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맨리 비치 옆 셸리 비치에 가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
일주일에 한 번은 시드니 근교 바다에 가려고 했지만, 변화무쌍한 시드니 날씨로 인해 계속 미뤄지기만 했다.
이렇게 일기예보가 부정확한 도시가 또 있을까?
시드니에 온 지 2주가 다되어가는 크리스마스인 오늘, 대부분의 상점과 관광지가 문을 닫아 바다에 가는 것 외에는 딱히 다른 대안이 없을 것 같았다.
물놀이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는 뜨거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더 이상 미루다 가는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한 번도 바다를 경험하지 못할 것 같아 큰 마음먹고 길을 나섰다.
우리는 현지인들과 아이 동반 가족들이 많이 찾는다는 맨리 비치(manly beach) 옆에 위치한 작은 셸리 비치(shelly beach)에 가기로 했다.
셸리 비치에서는 스노클링이 가능하다고 해서 한국에서 가져온 어린이용 고기잡이 그물도 챙겼다.
맨리 비치에는 버스를 타고도 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서큘러 키에서 페리를 타고 가기로 했다.
페리를 타고 단 30분이면 맨리 비치에 도착할 수 있다.
선착장에서 내려 인파를 따라가다 보면, 기념품 가게와 먹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가 이어진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드넓은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모래사장에는 빨간색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 산타 모자를 쓴 채 서핑 보드를 들고 가는 사람들 등,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있었다.
걸어가는 길목에 스타벅스도 있어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과 공짜 얼음물을 얻었다.
날씨가 더운 탓에 나는 항상 "extra ice and light water, please"로 주문한다.
커피를 주문한 후 아이들을 위한 얼음물 한 컵도 요청하면
얼음을 꽉꽉 채워 마치 돈을 주고 산 것 같은 퀄리티의 물 한 컵을 얻을 수 있다.
오늘같이 무더운 날씨에는 참 고마운 스타벅스다.
이 스타벅스 컵은 나중에 물고기 채집용으로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아이들은 맨리 비치를 보자마자 바다로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인 셸리 비치까지 가려면 맨리 비치 옆 좁고 기다란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들어가야 했다.
가는 길이 제법 길어서 다른 가족들의 어린아이들이 힘들어하며 칭얼대는 장면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킥보드 덕분에 오며 가며 힘들 겨를이 없었다.
산책로에는 멋진 바다뷰를 보면서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었다.
즉흥적으로 그곳에 자리 잡고 점심으로 준비해 간 김밥을 먹었다.
크리스마스라서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문을 닫을 것 같아 일부러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는데
막상 가보니 문을 닫은 곳도 있었지만 문을 연 음식점도 있었다.
대신, 몇 안 되는 음식점에는 식사를 해결하려는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셸리 비치로 향하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중간 즈음 바위옆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옆에는 아이스버그 수영장을 닮은, 작지만 인상적인 풀장도 있었다.
이렇게 여러 유혹을 물리치고 도착한 셸리 비치.
셸리 비치는 정말 구석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찾아오기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역시나 아직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수온 탓에, 둘째 아이는 물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이들은 우연히 만난 한국인 형아랑 누나들이 잡아다준 물고기 덕분에
바위틈에 고인 물을 이용해 자연 어항을 만들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페리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릿지가 보이기 시작하면, 서큘러 키에 다 온 것이다.
서큘러 키에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는 타워 브릿지 아래를 통과해야 한다.
한국에서 구글 맵으로 봤을 때는 이 길이 참 음산하고 무섭게 느껴졌었다. 뭐 이런 동굴 같은 길이 있지?
그런데 막상 몇 번 오가고 보니, 이 길은 참 운치 있는 곳이었다.
마치 저 터널을 통과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신비함도 있고,
이 길을 통과하면 집에 거의 다 왔다는 것을 아이들도 안다.
하루 종일 낯선 곳에 있다가 단기 숙소가 아닌, 아늑한 진짜 우리 집에 도착한 듯한 느낌.
시드니에 2주일이나 있었더니, 아이들도 나도 벌써 이곳이 내 집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