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3년만 지나면 내 나이 60.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굴곡의 연속이었다. 그 굴곡은 한없이 깊게, 한 없이 높게 다가왔다. 돌이켜보면 마마보이라는 태생적 걸림돌에서 기인한 깊이였고 높이였다. 마마의 품에서 벗어난 보이에게 현실은 괴물이었다. 마마보이가 아니더라도 맞닥뜨리는 괴물이지만, 마마보이에겐 그 괴물은 상상조차 못 할 고통을 주는 악마고, 재앙이었다. 다른 이들은 당연한 게 나는 당연할 수 없었다.
같이 동행했던 어릴 적 마마보이 친구들이 있었지만, 마마보이를 한 없이 경멸했던 와이프의 단칼에 일찌감치 잘렸다. 괴로움에 외로움이 더해졌다. 그나마 마마보이가 거죽을 바꿔 쓰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위안을 삼았다.
마마보이는 엄마 껌딱지라 불리기도 하고, 맘보이라 불리기도 하면서 세를 넓혔다. 마마보이의 결정체는 캥거루족일 듯싶다. 나는 혼자 뚝 떨어진, 별종이 아니었다. 원래 마마라는 종족의 DNA가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따금 조우하는 마마보이를 보면서 저 친구에게 나는 어떤 재앙으로 보이고 악마로 보일까. 궁금했다. 그에게 나는 현실이기에 그랬다.
당연한 관계고 당연한 생활처럼 보이지만 마마보이에겐 나락인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오기와 분노로 내 앞에 간신히 버티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걸 알기에 궁금해하면서 가능한 신경을 접는다. 사실 마마보이에게 마마보이와의 만남은 안식보다는 피곤이 먼저 다가왔다. 그나마 적응한 룰에서 벗어나기 싫어서일까. 아니면 이런 기분이 마마보이의 어떤 특징일까. 나 혼자도 버티기 힘든데, 다른 마마보이에게 신경을 써줄 여력도 없었다.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마마는 보이에게 끊임없이 칼질을 하고 상처를 냈었다. 그 상처가 한 살 한 살 넘어갈수록 깊게 파이고 파이고. 어느덧 스스로의 삶을 꾸밀 나이가 되었을 땐,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인생을 헤쳐나갈 근육과 맷집엔 깊은 상처가 가득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점차 늘어나는 마마보이가 피곤해서다. 마마보이에게 마마보이는 진정 피곤하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마마보이, 엄마 껌딱지, 맘보이, 맘걸이라 부를 수 있는 종족에 대한 기록이 드물었다. 이상한 심리적 고찰이나, 무슨 사회현상이나 그런 개딱지 같은 소리가 가득했다.
그래서 용기를 났다. 개딱지 같은 소리가 가득한 이 바닥에 또 하나의 개딱지를 더 붙인다 해서 티가 안 날 것 같아서다. 이제부터 틈틈이.. 내 상처를 하나하나 들출 것이다.
내 아이가 엄마 껌딱지가 되어, 평생 재앙과 악마를 피하려 엄마에게 바짝 달라붙고 싶어하는 모습을 바라는 마마는 이 글을 꼭 봐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