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호구로 만드는 해외원조.
간혹, 우리 민족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민족이라 주장하는 걸, 실제 그렇게 생각하는 걸 본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국제기구에서 일하다 보면, 냉정하게 우리를 바라볼 기회가 많아진다. 좋게 말하면 객관적이 되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위축된다. 같은 부서에 있는 동료 중엔 과거 페르시아제국의 후손, 과거 로마제국의 후손, 과거 굽타제국의 후손, 과거 크메르제국의 후손, 중화제국의 후손이 있다. 역사 속에 제국의 명칭이 뒤따를 정도로 빛나는 문명을 남긴 이들의 후손이다.
스스로의 문자기록이 없어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아프리카인도 잘 살펴봐야 한다. 아프리카는 인류의 기원지라는 학설이 정설처럼 되었다. 기원지의 특징 중 하나는 유전적 변이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머리 좋음의 차이도 매우 다양할 가능성이 높고, 수재나 천재의 비율이나 숫자가 다른 대륙에 비해 적지 않을 수 있다.
이들 나라 출신으로 국제기구에 취직하는 사람은, 그들 나라에선 최고 수준의 엘리트다. 첫인상은 똑똑하다. 두 번째 인상은 저런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가 왜 가난하지? 세 번째 인상은 가난과 배고픔의 시스템이 장착되면 저런 똑똑한 사람도 벗어날 수 없구나.
그들의 선조도 국뽕이 가득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후손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국뽕을 누리기 어려운 처지다. 국뽕으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것도 목격한다. 유럽의 몇몇 선진국들이다. 서민의 삶은 점점 어려워지고, 국민의 교육 수준은 과거와 비해 낮아지고,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지만 그들의 눈엔 여전히 국뽕이 일렁이며 왜 `우수한 우리 민족이 왜 기울어져 가는가~ `하는 소리만 늘어놓는 듯 보인다.
사실, 그 국뽕을 일군 사람은 본인이 아니다. 그들의 선조다. 그들의 선조가 개고생 해서 돈을 벌어 들이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자손들에게 그 노하우를 전수하고, 부지런히 살라고 교육시켰기에 현재의 그들이 국뽕이란 걸 누리게 된 것이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그들 스스로가 아닌, 인척관계도 아닌, 그 누군가가 능력을 발휘해 대단한 결과를 들고 왔기에 같은 민족이란 타이틀을 걸치고 국뽕을 부려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필자에게 국뽕은 내 아빠가 이래, 내 할아버지가 저래, 내 사촌이 엄청나지. 하는 바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우리끼리의 국뽕은 무해한 유희일 수 있다. 하지만 해외원조 현장에서의 국뽕은 삼가야 한다. 그들이 못나서, 못 사는 게 아니다. 그들도 똑똑하고 역량이 있으나, 선조들이 잘못 일군 시스템 안에 갇혀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 가난과 배고픔의 시스템은 너무나도 바꾸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정리하자면 해외 원조 현장에서 우리 국민이 상대하는 이들은 그들 나라의 엘리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들과 상대하는 우리 국민도 이들과 유사한 수준의 엘리트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국뽕이 눈을 가리면 머리 좋은 상대의 수싸움에 말릴 수 있다.
필자는 그들 나라와 일을 할 때, 상대가 적어도 필자와 동등하거나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가정을 세운다. 국뽕은 애시당초 걷어낸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그렇기에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1960년대 1970년대 가난한 대한민국, 당시 국제기구에서 일했던, 그들과 같이 일했던 분들은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