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여행의 완성 : 체류형 여행의 5가지 장점
사실 우리는 여행자일 뿐이다. 현지인에겐 이방인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대로 상상하고 행동한다.
열대기후에 살았던 그들은 많은 것들을 원하지 않았다.
사계절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추위가 고통이겠지만 그들은 추위도 몰랐고 브랜드 옷 또한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자들은 낮엔 기능이 더한 브랜드 옷을 입고 다녔고 밤엔 패딩을 입고 다녔으며 시간이 지나자 여행자들에게 패딩을 판매하는 상점이 생기고 브랜드는 자본의 힘으로 다운타운을 만들고 랜드마크로 브랜드 몰을 오픈했다.
낯선 이방인이 도착하는 순간 우리가 그랬듯 그들도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의 여행은 공정한가?
아쉽게도 짧은 여행기간으로 동남아 유명 관광지에서 그들의 전통문화를 엿보기엔 역부족이다.
태국의 여행자 거리 카오산로드엔 비비킹에서부터 딥퍼플, 너바나, 콜드플레이까지 다양한 라이브 음악이 흘러나온다.
대화는 빅뱅과 소녀시대의 방콕 공연이며 세계 각국의 퓨전 음식과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오늘의 카오산 문화를 만든다.
그렇다고 그들의 문화가 사라졌을까?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꿈꾸고 오늘의 그들 생활은 무엇을 말하는가?
조금 더 빠져들 때 진정 그들을 이해할 수 있으며 여행자의 올바른 시선으로 책임을 다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여행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현지인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그들에 대하여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과 대화가 필요하다.
현재까지 내가 경험한 여행의 완성은 ‘체류형 여행’이다.
참 힘들겠지만 우리에게 리프레시 장기휴가가 주어졌거나
장기 알바를 끝내고 휴학계를 제출했을 때 기회가 생긴다.
체류형 여행이란 한 곳에 한 달쯤 체류하며
로컬 방식으로 생활하는 여행을 말한다.
[체류형 여행의 5가지 장점]
보는 여행과 직접 배우고 체험하는 여행은 많은 차이가 있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넓은 포도밭을 사진 찍고 오는 것과 직접 농장에서 일해보고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직접 시음해보는 것의 차이쯤이라 할까.
1천만 원으로 1년간 세계일주를 할지 1천만으로 1년간 10개의 도시를 한 달간 여행할지 결정하라면 주저 없이 10개 도시를 여행하겠다.
죽을 때까지 전 세계를 다 돌지 못할 것이고 여권에 스탬프 몇 개 더 찍는 것은 나에겐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미지에 세계에 대한 욕구와 각국의 문화나 테마에 대한 편협되지 않은 생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너무 오랫동안 한나라, 한 가지 테마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20대는 미친 듯 돌아다니고 3~40대는 1개의 도시를 한 달쯤 체류하며 배우고 체험하며 여행하고 50대부터는 나에게 맞는 나라와 테마를 찾아 정착하는 것이 이상적일듯하다. 뭐 꼭 나이에 따를 필요는 없고 여건에 따르면 된다.
직접 배우고 체험하는 서핑을 테마로 하자.
우리는 여행자이기 때문에 매일 서핑을 미친 듯이 할 수 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비치로 달려가 레슨을 받고 젖은 채로 점심을 먹고 선셋과 함께 일과를 끝낼 수도 있지만 무리한 일정은 항상 탈이 나더라.
여행 자체가 일탈행위 이기에 항상 오버액션을 부르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여유 있게 브런치를 즐기고 4~6시간, 길게는 8시간 정도 서핑할 때 몰입감은 높아지고 즐거움은 커지더라.
뒤에 소개할 트레킹도 마찬가지다. 운동시간이 8시간을 넘어가면 근육 피로물질 젖산이 분비되어 몸에 무리가 간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익숙함에 빠져들며 몰입하게 되는데 몰입의 즐거움은 강력한 엔도르핀을 생성하여 8시간 10시간이 넘어가도 피곤하지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이런 날들이 한 달간 계속된다고 생각해보자. 어쩌면 우리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루 6시간식 며칠간 서핑을 해야 몰입을 통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몸과 마음이 이상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 달은 필요하다.
첫 주는 이상적인 자세를 잡기 위해 지루한 반복이 계속되고 둘째 주는 직접 파도를 맞이하는 라인업에서의 경험들, 셋째 주는 레슨에서 벗어나 처음 파도를 타는 시행착오, 마지막 넷째 주쯤에서야 비로소 스스로 파도를 타며 서핑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우리네 여행은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체험형 3일 과정, 스파르타 마스터 1주 과정으로 끝낸다.
