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정보학회 봄철 학술 대회 "애국가 작사가의 진실" 에 대한 논평
토론자 : 김양경
『애국가 작사자의 진실』(반재원 저)은 대한제국 시기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국가(國歌)인 「애국가」 가사 작사자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오랜 논쟁의 쟁점을 정리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점에서 주목된다. 이 논문은 애국가 가사에 대해 지금까지 제기되어온 다섯 가지 유력설 ‘민영환, 최병헌, 안창호, 김인식, 윤치호 작사설’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작사자 가능성도 제시한다.
저자는 최근 발견된 1903년의 <애국충성가>와 1904년의 <한문애국가>자료를 현행 애국가 가사의 원형(原型)으로 보고 있다. 이들을 쓴 무명 애국지사가 가사 원작자일 가능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은 국가 상징의 기원을 밝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기존 연구와 차별화되는 독창성을 갖는다. 본 논평에서는 해당 논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주제의 의의와 독창성, 자료와 해석의 타당성, 논리 전개의 일관성, 학문적 기여도, 한계 및 비판점을 중심으로 분석·평가하고자 한다.
주제의 의의 및 독창성
애국가 가사의 작사자를 밝히는 문제는 한국 근현대사와 문화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 주제다. 애국가는 국민적 정체성과 직결된 상징이지만, 가사 작사자는 오랫동안 “작자 미상”으로 남아 있어 역사적 궁금증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문은 이러한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연구 주제의 중요성이 크다. 특히 반재원은 기존의 다섯 설을 모두 검토함으로써, 단일 설이나 특정 인물에 치우치지 않고 논쟁 전반을 조망하였다. 더욱이 단순 정리에 머물지 않고, 1900년대 초 애국가 가사 원형 자료를 새롭게 주목함으로써 기존 연구와 차별화된 독창적 접근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유력 인물 중 한 사람이 작사했다”는 통설에서 벗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애국지사의 작품일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학계에 신선한 관점을 제공한다.
요컨대, 본 연구는 국가 상징의 기원 규명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새로운 사료와 가설로 도전하여, 연구주제의 의의와 독창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자료의 신뢰성과 해석의 타당성
이 논문의 저자는 다양한 1차 사료와 기존 문헌을 폭넓게 활용하여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먼저, 다섯 설 각각에 대해 공문서(예: 1902년 관보의 애국가 제정 기사), 신문 자료(독립신문, 신한민보 등), 인물 증언(후손들의 증언, 김인식의 일기, 윤치호의 친필 가사 등)을 면밀히 인용하여 사실 관계를 검증했다. 예를 들어, 민영환 설의 근거였던 관보 기사를 통해 당시 제정된 애국가 가사가 현행 가사와 전혀 달랐음을 밝혀 민영환 설의 한계를 지적하고, 윤치호 설의 근거로 자주 언급된 윤치호의 1945년 친필 가사와 1910년 신한민보 기사등을 제시하여 윤치호가 작사자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하였다. 이러한 자료 활용은 전반적으로 신뢰도가 높고 출처가 명확하며, 저자가 역사적 사료를 정확히 해독하고 비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논문의 핵심은 1903년 <애국충성가>와 1904년 <한문애국가>라는 새로운 1차 자료의 소개와 해석이다. 두 자료 모두 현행 애국가 가사와 내용·구조 면에서 거의 동일한 가사를 담고 있어, 저자는 이를 현행 가사의 원형으로 간주한다. 실제로 <한문애국가>에 한문으로 적힌 “東海水兮白頭山兮至流竭磨盡…萬有主宰保護我們使我國家萬歲” 등은 현재 가사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와 의미상 일치한다. 이러한 일치에 근거한 저자의 해석은 매우 설득력이 있으며, 윤치호가 1907년에 지었다는 가사보다 앞선 시기의 원자료로서 가치를 부여한 점은 타당해 보인다. 특히 저자가 사료 해석에 있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예컨대 윤치호가 편찬한 찬미가에서 애국가를 “저술”이 아닌 “역술”로 표기한 용어상의 모호함에 대해 기존 연구자들의 논지를 인용하고 스스로도 신중히 해석하는 등, 자료 해독에 있어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한다.
