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넋 하나를 얻는다는/허준,백석

허준, 백석의 시

by 시샘 김양경

허준(許浚)/백석


그 맑고 거룩한 눈물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여

그 따사하고 살뜰한 볕살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여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에서 당신은

이 세상에 나들이를 온 것이다

쓸쓸한 나들이를 다니러 온 것이다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 사람이여

당신이 그 긴 허리를 굽히고 뒷짐을 지고 지치운 다리로

싸움과 흥정으로 왁자지껄하는 거리를 지날 때든가

추운 겨울밤 병들어 누운 가난한 동무의 머리맡에 앉아

말없이 무릎 위 어린 고양이의 등만 쓰다듬는 때든가

당신의 그 고요한 가슴 안에 온순한 눈가에

당신네 나라의 맑은 하늘이 떠오를 것이고

당신의 그 푸른 이마에 삐여진 어깻죽지에

당신네 나라의 따사한 바람결이 스치고 갈 것이다


높은 산도 높은 꼭대기에 있는 듯한

아니면 깊은 물도 깊은 밑바닥에 있는 듯한 당신네 나라의

하늘은 얼마나 맑고 높을 것인가

바람은 얼마나 따사하고 향기로울 것인가

그리고 이 하늘 아래 바람결 속에 퍼진

그 풍속은 인정은 그리고 그 말은 얼마나 좋고 아름다울 것인가


다만 한 사람 목이 긴 시인은 안다

'도스토옙스키'며 '조이스'며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일등가는 소설도 쓰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어드근한 방 안에 굴어 게으르는 것을 좋아하는 그 풍속을

사랑하는 어린 것에게 엿 한 가락을 아끼고 위하는 아내에겐 해진 옷을 입히면서도

마음이 가난한 낯설은 사람에게 수백냥 돈을 거저 주는 그 인정을 그리고 또 그 말을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넋 하나를 얻는다는 크나큰 그 말을


그 멀은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에서

이 세상에 나들이를 온 사람이여

이 목이 긴 시인이 또 게사니처럼 떠곤다고

당신은 쓸쓸히 웃으며 바둑판을 당기는구려


- 시집 <사슴>에서, 초판본, 1936 -


=== 시샘의 시 읽기와 감상 ===

시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허준이라고 하면 조선 시대의 동의보감을 쓴 의사 허준이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 허준이라는 인물은 백석의 친구다. 평북 용천 출생의 소설가인데 백석과는 1934년에 입사한 조선일보에서 만난 사이이다.

둘은 형제처럼 친하게 지낸 사이였고, 백석이 좋아하던 여인 박경련을 만나기 위해 통영에 갔을 때에도 허준이 동행해 주었다고 한다. 백석은 이 절친한 친구 허준을 통해서 백석이 늘 바라던 세계를 그리고 있다. 허준을 두고, "맑고 거룩한 눈물의 나라", "따사하고 살뜰한 볕살의 나라"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 나라는 백석이 추구하는 아름답고 평화롭고 순결한 나라를 의미한다.



*소설가 허준(許俊, 1910년생)은

평안북도 용천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한국 문단에서 활동한 작가. 일본 호세이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1935년 『조선일보』에 시 「모체(母體)」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이후 1936년 『조광』에 단편소설 「탁류(濁流)」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


새여시랑.jpg 새벽 6시에 시를 낭송해요 - 새여시랑

백 석(1912~1996)

본명은 백기행. 1912년에 평안북도 정주. 동경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 1934년에 조선일보에 입사했으며, 1935년 <정주성> 등단. 1936년 시집 <사슴>을 출간.





백석-001.jpg 백석 시낭송대회 25년 10월 26일 일요일 성북아트홀



◆ 특성

① 예찬적 태도

② 평안도 사투리를 통해 토속적인 분위기를 형상화

③ 동일한 통사구조를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하고 주제 강화.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허준 : 소설가로 백석의 절친한 친구임.

* 눈물의 나라, 볕살의 나라 : 대구법.

* 당신 : 허준. 예찬의 대상

* 이 세상 : 허준이 나들이를 온 곳

* 싸움과 흥정으로 왁자지껄하는 거리 :'이 세상'의 이미지

* 하늘은 얼마나 맑고 높을 것인가 / 바람은 얼마나 따사하고 향기로울 것인가.:대구법. '당신네 나라'의 아름다움을 강조함.

* 목이 긴 시인 → 백석 자신

* 조이쓰 → 제임스 조이스.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시인임.

* 게사니 → '거위'의 방언


◆ 주제 : 맑고 거룩한 눈물의 나라와 따사하고 살뜰한 볕살의 나라처럼 순결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함.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맑은 눈물과 따사한 볕살의 나라에서 온 허준

◆ 2연 : 이 세상에 나들이 하러 온 허준

◆ 3연 : 싸움과 흥정으로 왁자질껄한 세상에서도 고요하고 맑은 가슴을 안고 사는 허준

◆ 4연 : 평화로운 세계의 풍속과 인정과 말

◆ 5연 : 재능을 갖추고도 겸손하며 남에게 베풀 줄 아는 허준

◆ 6연 : 쓸쓸히 웃으며 바둑판을 당기는 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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