라는 곳의 의미가 새롭다. 이 시에서 목욕탕이라는 공간은 어린 화자에게는 놀이의 공간이고 가족과 유대하는 공간일 것이다. 그러나 어른인 아버지에게 목욕탕은 부끄러움을 노출하게 되는 공간이다.
▶주제 -
1. 함께 목욕탕에 가 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뒤늦게 그 이유를 알고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아들의 심정
2. 고된 노동으로 인해 상처가 생긴 아버지가 가족에게 자신의 상처를 숨기느라 오해를 받게 되었으나 나중에야 그 오해가 풀리게 되는 아버지.
3. 고된 노동과 고통 속에서 묵묵히 가족을 지켜내느라 고생한 아버지에 대한 애처로움
== 시샘의 시낭송 ==
· 어조 - 독백체. 낭독하듯이.
· 반복되는 운율은 드러나지 않음. '~다' 정도임.
· 시의 감정 흐름
전반부 -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
후반부 -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애처로워 함.
· 시낭송하기에 좋은 장소 -
부모님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었다가, 부모님의 희생과 노고를 이해하는 내용이다. 부모님과 관련한 행사에서 낭송하기에 좋다.
· 도입 부분에서 '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이 주제가 담긴 시행이다. 현장에서 낭송할 때에는 도입 부분에서 좀 더 긴장감을 주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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