다만 몇 가지 해석상의 논쟁점은 존재한다. 지명(地名)에 대한 해석에서 저자는 애국가 가사의 ‘동해’, ‘백두산’, ‘남산’이 경상도 경주 지방을 가리킬 가능성을 제기하는데, 이는 해당 가사가 경주 출신 작사자의 망향(望鄕)시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가설이다. 근거로 경주 지역에 동해와 백두산, 남산이 모두 존재한다는 점과 가사에 등장하는 “청송죽(靑松竹)” 같은 표현이 서울 환경보다는 경주에 적합하다는 점을 들었다. 이러한 해석은 지명 연구자의 견해까지 참조한 것으로 신선하고 설득력은 있으나, 아직은 직접적 증거가 부족한 추론으로 남아 있다. 실제로 애국가 가사는 전 국민적인 상징으로 받아들여져 온 만큼, 가사의 지명을 특정 지역으로만 한정할 수 있을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논문 전반에서 활용된 자료들은 그 출처와 맥락이 분명하며, 저자의 사료 분석은 꼼꼼하고 논증과 잘 연결되어 있어 자료 활용의 신뢰성과 해석의 합리성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줄 수 있다.
논리 전개의 일관성
본 논문은 서론-본론-결론의 전형적인 구조속에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며 전개된다. 우선 서론에서 애국가 작사자 논쟁의 역사와 중요성을 언급하고, 왜 이 문제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지 제기함으로써 연구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서술한다. 본론에서는 다섯 가지 유력 가설을 순차적으로 검토하는데, 각 가설마다 제기된 근거와 반론을 짚어가며 체계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예컨대, 민영환 설의 경우 관보 기록과 가사 내용의 불일치를 지적하여 논리를 전개하고, 최병헌 설은 후손들의 증언을 소개한 뒤 결정적 증거 부재를 들어 한계점을 논증하는 식이다. 이러한 가설별 검토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각 설의 타당성과 한계를 명확히 이해하게 하며, 주장 간 연결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섯 가지 설을 모두 검토한 후, 저자는 이들 기존 가설의 미흡한 점을 보완할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설의 도입으로 논리를 진전시킨다. 1903~1904년의 원형 가사 자료를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앞서 언급된 윤치호·안창호 설 등의 시간적 빈틈을 메워주는 증거로서 이 자료들이 도입되며 논지 전개의 필연성이 잘 드러난다. 특히 “왜 애국가 작사자가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저자는 여러 인물의 공동 개작 또는 편집 가능성을 제시한다. 윤치호와 최병헌, 안창호 등이 초창기에 자신이 작사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던 이유를, 이들이 실은 기존 애국시(愛國詩)를 윤색하거나 편집한 데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론하는 대목은 논문의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 전개중 하나다. 이 설명을 통해, 오랫동안 학계와 대중이 품어온 “왜 당사자들이 침묵했을까”라는 의문에 합리적인 서사를 부여하고 있다.
논지 전개의 일관성 측면에서 특별히 돋보이는 점은, 저자가 상충되는 견해를 균형 있게 다루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윤치호 설에 대해서는 방대한 찬성 근거들을 열거하면서도, 그에 대한 반론과 제한점(예: ‘역술’ 용어의 모호함, 친일 행적에 따른 평가 절하)을 함께 언급한다. 또한 새로운 설을 제시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에 대한 잠재적 반박(예: 원형 가사 자료의 출처 불명확성이나 지역 해석의 문제점)을 일부 인정하고 넘어가는 등, 자기주장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논리의 흐름 안에서 설명하려 한 점이 엿보인다. 이러한 접근은 글의 설득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객관성을 부여하여, 독자가 논문의 전개를 신뢰하도록 만든다. 전반적으로 본 논문은 체계적인 구성과 단계적 논증으로 일관성 있게 전개되며, 새로운 가설을 도입하는 과정에서도 논리의 비약 없이 독자를 충분히 설득하고 있다.
학문적 기여도
『애국가 작사자의 진실』은 한국 근대사와 문학·음악사 연구에 여러 방면의 중요한 학술적 기여를 하고 있다.
