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호구로 만드는 해외 원조
해외 원조에서 가장 많이 조명되는 연령 층은 유아, 어린이다. 해외 원조를 통해 유아 사망률을 낮추고, 굶주리는 유아나 어린이의 영양상태를 개선한 업적은 해외 원조의 긍정적인 면으로 평가받고 있다. 필자도 그리 믿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EU 국가 출신의 ** 씨를 만나 커피를 마시며 한 가벼운 이야기가 믿음을 또한번 흔들었다.
그의 주장은 듣기 거북했다. 이전에도 들은 말이었고, 당시에도 이 주제로 토론한 적도 있지만, 오랜만에 들으니 거북했다. 자리로 돌아와 통계를 들여다보았다. 7년 전쯤. 이 문제로 난상토론을 할 때보다. 아프리카의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그의 첫 포문은 아프리카의 인구 증가였다. 1980년도엔 5억 명 정도였단다. 하지만 2025년엔 15억 쯤 될 거란 추정이다. 국제기국가 말라리아 같은 질병을 막아주고, 영양개선 프로젝트를 아프리카 전역에 펼친 결과. 인구가 크게 늘었다.
`배고픈 사람이 계속 생기고, 해외 원조를 중단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인구 증가에 있다.` 라며, 너는 알고 있냐? 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고, 스스로 먹고살기가 불가능한 나라에서 인구가 늘어나면, 그 늘어난 인구만큼 더 배고프게 되고. 외부에서 원조라도 해주지 않으면. 불만이 폭발해 내전으로 진화하거나, 아니면 잘 사는 나라로 탈출하게 된다는 논리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열띤 토론을 하는 것도 지켜본 적이 있었다. 아프리카는 1980년대와 비해 크게 달리진 게 없었다. 식량이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고, 산업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부패는 계속되고. 늘어난 인구를 감당할 만한 나라는 별로 없어 보였다.
`생각해 보세요. 아이들을 질병과 굶주림에서 건져 내서..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들 대분은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일자리가 없어요. 아프리카 일자리 통계는 거짓으로 가득 차 있죠. 아시죠. 아프리카에서 일해 보셨으니까.`
그는 강력한 산아제한을 시행하지 않는 나라엔 아이들을 위한 지원을 끊는 것도 고민해 봐야 한다 말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늘어난 인구 때문에,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국가 때문에. 계속 굶주리고, 계속 가난하게 살게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현세의 지옥을 선사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논리였다.
아프리카 어디를 가든, 아이들이 일한다. 아니면 구걸을 한다.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뭐다. 해도. 먹고살려면 달리 선택지가 없다. 부모가 충분히 벌어오질 못하니 그렇다. 충분한 보수를 받을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1970년, 1980년대를 돌이켜 보면. 가난한 나라에서 배를 곯지 않기 위해. 강력한 산아제한을 했었다. 지금이야 그게 잘못되었네 마네 하지만. 당시에 가난한 아버지의 돈벌이로 많은 아이들을 제대로 먹여 기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든 아이를 만족할 만큼의 공부시킬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아이들 중 몇 명만 공부시키고, 나머지 아이들은 일찍부터 일터로 보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토론이 있었으면 좋겠다. 과연, 어린아이를 돕겠다는 원조기구에 지원을 확대하는 게 좋은 것인가. 그의 말대로, 아프리카 같은 나라의 인구증가는 우리나라에 난민이 들어올 가능성을 높인다. 굶주림, 실직으로 인한 정세 불안으로 내전의 가능성을 높인다. 게다가 늘어난 인구는 환경파괴의 주범이 될 수밖에 없다. 밥만 지어도 연료가 필요하다. 5억이 밥 지을 때 쓰는 땔감과 15억이 밥 지을 때 쓰는 땔감의 양은 비교하기 어렵다.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키는 일이다.
아이들에 대한 지원은 어떤 형태로 하는 게 좋을까?
이런 말을 하면, 인류애를 꺼내 들고, 비난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선진국은 개도국의 고혈을 빨아 잘 산다. 란 논리를 펼칠 수도 있다. 현장에서 계속 느끼는 바. 그냥 현실을 봤으면 좋겠다. 현장에서 거창한 이상은 보고서 쓸 때, 연설할 때 양념이다. 원조를 요구할 때 사용하는 미사여구다. 딱 그만큼이다. 현장에선 살기 위한 몸부림과 부정과 부패. 선진국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가 있다.
그리고 이 냉엄하고, 잔인한 현실을 국민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알고서 원조 기구를 돕는 것과 모르고 돕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