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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Feb 25. 2021

유제품은 암 앞에서 성차별을 하는 건가?

항암치료를 하다 보면, 환자들끼리 일종의 동료 의식이 생기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 보는데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가지고 온 과일을 나누어 먹고,  삶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곤 한다. 늦더위가 채 가시지 않던 어느 날이었다. 어떤 환자분이 입맛이 없을 땐 아이스크림이 최고라며 비닐 포장지에 들어 있는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주셨다. 냉큼 받았다.


오래간만에 시원하고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에 몸안 가득 행복이 가득 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 이 맛이지.  ‘유제품으로 만든 건 암에 좋지 않을 수 있다던데.’라는 걱정은 까맣게 지워졌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탐닉 한 대상이 아이스크림이다. 유지방이 담뿍 들어 있어 보드랍고 달달하고 시원하며 혀끝에서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 너무나도 좋아했기에 남들은 작은 티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푸지만, 나는 밥숟가락을 사용했다. 동생도 마찬가지고. 가끔 아버지께서 사오시는 투게더 아이스크림은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바닥을 드러냈다.  

아이스크림에 대한 사랑은 유전인 모양이다. 서너명이 나눠 먹어도 될 만한 아이스크림을 ‘아빠 한 입?’이란 말도 없이 뚝딱 해치우는 딸내미 모습은 어린 시절 나와 판박이었다. '그 피가 어디 가겠어.' 그 이후로 아이스크림을 사 올 때는 충분히 양껏 사 왔다. 누구도 서운하지 않도록.


암투병을 하면서 유제품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검색창을 열어 유제품을 입력하니,  인터넷 곳곳에서 유제품이 암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도 유제품인 바, 더하여 유지방과 칼슘이 풍부한 식품이기도 하니 암에 좋을 리 없겠다, 싶었다. 그렇기에 아쉽고도 힘들었지만 아이스크림과는 거리를 두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꽤나 항암을 하셨을 만한 분이, 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듯한 분이 저렇게 태연하게 아이스크림을 권하시고 본인도 드신다니.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가 혹시나 틀린 게 아닐까? 여하튼 이날을 시작으로 간간히 아이스크림도 먹고, 요구르트도 먹었다. 암환자가 권한 건데  하면서.


하지만 찜찜한 기분이 계속 찾아왔다. 그럼에도 아이스크림의 달달함에, 치즈의 고소함에, 요구르트의 감칠맛에 빠져 몇 번을 그냥저냥 넘기다가 WCRF(World Cancer Research Fund)의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암이 재발되거나 전이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WCRF에 따르면 유제품은 대장암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되는 식품이다. 우유의 카제인과 유당이 칼슘의 생체 이용률을 증가시킬 수 있으며, 락토페린, 비타민 D 같은 성분도 직장암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유제품을 먹어도 문제가 없는 거구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정보는 가짜 정보구나. 가짜가 진짜인양 판을 치는 세상일세.


하지만 이내 이에 반대되는 자료를 찾았다. 영국전립선암협회(Prostatecancer UK)에 따르면 많은 양의 유제품, 그러니까 우유, 요구르트, 치즈 등을 많이 먹으면 전립선 암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하며, 칼슘을 강화시킨 두유도 유제품과 마찬가지로 암에 좋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 세잔의 우유, 세 컵의 작은 요구르트, 30g 수준의 작은 치즈 조각을 세 번 정도 섭취하는 것은 괜찮다고 했다. 가능하면 저지방, 저당 제품으로 먹어야 하고. 캐나다의 암 관련 기관(Canadian Cancer Society)에서도 비슷한 주장이었다. 유제품과 칼슘을 많이 섭취하게 되면 전립선암의 위험성을 높아진다는 내용이었다. 이외에도 유제품이 전립선암에 나쁘다는 주장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아찔했다. 고환암에 전립선암을 더하면. 남자이길 포기해야 하나. 그래도 적은 양의 유제품은 괜찮다고 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국 정부기관의 자료를 검색해 보았다.


 2019년 미국 정부기관인 NCBI(National Center for Biotechnology Information)는 유제품과 전립선암과의 상관관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49,472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11.2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였다. 유제품이 전립선암을 악화시키거나 유발하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광대가 슬며시 올라가며 웃음이 지어졌다. 미국에서 연구한 자료니 신뢰도가 높겠지. 아이스크림도 마음껏 먹고, 치즈도 먹고, 우유도 먹고. 마지막으로 국제기구인 WHO 자료를 찾아보았다. 당연히 미국 자료와 비슷할 거란 생각을 하고서.


2014년도 자료이긴 하지만, WHO-IARC에서는 유제품의 소비가 전립선암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결론 냈다. 이쯤에서 인정해야 했다. 국제기구 자료를 믿는 게 맞는 거니까. 사실 미국은 자국의 이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색육(소고기, 돼지고기 같은)과 가공육(소시지나 햄 같은)의 위험에 대해 그리 내세우지 않는 모양새다. 아무래도 농업이 중요한 나라라서 일까?


그런데, WCRF(World Cancer Research Fund)의 내용은 뭐지? WHO와 엇비슷하게 권위 있는 국제 연구기관인데, 유제품이 전립선암에 좋지 않다는 내용이 없을 수가 있는거야? 불만스러운 눈으로 WCRF의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유제품이 전립선암에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건덩건덩 찾은 탓이었다. 꼼꼼하지 않은 내 성격덕에 스스로 희망고문을 한 셈이었다.


출처 : Meat, fish, dairy & cancer | World Cancer Research Fund International (wcrf.org)


유제품은 성차별적인 식품이다. 대장암에는 좋고, 전립선암에는 나쁘니. 남자한테 불리하다. 여자라면 유제품을 양껏 먹어도 별탈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대장암까지 예방할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건가? WCRF 자료에는 유방암에도 좋다고 하고.


어차피 그리 많은 유제품을 먹는 건 아니다. 매일 먹는 것도 아니고. 피자 먹을 때 토핑 된 치즈 조금, 요구르트는 어쩌다 한번. 아이스크림은 한 달에 두어 개. 이 정도가 전부니. 어쨌든 남성 암환자라면 유제품은 자주 먹으면 안 될 식품이다. 암환자가 아니더라도 많이 먹는 건 좋지 않을 듯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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