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호구로 만드는 해외원조.
공공분야의 전문성은 양날의 칼과 같다. 한자리에서 전문성을 쌓다 보면, 타성에 젖거나 부패하기 쉽고, 저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안주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침몰하는 나라 중 하나가 이탈리아다. 반면에 1,2년마다 널 뛰듯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간혹 국가 발전의 걸림돌처럼 인식되는 설익은 정책을 내놓는 건 대한민국 공조직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해외원조 정책이 국익을 챙기는 해외원조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조직이 내재한 전문성이 마음에 걸린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을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대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1,2년마다 담당자가 바뀌니. 국제기구 담당자나 전문가는 대한민국 공무원을 초보자처럼 대한다. 이쁘게 웃어주고, 좋은 말 해주면서 아주 가려운 곳만 살살 긁어주면 되는 존재다. 중급자 수준으로 넘어가려 해도 공무원들이 이해하지 못하기에 더 이상 고민하는 건 오히려 좋지 않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어떨 때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초보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혼란이 있다. 어쩌다 저런 초보들이 대한민국을 선진국의 반열에 올렸을까? 이런 의구심으로 잠시 조심해 보지만, 언제나 초보고 호구니. 어느 순간 마음이 풀어진다. 변함없는 초보에 호구.
문제는 이런 시야가, 우리 국민에 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국제기구를 살펴보다 보면, 거기서 일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열심히 일만 하고, 자리를 잘 챙기지 못하는 호구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이 상황이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그들만의 문제일까?
물론 공조직이 지나친 전문성으로 타성에 젖어들어가, 자기들끼리 아성을 구축하고, 이의 여파로 국운이 기울어져가는 나라처럼 되길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3년 이상 가급적 5년은 한자리에 버텨야, 전문성이란 게 생기지 않을까.
필자는 1,2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기는 조직, 4,5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기는 조직, 마르고 닳도록 한자리만 지키는 조직을 모두 경험했다.
1,2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기는 조직은 보고서에 역량을 집중한다. 짧은 시간에 제대로 일을 할 수는 없기에, 글쓰기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보고서가 산뜻하고 한눈에 들어오고, 무엇인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느낌이다.
4,5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기는 조직의 보고서는 가장 부실했다. 열심히 하는 듯 보이는 데, 알맹이가 빠진 듯 느껴지기도 하고, 다소 어수선한 부분도 있다. 보고서가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은 가장 잘했다. 적절한 전문성을 확보할 상태에서, 타성에 젖지 않고, 부패도 방지하며 가장 좋은 결과를 보였다. 문제는 보고서를 상대적으로 부실하게 쓰고, 홍보를 잘못하는 게 흠이다.
마르고 닳도록 한자리만 지키는 조직은 요구하는 사람 입맛에 맞춘다. 기가 막히게 침소봉대로 가득한 보고서부터, 전문성이 강한 보고서까지 골라 잡으라는 식이다. 어차피 너는 모르고 나만 아니, 니 입맛에 맞추어는 줄게.라는 느낌이었다.
대한민국과 일본을 담당하다 보니, 양국의 주요 행사에 들어가 상황을 지켜볼 기회가 적지 않다. 주변 동료들과 말을 섞다 보면, 스위스가 어떻고, 프랑스가 어떻고, 미국은 저렇고... 이렇게 주워듣는 사항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공조직의 전문성을 냉정히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안 생긴다면, 국제기구에서 일할 역량이 안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기도를 한다. 이번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게 해 주소서.
아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간단하다. 담당자를 4,5년 동안 그 일만 하게 하면 된다. 정말 간단하다. 하지만 안 간단하다. 그리 간단한 일이라면 애당초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