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타카 Feb 06. 2021

대한민국의 얼굴 해외원조 담당자



객지에서 혼자 뚝 떨어져, 일을 해야 되는 해외원조 현지 담당. 이들의 역할은 일당 백이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 원조국의 경우, 해외원조 담당자에 대한 대우는 각별하다. 아프리카 오지 마을까지 들어가 자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자국의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외교사절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높은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고, 대우도 좋다. 미국에서의 경험을 돌이켜 보며, 국제기구에 들어가는 것보다 오히려 미국 정부의 해외원조 담당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보았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기보다, 미국 대학의 교수로 일하기를 원하고. 몸 값도 높고 대우도 좋다.


“아니 배고파서 하루 한 끼도 버거운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그리 높은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는 게 형평성에 맞아요? 논리적으로도 이상하잖아요.”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영어로 일할 수 있고, 국가관이 투철하고, 각자 기술이나 경제, 외교 등에 특기가 있고, 현장에서 돌발상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수준의 대우를 해야 정답일까.


아프리카에서 만나본, 우리나라 해외원조팀은 국제기구 직원에 비해 대우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해외원조 현장은 봉사가 되어서도 안 된다. 어떻게 그 사람들 모두가 고귀한 희생정신과 투철한 국가관으로 무장하길 바란다는 말인가. 그들은 주변에서 보고 배우는 게 많다. 유럽, 미국, 중국, 일본에서 건너온 해외원조 담당들과 비교된다. 국제기구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은 뭐가 그리 대단한가. 하는 일은 비슷한데.'


"이상하군요 왜? 국제기구 사람들과 우리 해외원조 담당과 비교합니다. 완전히 다르잖아요!"


유사점도 꽤 있다. 일만 비슷한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국제기구 사람들도 우리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UN 회원국 중 11번째로 많은 기금을 내는 게 우리나라이니. 우리 세금으로 다른 나라 사들의 월급을 주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우리국민에게는 짜고, 외국인에게는 후해야 할까.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보수 수준은 우리나라 대기업에 비하여 떨어지지 않으며, 65세까지 일하고 연금 수준은 우리나라 공무원의 거의 2배에 달한다. 대학생 자녀에게도 학자금을 보조한다. 그러니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인다. 그들의 수준을 객관화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 국가공무원 7급에 합격할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다. 일정 수준 이상은 되지만 대단한 능력자들라고 보기는 어렵다.


 UN은 직원들 보호에 열심인 모양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병이 나더라도 지원이 되는 보험 시스템. 위협 사항에 대비하라고 교육을 철저히 하는 시스템. 현장 상황에 대한 세심한 모니터링. 하지만 그런 보호 아래에서도 가끔은 사고나 테러, 질병으로 명을 달리한다.


그렇기에 국제기구는 현장에서 문제가 생길 때, 안전 확보 등을 위한 규정을 제정

하고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을 하려면 UN 기준의 BASIC

SECURITY IN THE FIELD II와 ADVANCED SECURITY IN THE FIELD를

이수하고 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이 증명서가 없으면 해외출장을 나갈 수 없으며, 이 증명서는 주기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직원 건강관리도 철저하다. 에볼라가 창궐하는 지역, 에이즈가 만연한 지역, 말라리아약이 잘 안 듣는 변종 말라리아 지역에서도 일해야 한다. 수면병이라는 풍토병이 있는 곳에 가야 하기도 하고. 그러니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는 메디컬센터가 항상 직원들의 건강을 보살펴 준다. 모든 백신 접종은 무료다. 해외출장 시 필요한 비상약도 챙겨준다. 해당 지역에 문제가 되는 질병에 대한 정보도 제공된다. 그리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보살펴 준다.


간혹 주변에 알던 직원이 사망을 하면 나도 그럴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감돈다. 그러니 UN은 직원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19년 3월 발생한 에티오피아 항공 추락사고 당시 FAO 직원, IFAD 직원 등 UN 기구 직원 19명이 운명을 달리했다. 아프리카 출장이 잦은 모든 직원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소속 부서 직원은 모두 정신 감정과 치료를 받았으며, 별도로 원하는 직원들에게 치료비를 지원해 주었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11번째로 UN 기금을 내는 우리 국민, 아프리카나 그 외 개발도상국 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처우를 하여야 맞나. 공무원이니까. 아니면 철밥통 같은 직업을 가진 공공기관 직원이니.


현장에 있다 보면, ‘내가 외교관 일도 하는 것 같구나.’란 느낌이 든다. 책상에서 펜대를 굴리는 외교관이 아닌, 현장에서 발로 뛰는 외교관. 가난한 나라에서 도와주세요. 그러면 달려가서 도움을 주는. 비교하자면 소방관들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가끔은 내가 만능이 되어야 하는 가 싶기도 하다. 사방에서 별별걸 다 문의하고, 별별걸 다 궁금해한다. 쉬는 틈에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우리나라 사회생활에 대해, 우리나라 외교에 대해,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 묻는다. 그러기에 우리나라 전문가와 같이 일을 할 때는 해방감을 맛본다.


유혹도 많다. 혼자 일함으로 오는 도덕적 해이도 있을 수 있다. 자존감과 국가관이 투철하지 않으면 대충 넘기려는 타성에 젖을 수도 있고. ‘내가 이렇게 일해도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현장에서 개고생 하는 것보다는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게 더 낫다.’라는 분위기가 만연하는 순간. 해외원조 현장 담당은 우군이 아니라 적군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를 호구 나라로 만들 수도 있는 사람. 국가에 해를 끼치는 사람.  


우리나라 해외원조 담당의 대우는 기본적으로 국제기구에 준해야 된다고 본다.  생명수당 격의 보수를 지원해 줘야 하고, 국제기구 수준의 보험과 의료서비스를 지원해 줘야 하고, 아이들 교육을 신경서 주어야 하고, 현지 출장비를 국제기구에 맞추어 줘야 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당백이 가능한 사람을 선발해야 한다. 해외현장에서는 유럽, 미국, 중국, 일본과 경쟁해야 한다. 국제기구와도 거래를 해야 하고. 특히나 국가관에 대한 검증은 필수다. 영어 좀 한다고 뽑는 것보다는 국가관이 검증된 사람을 선발하는 게 더 중요하다.


아프리카에서 국제기구 직원으로 있다 보면 별별 이야기를 다 듣는다. 우리나라 해외원조 담당자들의 이야기도 포함된다. 좋은 이야기도 있지만 뒷담화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빠질 수는 없다. 그중에는 목덜미부터 귀까지 뻘게지는 이야기도 있을 수도. 그때 든 생각은 '해외원조 담당자는 한 명 한 명이 외교관이구나.'이다.


'저 사람은 일 중독야.' '왜 이리 깐깐해', '자기 나라를 너무 챙기려 하네',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해.'가 같이 일한 중국과 일본 공무원들에 대한 아프리카 동료들의 불만이었다. 이쯤이면 양호한 뒷담화다.


해외원조 담당자 주변에 있는 현지인은 모두 당신의 뒷담화를 사방에 전파할 기꺼운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뒷담화가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널 수 있다. 대한민국을 잘 모르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해외원조 담당자는 자연스레 대한민국의 얼굴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 현장일은 3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