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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Feb 03. 2021

현장일은 3D.

미국 유학시절 학교 후배를 만났다. 국제기구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방학중에 원조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면서, 가난한 나라에 가서 소임을 다하고 오겠는 다짐을 하고 떠났다.  2달 만에 다시 본 그녀의 인상은 확 달랐다. 후덕한 얼굴이 도시적인 얼굴로 바뀌었다. '이 친구가 성형하고 왔나?'


"몰라 보겠는데?"

"선배님, 두 달 동안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어요."  


국제기구라도 현장에 나가는 일이 아닌 지원업무야 조직생활에 잘 적응하면 되겠지만, 현장업무는 고민해야 될 부분이 적지 않다. 현장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미리 파악하지 않으면, 실제 현장으로 들어가서 심리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현장업무는 3D에 가깝다.


Difficult.


사람이 싫어하는 일 중 하나가, 새로운 것을 맞닥뜨리는 일이다. 잠시의 체험이라면 좋을 수 있겠지만, 새로움이 생활이 되면 그야말로 불편해질 수 있다. 그 불편함이 스트레스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어였다. 영어를 사용하면 그나마 다행, 프랑스권 국가에서 일할 때도 있고, 부족어만 아는 주민과 상대해야 할 때도 있었다. 더하여 우리나라 말을 못 쓰는 괴로움. 생각보다 컸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못 하는 갑갑함은 덤이었고.


 서아프리카에서 친해지면 하는 인사가 있다. 머리를 좌우로 살짝 부딪히는 인사다. 2년째 들어서 이 인사를 했다. 아프리카의 문화에 어느 정도 적응하기까지 1년 넘게 걸린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부담스러운 문화가 있었다. 일부다처제. 처음에는 너무 이질적이라서 곤혹스러웠고, 나중에는 일부다처제를 당연하게 생각할까 봐 곤혹스러웠다.


생소한 음식도 스트레스로 변할 수 있다. 서 아프리카 음식은 적당히 짜고 적당히 맵고 꽤나 훌륭한 술 안주감이었으니 즐겁게 먹고 마셨다. 하지만 동아프리카 음식은 달랐다. 달달하고 기름지고. 입에 맞지 않아 고추장이라도 가져올 걸 하며 후회도 하고. 만약 내 주 활동무대가 동아프리카였다면 아프리카 출장이 꽤나 곤혹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외로움도 한몫한다. 혼자 뚝 떨어져 있을 때 느껴지는 외로움과는 다르다. 주변에 한국인이 없고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외롭게 했다. 문득문득 가슴이 눌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압박감이라고나 할까, 스트레스라고나 할까.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특히 중국 공무원이나 일본 공무원과 교류도 하다 보니, 차차 나아졌지만 내성적이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어색한 사람은 외로움으로 힘겨울 가능성이 높다.


내가 직접 격은 일은 아니고, 들은 이야기도 소개하겠다. 코트디부아르에서 경운기 교육을 하셨던 분 말씀으로는, 교육생이 질문했을 때 답변이 막히면 무척 곤란해진다는 거였다. 수변 수백, 수천 킬로 내에 경운기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러니 전문분야를 지원하러 온다면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와야 하는 부담도 있다. 그리고 응급조치도 알아야 하고. 여하간 모든 게 부족한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




Dirty


매일 샤워를 하는 게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에는 그래도 자주 하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목욕을 하는 간격이 띄엄띄엄 늘어졌다. 물을 덥혀야 하기 때문이다. 흙장난을 한 손으로 먹을 것을 집고, 푸세식 변소에서 일을 본 다음에...


현장 일을 하다 보면, 이런 과거의 그림자들과 종종 마주친다. ‘예전엔 아무것도 아닌데 뭘.’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몸은 이미 21세기 대한민국에 익숙해져 버릴 때로 익숙해져 있다. 그러니 흙탕물이 나오는 호텔에 가면 눈살이 찌푸려지고, 더러운 듯 보이는 접시에 담겨 나오는 음식을 보면 식욕이 떨어진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도.


