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가사 해설

-'겟세마네' 가사와 '심청전'을 희생을 중심으로 비교하기

by 시샘 김양경

한국의 고전 문학 중 너무나 슬픈 작품이 '심청전'이다. 바리데기 이야기도 슬픈 이야기이나 심청전은 좀 더 슬프다. 왜냐하면 바리데기는 자기 의지로 버려진 건 아니었다. 바리데기는 아기 때 버려졌으나 어쩔 수 없이 타인에 의해서 당한 일이다. 또한 바리데기는 자기 의지로 삶을 구원해 내는 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심청전'에서 심청이는 자기 의지로 스스로 희생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매우 슬프다. 높은 덕성을 갖춘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스스로 목숨을 희생한다. 심청전은 고려 시대 말에 심청전의 원형에 해당하는 설화가 있었고, 그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다가 조선 시대에 와서 판소리로 불리다가, 이후에 소설로 정착이 된 작품이다. 아주 오랜동안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심청전은 어떠한 특정한 보호 장치도 없이 작품 자체가 갖고 있는 가치와 재미로 인해 스스로 살아남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전해져 온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 살아서 이어지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동조를 얻어야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 심청전이 바로 그러한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른 작품에 해당하고, '심청전'에는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가 그대로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희생은 매우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이번 시간에는 희생이라는 주제를 두고, 심청전과 겟세마네 두 작품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나는 어떤 특정 종교와 상관없이 가사의 의미만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다. 먼저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뮤지컬 배우 박은태가 불렀던 '겟세마네' 가사를 살펴본다.


겟세마네 (I Only Want To Say) (Korean ver.)

- 박은태 노래(Jesus Christ Super Star)OST


나 오직 한 가지 물어봅니다

이 순간 나에게 주신 이 독잔을 거둬줘요

다가오는 죽음이 난 너무나 두려워져요

흔들리는 맘 지쳐버린 몸

무얼 위해 싸워왔나

누굴 위해 죽는 건가

이 고통이 나에겐 무슨 의미가 되나요

나 죽을 때 예언하신 당신 뜻을 이루시겠죠

날 못 박고 치고 찢고 죽이시겠죠

I'd wanna know

I'd wanna know my God

I'd wanna know I'd wanna know my God

I'd wanna see

I'd wanna see my God

I'd wanna see

I'd wanna see my God

내가 죽어 얼마나 더 대단한 걸 갖게 되나요

얼마나 더 위대한 걸 이루시나요

I'd have to know

I'd have to know my Lord

I'd have to know

I'd have to know

my Lord I'd have to see

I'd have to see my Lord

I'd have to see

I'd have to see my Lord

죽어서 난 무엇이 되나

죽어서 난 무엇을 얻나

I'd have to know

I'd have to know my Lord

I'd have to know

I'd have to know my Lord

Why Should i die

보여줘요 내 죽음이 갖게 될 의미

알려줘요 내 죽음이 갖게 될 영광

헛된 죽음 아니란 걸 보여줘 제발

난 거부조차 할 수 없는 존잰가요 왜

좋아요 죽을게요 See how i die

See how i die

흔들리는 맘 지쳐버린 몸

지나간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네

끝내야 할 나의 운명

당신 손에 정해진 운명

뜻하신 대로 날 죽게 하소서

당신 주신 이 독잔이 핏물 되어 날 적시고

찢고 쳐서 죽이소서

지금 내 맘 변하기 전 지금 내 맘 변하기 전

박은태, '겟세마네' 열창 중. 자료 화면 Mnet

=== 시샘의 감상과 해설 ===

이 노래는 뮤지컬 'Jesus Christ Super Star'의 OST이다. 처음에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심한 충격에 빠졌다. 박은태 배우의 노래로 들었는데 너무도 생생하게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잘 표현해 주었는데, 그 당사자가 예수라는 것을 알고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흔히 예수는 신적인 존재로 이해하고 있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에 예수의 이런 인간적인 갈등에 대해서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노래의 가사를 듣고는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의 충격은 예수도 이런 갈등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충격이었고, 아무리 예수라 하더라도 자기 목숨을 내놓는 일에 이만한 갈등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의 무지함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이 노래를 부른 박은태 배우는 너무도 생생하게 표현을 해서 노래를 듣는 순간 공감하고 이해하게 됐다.


