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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an 29. 2021

호구?



“미국은 유럽하고 달리 아프리카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원조를 하고 있습니다. 성과도 좋고요. 아프리카에서 유럽을 앞지를 날이 올 겁니다.”


‘그렇구나, 아프리카에서 유럽하고 미국 하고 서로 땅따먹기를 하고 있구나.’ 2009년 수업 중에 느꼈던 감상이다.


아프리카에 발을 내딛고 6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이 되자, 당시 교수님의 예측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모양새지만, 그 자리에는 중국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일본도 뭐라도 챙기고자 노력 중이었다. 반면에 미국은 기대한 것만큼 뚜렷하게 보이는 게 없었다.   


이런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순수한 듯 보였다.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현지 전문가와 자리를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식탁에는 맥주병들도 늘어서 있었다. 


“한국은 진정으로 아프리카가 발전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간지라 그의 눈은 벌게져 있었고, 귀에는 묘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어차피 한국도 시장을 넓히려고 온 거잖아요. 스마트폰에 에어컨에, 자동차도 진출하고. 또 뭐를 더 진출하려는지. 이런 상황에서 아프리카에 산업이 발전할 수나 있겠어요.” 


한국도 속셈이 있어 도움을 주는 것이겠지만 우리한테 필요한 것이니 잘 받겠다는 어조가 이어졌다. 고마움은 없었다. 투수가 던진 빈볼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술이 깼다. 


당시 나는 종종 곤혹스럽고 황당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감정과 가장 어울릴만한 단어는 ‘호구’였다. 범의 아가리라는 뜻이 아닌, 어수룩하여 이용해 먹기 좋은 놈이란 뜻의 바로 그 호구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아마추어와 프로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나는 아마추어가 맞다. 해외원조라는 건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고. 아프리카 땅도 생전 처음 밟아 봤다. 어제 운전면허증을 받고 거리에 나선 진정 왕초보 운전사나 다를 바 없었다. 


상대편은 어떠한가. 아프리카는 유럽에서 공무원 시스템을 들여온지라, 전문가 시스템 그러니까 한자리에서 오래오래 일을 하는 체계다. 적어도 10년은 넘게 이일을 했을, 원조에 관해서는 해박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전문가다. 운전으로 치자면 무사고 운전경력 2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그러니,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 그들 말에 홀렸다. 가끔은 홀라당 넘어갔다. 나는 초보운전자가 자동차 뒤 유리창에 ‘왕초보’라고 써 붙이듯, 원조 일은 처음이라고 그들에게 광고하듯 다녔다. 초보라서 배려해 주겠지 하는 심정으로. 어디나 그렇듯 이 곳에서도 초보라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초보 하고 싶어서 초보 하냐. 이건 순전히 한국의 공무원 시스템 탓야!’ 


빠르면 1년, 통상 2년이면 자리를 휙휙 바꾸는 우리나라 공무원 시스템에서, 깊은 지식과 경험을 쌓을 여력은 부족하다. 덕분에 초반에는 진정 왕초보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을 몇 년간 반복하다 보면 빠른 시간 내, 지식을 쑥 끌어올리는 노하우가 생긴다. 나는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아프리카 원조에 얽힌 속내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보는 시각이 무엇인지도 파악했다.


‘날 호구처럼 보는 거야? 이게 현실이지?’ 



어떻게 하면 호구가 되지 않을까. 주위를 돌아보고 조직을 관찰했다. 그러다 보니 공자님 말씀 같은 국제기구의 보고서나 규정, 또는 도덕률 뒤에 숨은 그늘진 모습을 알게 되었다. 사실 세심한 탐문과 치밀한 조사 끝에 알게 된 건 아니었다. 동료들과 어울려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그들 중 한 명이 술술술 비밀을 누설했다. 다른 이들은 당연한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비밀도 아닌 비밀인 셈이다.   


국제기구 직원은 출신국에 편향되지 않게 일해야 한다. 그러니까 국제적인 관점에서 일해야 되는 것이 맞는 일이다. 예를 들어 식량난에 허덕이는 아프리카를 위해 돈 좀 있는 한국이 손해를 보면 어떤가. 지구적 차원으로 크게 봐야지.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윗물부터 그랬다. 아프리카 출신의 장이 오면 아프리카 출신들이 약진했다. 남미 출신이 오면 남미 출신들이. 지금은 중국 출신이 장이니 중국이 약진할 차례겠지. 이런 상황에서 부하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나. 


일본 공무원도 명색에는 국제기구 직원이지만 자국에 대한 생각에 골몰한 것 같고, 중국 공무원도 마찬가지고. 나는 홀로 독야청청하리라, 하면서 교본대로 규정대로 움직여야 되나? 일단 호구가 안 되려면, 이런 분위기부터 습득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더하여 원조 선진국이라는 유럽이나 미국, 중국과 일본은 국제기구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듯 보였다. 국제기구를 한 단계 아래로 보는 느낌도 들고. 뭐랄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부처 일을 도와주는 대행사 정도. ‘음, 그러니까. 내가 국제기구 직원들에게 쫄 릴 것이 없단 말이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거니까.’


그러다가 국제기구 직원들이 원조 선진국에 꼼짝 못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전문성’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맥이 빠졌다. 원조 선진국 공무원들은 국제기구 직원의 한계, 문제점에 대해 빼곡히 알고 있었다. 한자리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거래를 해왔으니. 유럽도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우리나라는 1-2년에 한 번씩 바뀌니 해당사항이 아니고.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호구’ 취급을 안 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우리나라에서처럼 일하기로 했다. 목표를 정하여 앞을 향해 달려가는. 기준은 우리나라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자로 하고. ‘전문가가 필요하다고요? 일당이.. 아 그 정도예요. 그럼 한국 전문가를 씁시다.’ ‘농업용 기계. 음, 한국 거로.’ ‘교육요. 한국에서 해야죠.’ ‘어허 베네수엘라가 아프리카 쌀 생산을 돕겠다고 했다고요. 음 도와줄게요. 한국 프로젝트와 연계합시다.’


그러다 보니, 당초 3개 나라를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가 총 11개 나라로 늘어났다. 덕분에 인터뷰도 하고 내부 게시판에 그 내용이 실려 전 직원이 보게 되고. 칭찬도 받고. ‘호구’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여전히 미궁에 한 다리가 걸쳐진 느낌도 있었지만. 


이 개운치 않은 느낌이 뭐지? 맞다! 나만 ‘호구’ 취급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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