나마 도시는 나쁘지 않지만, 시골 깊숙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호텔 침대에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도마뱀이 뛰어다니고. 그렇기에 시골에 들어가더라도 근처 도시에 여장을 풀고 싶어 진다. 우기가 한창일 때는 현장으로 나가길 주저하고 피하게 되기도 한다. 시골마을로 들어가서 진창이 된 도로 때문에 며칠 꼼짝 못 하고 갇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료 중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있는데, 그리 오래 현장을 누볐으면서도 우기 때는 가능한 현장으로 나가는 것을 피했다. 먹고 자일상이 만만하지 않게 변할 수도 있기에.


그러니 원조 현장에서 근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더러움 어느 정도 의연해져야 한다. 더러운 것이 참기 어렵고, 하루라도 샤워를 안 하면 온 몸이 근질거리는 사람은 현장에서의 일이 많이 부담될 것이다.



Dangerous


코로나 19 상황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마음이 갑갑해지고, 긴장이 느슨해지는 모양이다. 지난주에 오랜만에 들린 식당에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긴장을 하고, 집에 와서도 찜찜했지만, 오랜만의 외식은 즐거웠다.  


현장일도 마찬가지다. 오염된 식수를 먹거나, 비위생적인 음식을 먹고 생기는 식중독, 모기에 물려 걸리는 말라리아. 처음에는 예방을 위한 규칙을 잘 지킨다. 주의 사항을 꼬박꼬박 챙기고 꼬박꼬박 점검하니 병에 걸릴 일은 없다. 그러다가 마음이 슬금슬금 느슨해지기 시작한다. ‘뭐 문제 되겠어.’ 아프리카 1년 차, 2년 차 때는 배앓이 한번 안 하다가 3년 차에 접어들면서 말라리아에 덜컥 걸렸다. 첫 출장에서 들었던 경고를 망각한 탓이었다. ‘아프리카에 가면 매사 조심하세요. 직원들 중 병에 걸려 오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테러와 같은 위협도 마찬가지다. 처음에야 잔뜩 쫄아서 주의를 하기에 그리 문제 될 일과 조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일 년이 되고 이년이 되고 하다 보면, 긴장이 느슨하다 못해 축축 늘어지는 때가 있다.


“오늘은 호텔 밖에 나가서 현지 식당에서 저녁을 하자고.”

“규정에 해가 지면 나가지 말라고 하잖아.”

“여긴 안전 지역 야. 걱정 마.”


나와 파트너였던 피터는 지역을 구분해 가면서 밖으로 나갈 곳과 나가지 말 곳을 정해줬다. 아프리카 태생에 출장 경험이 풍부하고 눈치까지 빠른 그의 말을 들으면서 간혹 저녁시간을 현지 식당에서 즐기다 보니, 간이 커졌다.


“아니 저녁에 어디 있었어? 방으로 찾아갔더니 없데?”

“아, 여기 공무원 **씨하고 밖에 나갔다 왔어. 바람도 쏘일 겸.”

“여긴 위험한 지역야. 우리 같이 피부색이 검으면 모르겠지만, 피부색이 다른 경우에는 납치를 당할 수도 있다고.”


시간이 감각을 무디게 한다. 시간이 조심성을 서서히 증발시킨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만한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녀도 별 탈 없을 것 같은 사람이 화를 당하는 것이다. 누구누구가 병에 걸렸다느니, 테러에 희생되었다느니, 납치되었다느니.


혹시라도 해외원조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가능한 학생 때 해외봉사단 같은데 참여하길 권유한다. 아시아가 다르고, 남미가 다르고, 아프리카가 다르니 여러 곳을 경험하는 게 좋다. 수십 권의 해외원조 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일해보는 게 더 의미가 있다.   


중국 공무원, 일본 공무원, 그리고 한국 공무원인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중국이나 일본 공무원은 이미 해외 원조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 현장에 나가서 편히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막연한 생각으로 아프리카 일을 시작했다. 어떻게 되겠지. 별거 있겠어, 사람 사는 곳인데. 첫 현장 출장 후 돌아와서 일주일간 몸살을 앓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무실 체질보단 현장 체질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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