첫째, 이 논문은 국가 상징에 대한 역사적 논쟁을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오랫동안 추정과 구전(口傳)에 의존하던 애국가 작사자 논쟁에 대해, 본 연구는 풍부한 사료 검증과 논리적 분석을 통해 논쟁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 특히 기존에 논의되던 다섯 인물에 대해 자료 중심의 재평가를 수행함으로써, 잘못 알려졌거나 과장된 주장들을 걸러내고 보다 정확한 역사상을 복원하는 데 기여하였다. 예를 들어 김인식 설이나 최병헌 설에 대한 검증은, 근거가 빈약한 전승(傳承)이나 후대의 주장들을 역사적 사실 검토를 통해 교정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는 한국 근대사 연구에서 사실과 설화의 교차 영역을 정리한 사례로 평가될 만하다.
둘째, 이 논문은 새로운 사료의 발굴과 조명을 통해 학계에 신지식을 제공하였다. 1903년과 1904년의 애국가 원형 가사 자료는 이전까지 부차적으로만 언급되었거나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이었는데, 저자는 이를 논쟁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학계의 관심을 새로운 방향으로 환기시켰다. 이러한 사료 활용은 단순히 작사자 후보의 범위를 확장한 것이 아니라, 애국가 가사의 창작 과정 및 전파 경로를 재구성할 단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학술적 의미를 갖는다. 가령, 독립협회가 주최한 애국시 공모전과 애국가 보급 운동의 맥락 속에서 이 가사들이 탄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부분은, 향후 애국가뿐 아니라 애국계몽기 문학과 음악의 생성·유통 연구로도 이어질 수 있는 흥미로운 시사점이다. 이런 점에서 본 연구는 문학사와 음악사의 교차 지점에서 국가 상징의 기원을 파악한 뛰어난 사례로 볼 수 있다.
셋째로, 본 논문은 학제적 연구와 후속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 역사학, 문헌학, 음악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애국가를 조명함으로써, 각 학문 분야에 고유한 방법론(예: 서지학적 고증, 음악사적 맥락 분석, 텍스트 비평 등)을 통합적으로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추후 연구자들이 애국가 뿐만 아니라 비슷한 역사적 노래나 문헌의 작자 문제를 연구하는 데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나아가 본 연구의 결론은 아직 가려져 있는 애국가 작사자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을 다음 단계로서 요구한다는 점에서, 추가 연구의 방향을 제시한다. 예컨대, 논문에서 제안된 김수원, 구호연 등의 인물에 대한 심층적인 행적 추적, 또는 애국가 원형 가사가 공모 혹은 유포된 경위를 밝히는 연구 등이 이어진다면 한국 근현대 문화사 연구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반재원의 이 논문은 애국가 작사자 논쟁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한국 근대사 및 문학·음악사 연구에 의미 있는 자료와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학술적 기여도가 크다고 평가된다.
한계 및 비판 지점
이 논문이 제시한 새로운 관점과 방대한 자료 활용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한계와 향후 보완이 필요한 부분도 눈에 띈다.
첫째, 1903년 <애국충성가>와 1904년 <한문애국가> 자료의 신빙성 및 해석 문제가 있다. 해당 가사들이 현행 애국가와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하나, 이 자료들의 출처와 작성자에 대한 추가 연구가 요구된다. 논문에서 지적했듯 두 작품의 기재된 이름(김수원, 구호연)은 필명 또는 가명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다른 기록을 통해 이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애국가 작사자의 진실”을 밝힌다는 궁극 목표에는 한 걸음 다가섰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은 셈이다. 실제로 애국가 원형 가사를 쓴 실제 작사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이들이 어떤 경로로 그 가사를 작성·전파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후속 연구로 남아 있다. 저자도 두 인물이 동일인일 가능성, 경주 출신일 가능성 등을 언급하고 있으나, 이것은 흥미로운 추론 단계에 머물고 있어 보다 확증적인 인물사적 연구나 추가 사료 발굴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본 논문은 ‘작사자 미상’ 상태를 완전히 종결지었다기보다는 논쟁의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는 비판이라기보다 향후 연구 과제를 상기시키는 한계로 볼 수 있다.
