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호구로 만드는 해외원조
해외 원조 현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묘했던 감정은, 당연하게 여겼던 수많은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맞닥뜨리면서 생겼던 감정이었다. 현장에 있다 귀국해 공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지하철과 버스 안내판 찾는다. 반듯한 도로. 길가의 가로등, 단정한 옷차림의 사람들, 건강한 얼굴, 여기저기 불을 밝히고 있는 상점들. 천국이다. `나는 천국에서 살면서도 불만을 터뜨리는 무지한 놈이구나.`
이런 감정은 꽤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그러면서 왜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인데, 왜 이리 큰 차이가 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고 싶어 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실마리가 잡혔다. 발단은 두바이 7성 호텔 한 층을 모두 임대해 쓴다는 모 전직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가난한 나라도 엄청난 부자가 있다. 우리나라 부자 부럽지 않게 잘 사는 부자다. 그리고 우리나 그들이나 가난한 사람도 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존재. 이 부분은 잘 사는 나라나 가난한 나라나 공통점이다. 이 사실을 깨달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점은 짐작하실 것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계층의 두께. 그들은 매우 얇거나 없고, 우리는 두텁다. 이 층을 어떤 단어를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중산층이란 단어를 사용해 본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다. 베네수엘라. 과거엔 복지천국이자 부자나라였다. 지금은 빈국이다. 그런데 부자도 가난해졌을까? 믿어도 좋다. 그렇지 않다. 그 중간을 채우고 있던 두터운 층이 얇아지다 못해, 멸종 지경에까지 이른게 문제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 중간의 두터운 층을 죄다 흡수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 게 문제다.
그들 나라의 방송을 들어보면, 참 좋은 말들이 오고 간다.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 가치를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논의가 오고 간다. 최신 이론부터, 과거의 성공 사례까지 망라한다. 말밥 잔치도 이런 잔치가 없다. 말밥 잔치를 한 걸음만 벗어나면, 굶주림과 가난이 만연해있다.
요즘 이탈리아를 보면, 중산층이 말라가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관료 출신의 지인이 한탄하면서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과거 이탈리아는 중산층이 단단했다. 하지만 지금은 꽤나 얇아졌다. 앞으로 더 얇아질 거란 걱정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런 징후는 곳곳에서 보인다. 사람들의 여유가 없어졌다. 더 이상 잘 사는 나라처럼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설마 이탈리아가 베네수엘라처럼은 되지 않겠지.
벤치마킹은 선진국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벤치마킹은 가난한 나라에서도 해야 하는 것이다. 타산지석. 해외 원조에서 타산지석의 묘를 찾지 못한다면, 2025년 6조 2000억 원이 넘는 해외 원조 예산을 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를 빠뜨린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우리 정부는 가난한 나라에서 이런 교훈을 배우고 있을까. 아니 관심이라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