서핑을 느끼고 즐기는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보는 여행과 크게 다를 봐가 없다.
몰입의 행복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 것으로 체화되어 매일 엔도르핀이 샘 쏟는 극대화된 경험에서 나온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체류형 여행이 필요하다.
한 달 동안 체류하기 위해서는 로컬 문화에 대한 일상 체험이 함께해야 심심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누렸던 일상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비슷한 부분을 찾을 때 묘한 안도감과 함께 행복을 느낀다.
여행 친구들과 어울려 현지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쇼핑을 하는 이유 또한 그렇다.
그렇다고 최고의 음식이 나오는 고가의 레스토랑, 미슐랭 별점을 받은 음식점이나 아울렛, 백화점을 갈 필요는 없다. 그들이 즐기는 로컬 식당, 노천 마켓도 감탄하기엔 충분하다.
중국의 꼬치만 하더라도 소, 양, 닭고기부터 랍스터, 왕새우, 개불까지 지역에 맞게 다양한 신선한 재료로 값싸게 맛볼 수 있으며 베트남의 커피와 바게트, 라오스의 샌드위치, 인도네시아의 소또(소)사삐(소고기)는 진정 감동이며 스와로브스키 명품 주얼리보다 로컬 친구들과 함께 나눈 천 원짜리 수제 팔찌가 더 행복을 줄 수 있다.
거기다 현지 교포나 장기 체류 여행자를 만나면 여행은 더욱 흥미진진하게 된다.
현지 문화와 우리의 문화를 비교하며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를 충분히 경험한 그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추천은 진정 '론리플래닛' 이상이다.
적어도 장기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라면 그 지역을 소개하는 한국인 거주자의 블로그부터 찾아보자.
그리고 정중하게 도움을 청하여 추천을 받아보면 진정 감동한다.
한국을 떠날 때 추천받은 분을 위해 현지에서 구하기 힘든 자그마한 한국 물품들을 선물하는 센스는 필수.
짧은 여행은 여행자의 목적에 맞춰 사물을 본다.
그들 역시 그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핵심을 벗어나 행동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히말라야 셰르파들은 다르다.
셰르파, 쿡, 포터와 함께 트레킹 하다 보면 지나치게 목적의식에 빠진 한국인들을 꼬집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형, 한국 사람들은 이상해요.
산에 오를 때 우리를 대하는 태도하고 내려올 때 태도가 완전히 달라요.
우리는 오늘도 산행을 하고 내일도 산행을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죽을 것처럼 올라 현자가 되어 내려오는 것 같아요..."
테마를 추구하데 때론 목적 없이 내려놓을 때도 있어야 진정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다.
하지만 1~2주 만에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하니 한 달이 주어진 듯 마음속의 짐을 내려놓기 전엔 어림없다.
할일없이 여행지 침대에 누워 딩굴딩굴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옷에 붙은 머리카락이 유난히 크게 보일 때처럼.
네팔 산악 가이드 Roshan Manandhar은 부패한 정권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
정당하게 일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고 누구나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오늘도 꿈꾼다.
하지만 여행자의 시선은 내가 고용한 돈맛을 아는 한국말 쫌 하는 네팔 가이드쯤으로만 생각한다.
우리가 앞선 정치(?), 경제 상황이라고 마음대로 추측하고 상상한다.
조금 냄새가 나고 낡은 바지와 쪼리를 신고 있다고 해서 연민의 정을 보낼 이유는 없다. 애처로워하거나 동정은 더더욱 필요 없다.
그들은 지구별에서 태어나 한 줌의 먼지로 사라질 같은 운명을 가진 형제며 친구일 뿐이다.
내가 일상에서 내 친구를 대하듯 그들과 대화하고 대자연의 품으로 함께 걸아가면 되는 것이다.
여행자여! 알량한 동정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
장기여행을 하다 보면 의외로 소소한 것에서 여행의 감동을 느낀다.
게으른 아침 식사나 너저분한 거리의 맛집, 밀린 빨래를 끝내고 햇살 아래 차 한잔 할 때.
한 달간의 여행 동안 딱 맞게 떨어진 샴푸며 깔끔하게 잘 면도된 얼굴, 섬유유연제의 냄새까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지만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불쑥 마음을 흔든다. 그래, 난 여행을 떠나왔어!
[참고] 여행 선배가 전하는 여행의 기술 1 https://brunch.co.kr/@gtravel/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