둘째, 사료 해석의 일부 가정에 대한 검증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논문에서 언급된 경주 지역 지명설은 기발하고도 가능성 있는 해석이지만, 동해·백두산·남산이라는 표현이 지역적 맥락을 띤 것인지 아니면 보편적 국토 상징으로 쓰인 것인지를 확정하기에는 추가 논거가 필요하다. 만약 해당 가사가 공모전에 응모된 애국시였다면, 당대 다른 응모작이나 언론 보도에서 유사한 표현의 사용례를 찾는 등 비교 문헌학적 접근이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981년 최초로 공개되었던 이 원형 가사 자료들에 대해, 일부 연구자들이 제기한 진위 논란도 간과할 수 없다. 논문 자체에서는 이 논란을 직접 다루고 있지 않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필사본의 제작 연대나 서체 등을 둘러싼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따라서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더욱 공고히 하려면, 이들 사료의 진본성에 대한 검토나 당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해당 가사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보강 설명이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예컨대, 안춘근등의 서지학자가 제기한 사항이나, 반론으로 제시된 견해들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방어했다면 독자의 신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핵심 사료에 대한 잠재적 이견에 충분히 답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셋째로, 논문의 범위와 초점에 대한 아쉬움도 지적된다. 다섯 가지 설을 모두 다루고 새로운 설까지 제시하다 보니, 각 부분의 서술 밀도가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 독자는 김인식 설이나 최병헌 설 등에 대한 논박이 비교적 간략하다고 느낄 수 있으며, 반대로 새로운 설에 대한 이야기가 문화사적 해석(망향시 가설, 경주 지명 등)까지 확장되면서 논지의 핵심에서 벗어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이는 방대한 논제를 다루면서 균형을 잡기 위한 저자의 선택이었겠으나, 핵심 주장에 더욱 집중하고 부가적인 논점은 별도의 연구로 다루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주 지명설과 같은 흥미로운 내용은 별도의 후속 논문에서 보다 충실히 다루었더라면 본 논문의 주제 집중도가 높아졌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언급된 한계들은 이 논문의 가치와 성취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치명적 결함이라기보다는, 후속 연구를 통한 보완 가능성으로 볼 수 있는 부분들이다. 작사자 미상의 역사적 퍼즐을 풀기 위해 새로운 조각들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 연구의 공헌은 크지만, 동시에 그 퍼즐을 완전히 완성하기 위해 몇몇 조각들의 정밀한 검증과 추가 탐색이 요구됨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계 지점들은 향후 연구자들이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할 과제로 남겨두면서, 본 논문의 논지를 크게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학문적 논의의 여지를 남겼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애국가 작사자의 진실』은 대한민국 국가(國歌) 가사의 작사자에 얽힌 오랜 수수께끼를 해명하고자 한 노력으로, 방대한 사료 조사와 논리적 분석을 통해 의미 있는 결론에 도달한 연구이다. 서론에서 문제의식을 분명히 하고, 본론에서 기존 다섯 가지 설을 면밀히 검토한 뒤, 새로운 사료를 바탕으로 현행 애국가 가사의 기원을 1900년대 초로 소급하는 주장을 펼친 구조는 학술 논문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독자에게 큰 설득력을 준다. 이 논문을 통해 우리는 애국가 가사가 몇몇 저명인사의 작품일 것이라는 통념을 넘어, 잊혀졌던 애국지사들의 손에서 나온 작품일 가능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한국 근대사 연구 및 국가 상징사(象徵史)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물론 앞서 지적했듯 몇 가지 보완될 여지는 남아 있다. 그러나 학술 논평자로서 본 논문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반재원 연구자가 제시한 가설과 증거들은 상당한 설득력과 무게를 지니며, 애국가 작사자 논쟁의 향후 담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이 연구는 “사실상의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반복되던 논쟁”에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나아가 역사 연구에서 사료 발굴과 치밀한 분석이 어떻게 새로운 통찰로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로, 학계와 대중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론적으로, 『애국가 작사자의 진실』은 주제의 중요성, 자료 분석의 충실성, 논리 전개의 탄탄함, 그리고 새로운 학술적 시각 제시라는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며, 향후 관련 분야 연구의 귀중한 출발점이 되는 의미있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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