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14일 차

시드니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이브

by 홍유경

호주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들의 선물을 어떻게 준비할지 고민이 되었다.


며칠 전, 큰 아이에게는 산타의 존재에 대해 털어놓았다.

언제부터인가 산타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큰 아이.

사실을 말해주면 비밀을 알게되어 속이 시원한 모습을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아이는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사실을 좀 더 늦게 말해줄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산타의 존재를 고백하며 동시에 엄마의 고민도 털어놓았다.

"우리가 호주에 있기 때문에 네가 원하는 선물을 사주지 못할 것 같아.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혹시나 갖고 싶은 것이 없었니?" 하고 물었다.

그러자 큰 아이는 지난번 파워하우스 뮤지엄 가는 길에 있었던 차이나타운의 패디스마켓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판매하던 축구 선수 유니폼을 갖고 싶다고 했다.

작은 아이는 예전에 주립미술관의 기프트샵에서 봤던 미술 도구를 무척 갖고 싶어 했었다.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은 주말이라 주립미술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워크숍이 열린다고 해서, 오후에는 워크숍에 참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작은 아이를 위한 선물도 준비할 겸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서큘러키로 향하는 길

숙소에서 서큘러키까지는 도보로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우리는 페리를 타기로 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페리 정거장인 Barangaroo warf로 가는 길은 우리 가족 모두의 최애 산책로였다.

상쾌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끝없이 펼쳐진 산책로를 킥보드로 신나게 내달리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 마음도 시원하게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커스텀즈 도서관 앞에 설치된 트리와 어느새 이곳의 도서대여 시스템에 익숙해진 우리

서큘러 키에 도착한 후, 아직 산타의 존재를 모르는 둘째 아이에게 선물 준비 과정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잠시 갈라지기로 했다.

큰 아이와 남편은 트램을 타고 패디스마켓으로 향했고, 나는 둘째 아이와 며칠 전에 빌렸던 책도 반납할 겸 커스텀즈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남편과 큰 아이는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는데, 큰 아이가 원했던 이강인 선수의 유니폼은 패디스마켓에서 판매하지 않아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네 명이 다시 모여 주립미술관으로 향하려던 찰나,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싶을 정도로 매서운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늘 무거운 배낭에 우산까지 짊어지고 다니는 남편이 안쓰러워, 오늘은 내가 직접 가방에서 우산을 뺐는데 하필 이런 날 비가 오다니...

심상치 않은 빗줄기에 남편은 이런 비를 맞았다간 아이들 감기 걸리겠다며, 근처의 기념품 가게에서 몸을 겨우 가릴만한 작은 우산을 하나 사서는 서둘러 우산을 가지러 숙소로 다시 돌아갔다.

아이들이 고른 크레페 @four frogs creperie

남편이 혼자 우산을 가지러 다녀오는 사이, 나는 아이들과 서큘러키 역사 맞은 편의 멀티플라자에 갇혀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상황이 되었다.

멀티플라자에는 푸드코트처럼 각종 음식을 파는 음식점들이 즐비했는데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남편을 기다리는김에 아이들 점심이라고 해결할겸 달콤한 냄새가 가득했던 크레페 가게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이들도 나도 혼자 빗속에서 고군분투할 아빠가 걱정되어 크레페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크레페를 맛있게 먹지 못했다.

숙소에 다녀온 남편은 우산뿐만 아니라 야무지게 아이들 크록스 신발도 챙겨 왔다.

그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 우리는 다시 시드니 주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 내부 kids drop-in workshop이 열린 공간과 그곳에 계시던 친절한 선생님

미술관의 워크숍 공간은 카페에 온 것처럼 통창으로된 멋진 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미술 수업을 하다니...

학습을 위한 교실같이 답답하고 협소한 공간이 아니라, 마치 이 미술관에서 제일 좋은 공간을 아이들에게 내어준 것 같았다.


우리가 참여한 수업은 종이를 구기고, 구겨진 종이와 종이를 테이프로 연결해서 하나의 조형물을 만드는 수업이었다.

워크숍 공간에는 한 분의 선생님이 상주해 계셨는데, 선생님의 친절함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곳에 방문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친절한 눈빛과 친절한 말투로 직접 시범을 보이며 차근차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도 보여주면서 아이들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게다가 궁금한 것이 많은 둘째의 아이의 모든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시고, 미술에 자신이 없어하는 큰 아이를 진심으로 격려해 주었다.


누군가가 만든 기린 작품과 아이들이 만든 작품

그렇게 두 아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만들기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큰 아이는 캥거루를, 작은 아이는 나무에 매달린 코알라를 만들어 내고는 참 뿌듯해했다.

무엇을 만들라고 정해주지 않았는데...

호주의 대표 동물들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어낼 생각을 스스로 한 아이들이 참 대견했다.


늦은 오후, 우리는 세인트메리 대성당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세인트메리 대성당을 배경으로 라이트쇼를 진행한다고 한다.


가성비 좋았던 저녁식사 @Toki Italian Inspired

점심을 모두 소홀히 먹은 탓에 성당으로 향하는 길에 이른 저녁을 해결하려 우연히 들린 맛집.

저녁 시간은 모두 예약이 꽉 차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방문한 시간은 다른 손님들이 예약한 시간 이전이라

서둘러 먹고 일어나면 식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간신히 빈자리에 착석해서 감사한 한 끼를 해결했다.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성당 안과 밖에 모인 수많은 인파

종교가 없는 우리는 한국에서도 성당에 가본 적이 없다.

라이트쇼는 해가 지고 난 후에 열리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 기다릴 겸 특별할것 같은 크리스마스 미사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이브라서인지 미사가 열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

앞 타임 미사가 끝나면 성당 앞에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다음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가 성당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여 착석을 한 상태라 앉을 자리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이대로 한 시간을 서있을 순 없을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성당을 빠져 나가려는 찰나, 미사 시간이 임박하여 출입문이 닫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강제 미사를 듣게 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긴 시간동안 지겨움과 사투를 벌이고 나와 남편은 그런 아이들에게 절대로 미사를 방해하는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며 가족 모두 잊지못할 첫 미사를 경험했다.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성당 외벽

미사가 끝난 뒤 밖에 나오자, 성당 앞 광장의 작은 무대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돌아가며 캐럴을 부르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온 터라 우리는 이용하지 않았지만 길가에 여러 푸드트럭에서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대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공연을 즐기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얼마지나지 않아 해가 지고 라이트쇼가 시작되었다.

음악에 맞춰 성당을 배경 삼아 다채로운 색상의 빛이 투영되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감동스러워 한참을 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엄마! 박쥐예요! 박쥐가 날아다녀요!"

성당 주변을 까만 무언가가 날아다녔는데... 정말 아이들 말대로 박쥐였다.

아니 박쥐는 동굴에 살지 않아? 시드니에 박쥐라니?

박쥐 출몰로 인해 우리끼리 한바탕 작은 소동을 피웠는데... 호주에 박쥐가 그렇게 많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한국 집에서와 달리 호주 숙소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없었다.

그래서 산타가 혹시 선물을 어디에 둘지 모를까 봐, 둘째 아이가 직접 그려놓은 크리스마스트리.

그 트리 앞에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올려두었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사지 못한 큰 아이를 위해서는, 큰 아이가 좋아하는 호주과자 팀탐을 준비했다.

그렇게 우리는 호주스러운 호주다운 호주표 크리스마스이브 보내기를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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