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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an 28. 2021

메이드 인 아프리카


“한국 제품을 꼭 들여와 주세요. 여기서는 중국산 밖에 구할 수 없어서요.”

“중국산으로 하면 되잖아요.”

“품질이 문제예요. 유통비에 마진까지 합치면 가격도 만만치 않고.”


현장에서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혹시나 싶어 한국산 농기계를 사용해 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대꾸를 하면서도 한국산을 찾았다.


“왜? 한국산이죠?”

“S 사 스마트폰, H 사 자동차, L 사 에어컨. 모두 한국산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만, 그거 하고 농기계하고 무슨 관련이 있다고.”

“세계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내는 한국이 농기계라고 다르겠어요. 품질이 낮은 중국산은 고장이 잘나고, 그래서요.”


이런 말을 객지에서, 그 나라 사람 입으로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미소를 지으며 ‘그러죠.’라고 답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연구용 도정기계(벼 껍질을 벗겨내 하얀 쌀로 만들어 주는 기계)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어, 이건 10,000달러가 넘네요. 한국산을  집어서 들여오는 건 곤란해요.”

“왜요?”

“일정 금액 이상은 공개 입찰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한국산을 요구하고, 프로젝트 비용도 한국이 대는데 왜 그래야 하죠?”

“규정에요. 현지에서 구입 가능한 물품을 현지에서 조달하라는 거가요.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그 나라의 기술력도 발전시키고. 뭐 그런 목적입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규정이라고 하니. 공무원의 본능이 일어섰다. 국제기구가 규정을 헙수룩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테고. 규정대로 하면 탈이 없는 거고. 그래서 공개 입찰을 실시했다. 중국산 도정기계가 선정되었다. 가격 조건도 맞고, 스펙도 맞고. 겉으로는 완벽한 듯 보였으나 문제가 바로 터졌다.



“새 기계를 구입한 건데, 벌써 고장이 났다고요.”

“예, 수리비가 10,000 달러입니다.”

“잘못 들은 거겠죠. 새 제품 수리비가 10,000 달러라니.”

“아니오, 수리할 수 있는 기술자를 멀리서 불러와야 해서요.  출장비에 공임까지 합쳐 10,000달러가 필요합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그 나라의 기술력도 발전시킨다는 공개경쟁 입찰의 결과는, 불신을 활성화시키고 스트레스를 발전시켰다. 가나에 있는 피터에게 전화했다.


“피터,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자초지종을 말하더니, 단박에 말도 안 된다고 답하면서 자신이 조정하겠다고 했다. 어쨌거나 1,000달러의 수리비를 줘야 했다. 그 이후로도 불만사항이 있었다.


“유감스럽게 더 이상 지원은 어렵습니다.”

“그러길래 한국산으로 해달라고 했잖아요.”

“규정이 안 되는 걸 어떻게 합니까.”


이 일이 있은 후, 아프리카에서 시행되는 프로젝트 전반을 살펴보았다. 정말 지역에 도움이 되는 규정이 맞는가?라는 의문에서였다. 메이드 인 아프리카는 없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있을 뿐. 아프리카 어느 나라고 뿌리를 내린 중국인들이 중국 제품을 팔고 있었다. 가격이 저렴하고, 구매자의 요구조건을 잘 맞췄다. 그러니 초정밀제품 또는 특수기계류를 제외하곤 중국 제품이 선정되기 십상이었다. 처음부터 주변상황을 파악하고 규정에 대해 좀 더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때늦은 후회였다. 여하간 다음을 위해 따져야 했다.   


“이건, 중국산으로 다 몰아주자는 규정 아닌가요? 메이드 인 아프리카가 없으니.”

“그럴리가요. 현지에서 조달해서 그 나라 경제를 살리자는 의미입니다. 도움을 주는 국가에서 모두 다 가져다 쓰면, 수혜국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적어지잖아요. 그 나라도 발전해야 하고, 일자리도 늘려야 하고.”


말인즉슨, 도와주려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라는 거였다. 원조로 생색을 내면서 자국의 산업을 살릴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였고. 의도도 뜻도 이해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순수한 사람은 ‘지하철역에서 구걸하는 사람의 연봉이 대기업보다 많다.’라고 고발한 프로그램의 충격에 이미 절반쯤은 짓눌린 상태였다. 그리고 바로 앞전에도 순수 모드로 규정을 따랐다가 발에 차인 기분을 맛보았다. 좋은 말, 좋은 의도, 좋은 광경은 일단 의심하는 인간으로 재구성되었다.


중국 공무원 근처에서 알짱거리면서 그의 프로젝트를 슬쩍슬쩍 들여다봤다. 한나절 하다 퇴근길에 깨달음이 있었다. 바보짓. 어차피 중국산이 들어오는 거니. 도찐개찐. 다음은 일본 프로젝트. 유감스럽게 시설과 장비를 지원해 주는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아프리카 나라에게 국가 통계 시스템을 전수해 주는 프로그램인지라.


건너 건너 물어보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규정을 우회해서 자국의 시설, 장비를 구입하여 원조국에 공여하는 나라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노하우도 알아내게 되었고, 원조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게도 되었다.


코트디부아르에서의 농기계 교육에서 우리나라 기계를 들여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규정을 우회하는 방법을 적용했다. 우리나라 D 사의 경운기 3대를 코트디부아르로 공수했다. “이게 스마트 폰 만큼이나 잘 만든 한국산 농업용 기계예요.” 기계를 공여받는 교육장 관계자의 얼굴에 만족이 흘렀다.



내 생각과 원조 전문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지구 어느 장소에서 태어나건, 사람은 동등하고 평등하고 기본적인 권리는 존중해 줘야 한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가진 자는 베풀어야 한다. 우리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으니 되돌려 주는 건 도리다.라는 훌륭한 말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가 살아온 과정은 원조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지런히 정돈된 규정을 따라야 하는 조직. 투입을 하면 산출이 나와야 마음이 놓이는 문화. 국민의 세금을 헛되이 쓰면 안 되는 직업. 더하여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 자체가 원조가 아닌 협력이었다. (SSC : South-South Cooperation) 내 곁에서는 SSC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중국 공무원과 일본 공무원이 있었고. 그러니 내놓고 우리나라 제품을 들여왔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제품을 원조의 거죽을 씌워 홍보하거나 팔아만 먹겠다는 심보는 아니다. 진심으로 아프리카의 기술력이 발전하여 ‘메이드 인 아프리카’라고 찍힌 농기계가 생산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열심히 보여주고, 만져보게 하고,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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