이 노래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수많은 편견 속에서 살았을 텐데, 다행히 이 노래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 가는 과정에서 나는 어리석고도 어리석었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나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한 인간의 생명은 다수의 거대한 목적을 위해서 희생되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심한 적 없는 나의 이런 생각은,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었다.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이봉창, 김구 등의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 분들은 너무도 자발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구했던 분들이다. 여기에서 큰 문제점이 하나 발견된다. 자발적이라는 부분이다. 나는 이 분들이 자발적으로 목숨을 바쳤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발적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어떻게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목숨을 놓고 자발적으로 목숨을 바쳤다고 말하고 있는지, 그런 말에 대해 나는 왜 단 한 번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이런 표현이 얼마나 어리석은 표현인지에 겟세마네 노래를 듣고 나서야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분들의 희생을 자발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는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던 것을 왜 이제야 생각하게 됐는지, 나의 이런 어리석음이야말로 충격적인 어리석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토록 어리석었던 이유가 있었다. 우리 사회는 이 분들을 지나치게 영웅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웅적인 관점에서 위대한 분들이니 우리가 겪는 이런 갈등의 순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웅이니까 우리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리 갈등 없이 당당하게 목숨을 턱 내놓았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분들의 이런 희생을 당연히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한국의 고전 소설 "심청전"을 살펴보자. 심청전의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심청이는 15세 소녀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소녀다. 나는 심청전을 읽을 때마다 참 많이 불편했다. 심청이가 자신의 목숨을 팔았던 이유는 이랬다. 첫째는 아버지가 부처님께 약속했던 돈 삼백 냥을 구하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자신이 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유교 사회에서는 딸은 제사를 모실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제사를 이을 아들이 필요했는데, 자신은 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자신이 죽어서 만든 돈으로 아버지가 다시 장가를 들고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이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게 하기 위해서였다. 덕성 높고 효심이 깊은 심청이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런 선택을 한다. 떠나는 날까지도 심청이는 아버지를 위해서 밥상을 차리고, 아버지를 걱정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이대로 읽었다. 덕성 높고 효심 깊은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을 자발적으로 희생했다고 읽었다. 갸륵하고 대단하다고 읽었다. 훌륭한 소녀라고 읽었다.

그러나 이제 이 노래를 듣고 나서 심청이를 다시 생각해 보니, 나의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어리석고도 잔인한 생각인지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 어린 소녀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심청이가 효녀이고 덕성이 높은 소녀이니 당연히 자발적으로 목숨을 내놓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나의 어리석은 생각은 매우 위험하고 잔인한 생각이다. 게다가 그 대상이 기껏 15살 어린 소녀인데도 그렇게 생각했다니 얼마나 잔인한가.


효녀 심청(챗gpt 생성)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도 참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어떤 소녀는 자신도 심청이처럼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고, 그런 선택에 대해서 사람들은 또 영웅시하거나 당연하게 여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소녀들에게 이런 식의 생각을 은근히 강요해 왔을 것이다. 어린 소녀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덕성과 효심을 내세우기 위해서 이런 희생을 자발적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잔인한 이야기다. 상대를 영웅화시키면서 동시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놓는 일까지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심청이의 심정은 얼마나 절박하고 무서웠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원망과 회한으로 가득했을지에 대해서 전혀 공감하지 못한 채, 그저 영웅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고도 야만적인가 생각해 본다. 한 인간의 목숨은 다수 대중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희생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야만성. 인간의 목숨을 두고 저울질을 하고 숫자로 계량하고 있었던 야만적 어리석음이다. 어떻게 존엄한 한 인간의 목숨을 그렇게 숫자로 계량할 수 있었을까? 뼛속까지 속물적이다.


우리의 사회를 위해서 수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희생을 감수해 왔던 것을 생각해 본다. 그분들의 희생이 위대하다고 훌륭하다고 신성한 것이라고 높이 세우기 전에 이제는 그분들이 감당했을 인간적인 고통과 갈등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신격화시키고 영웅화시키면서 동시에 그분들의 그런 희생과 고통을 당연시 여겼던 내 어리석음을 반성해 본다. 그리고 그런 고통 속에서도 희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분들의 절박한 심정을 생각해 보려고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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