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는 자신이 못 간 그 길을, 보이가 잘 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는 듯하다. 그 길의 끝은 행복하고 여유로운 현세의 천국이라 믿는 것도 같다. 가본 적 없는 그 길을 알기 위해, 그 길로 보이를 걷게 하기 위해. 책을 본다. 전문가의 말을 듣는다. 위인전을 엿본다. 그리고는 그 속에 묘책이 있다고 철썩 같이 믿다. 가보지 않는 인생길을 걷는 건, 네비 찍고 목적지로 가는 것과는 다르다. 이미 익숙한 인생 길도 생각지도 못한 목적지로 향하는 게 부지기순데, 경험하지 않은 인생길을 걸어 목적지에 당도하는 건 결코 쉬울 수 없다. 그런데도 그 길에 보이를 밀어 넣는다.
필자의 스토리를 들려드리겠다. 마마는 똑똑한 사람이다. 한국 전쟁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졸지에 거지처럼 되어 종국에는 대학교에 입학하고도 학비가 없어 다니지 못했지만, 당시에는 드물게 여성 공무원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여성들이 공무원 보조원을 할 때, 마마는 공무원이었다.
파파는 성실하게 살면 된다는 현실주의자였다. 마마는 그게 못마땅했다. 권력자, 부자, 위인들이 지천인데. 보이를 그렇게 키울 생각은 안 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마마는 보이가 명문 대학을 가야 했고, 부유하게 살길 바랐다. 그렇기에 자신이 걸어가 보지 못한 길로 보이를 인도하기로 했다.
마마는 어긋난 첫걸음을 시작했다. 잘못된 믿음을 보이에게 주입했다. 좋은 대학을 가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거짓. 공부를 잘하면 돈도 많이 벌거라는 환상. 마마는 보이의 미래를 보장하는 훌륭한 안내자라는 믿음.
마마는 자신이 가보지 못한 좋은 대학,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공부 잘하는 학생, 자신이 능력으로 부족한 슈퍼맘이 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 길은 쉽게 갈 수 없는 길이다. 정말 좋은 대학을 가야 경험하고, 정말 공부를 잘해야 이해하고, 정말 슈퍼맘이 되어야 알 수 있다.
좋은 대학 간다고 다 행복해지는 게 아니구나, 공부를 잘하고도 가난해질 수 있구나, 슈퍼맘짓 하다가 집안이 망할 수도 있구나. 이걸 알아야 했다. 특히나 보이가 이런 망상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아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정한 길에 보이를 안착하는 데 정신이 팔린 마마의 눈에는 이런 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건 모두 중요치 않은 거였다. 그러기에 주변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잘 사는 사람. 공부 잘했다는 부자. 슈퍼맘임을 자랑하는 허풍쟁이 책을 탐독했다. `우리 개는 안 문다`는 식의 말을 열심히 떠버리는 전문가의 말을 철썩 같이 믿는다.
그게 얼마나 허망하고 바보 같은 짓인지. 경험했던 예를 들겠다. 필자 세대인 20세기가 아닌 21세기에 실제 있는 이야기다. 필자세대 이야기 하면 호랑이 담배 물던 시대처럼 치부할까 봐 그렇고, 필자가 어린 시절 마마들의 진짜 세계를 알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똑똑하고 능력 있다는 마마가 책을 냈다. 자신이 아이들을 어떻게 영어조기교육을 시켰고, 그 아이들이 아이비리그를 들어가서 어떻게 성공할 거란 기대가 가득한 책이었다. 대기업의 다니는 파파는 그 마마를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고 했다. 현실에서 월급쟁이가 확신으로 눈이 어두워진 슈퍼맘을 뒷받침하는 건 미친 짓이다. 월급쟁이 아이들이 아이비리그를 향한다는 건, 가족 전체가 가난의 토굴로 기어들어가는 가장 효과적 방편이다.
수많은 확신에 찬 마마들이 봤을 그 책의 저자, 마마의 보이들은 아이비리그를 들어가지 못했다. 미국대학에 보낸다고 돈만 들였고, 목적도 못 이룬 채 가난의 토굴로 들어간 듯 보였다. 하지만 겉으론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아파트가 예전 살던 곳이 아니고, 아이들에 대한 소식이 끊긴 거가 전부다. 그런 책을 보물단지 다루듯... 수많은 마마들이 읽었다.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니, 틀린 말 이긴 어렵다.
이런 책을 신봉했던, 이런 내용에 심취했던 마마 중 아이들을 아이비리그에 넣는 데 성공한 걸 목격한 적도 있었다. 마마는 꿈도 못 꿨던 아이비리그였다. 그렇기에 보이를 잘 뒷받침하려, 파파가 잘 다니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미국으로 건너오게 했다.
문제는 보이였다. 아이비리그만 들어가면 모두 잘될 거라 철석같이 믿은 보이에게 아이비리그의 현실은 지옥이었다. 스스로 학습이 안 되는 학생은 졸업장을 쥘 수 없는 바닥이었다. 마마손 잡고 족집게 과외로 성적을 만들어낸 보이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 보이는 성적 미달로 퇴학당했다.
사실 마마보이가 어떤 학교를 갔느냐는 중요하진 않다. 마마 말대로 공부를 했고, 마마 뜻대로 학교에 들어갔으니 그 걸로 된 거였다. 이제부터 인생은 일사천리로 가야 했다. 이제부터 행복은 당연한 거다. 마마 뜻대로 한 훌륭한 보이니.
보이는 현실의 쓴맛에 기절할 듯 놀란다. 이런 건 내 앞에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보이는 마마를 원망한다. 마마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 인생꼴이 뭐냐고. 시키는 대로 했는데, 이게 뭐냐고. 실제로 보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는 상관없다. 마마의 지침과 그에 따른 행위 자체로 원망은 충분히 성립되고도 남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성립되는 원망이다. 나이와는 상관없는 원망이다. 40이 넘어도, 50이 넘어도 계속될 원망이다.
너무나 신기했다. 필자가 마마한테 받은 그 방식, 그 내용 그대로 포장지만 달라진 채로 세대를 뛰어넘어 반복되는지, 놀라울 다름이다. 필자의 세대에선 SKY만 들어가면 다 된다였다. 필자의 아이들 세대는 아이비리그, 다음은 뭘까.
마마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주변을 보시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행복하고 부자인 사람 중 마마보이는 없을 거라고. 내 아이가 마마보이로도 충분히 살게 하고 싶으면, 마마가 한나라의 왕후가 되면 가능할지도. 다이아몬드 수저 집안이면 혹시 가능할지도. 금수저 집안까지는 망해가는 걸 봤는데, 다이아몬드 수저는 본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